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엘 Sep 30. 2024

가을의 마음


사진가를 하면서 힘든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전화기가 종일 울리지 않는 순간일 것이다.


지금은 그나마 어느 정도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예전의 나를 생각해 보면 사랑을 잃고, 곧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절망적이었다.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매 순간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델이나 연예인은 또 아니지만 그럼에도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고 대개 일이 많지 않고, 결과가 아쉬운 이들은 사진 보다 많은 변명의 말을 늘어놓는다. 서글픈 일이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이 일은 몇 초만 보아도 그 사람의 실력을 알 수 있다. 좋은 건 누구에게나 좋다. 구구절절 기술이나 상황적 설명은 일절 필요 없다.


며칠만에 맑게 갠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눈 부신 햇살에 선글라스를 챙겨 나올까 싶었지만, 다시 돌아가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걷기로 했다. 기껏해야 편의점에 가는 길이니까. 오랜만에 잘 걷지 않는 지름길 골목으로 향했다. 조금은 기분 전환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골목을 들어선 순간 나는 그녀와 마주친다. 운명적이고 거스를 수 없는 소용돌이 같은 감정이 요동쳤다. 한 걸음씩 가까워지다 이내 스쳐 지났다. 기분 좋은 햇살의 냄새가 났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 말을 걸어볼까 싶었지만 도저히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의 내 꼴은 이제 막 잠에서 깬, 누가 봐도 변변찮은 직업을 가진 중년의 남성일 뿐이다. 그렇게 고민이 겹친 시간 사이로 그녀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가볍고 기분 좋게 흔들리는 포니테일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문이 닫히고, 막이 내리고, 나는 그날의 따스한 햇살 같은 기억을 이따금 회상하며 그리운 기분이 된다.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겨서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전부터 동경해 오고 있다. 시간만큼 색은 변해가지만, 여전히 멋진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


당연하게도 서울에 있을 때보다는 전화가 울리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잊고 있었던 오랜 불안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다.


그럼에도 조금씩 찾아오는 기회와 시간이면 금세 들떠서 세상 가장 행복한 사진가가 된다. 그런 반복이다. 며칠째 날씨가 흐려서일까, 단단한 마음과 아무렴 어때하고 웃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저녁이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도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