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쉽고 길게 잘 잠든다는 것이다. 다만 소리와 진동에는 아주 민감한 성격 탓에 잠들기를 준비하는 시간부터는 휴대폰은 달 모드(달이 그려져 있어서 항상 이렇게 말하는데 진짜 명칭은 방해금지 모드라고 한다. 전화를 비롯한 모든 알람이 중지된다)로 전환시켜 둔다. 그러지 않으면 자잘한 알람에도 잠이 깨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최근엔 이 리듬이 무너져서 좀처럼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아니 일단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는 두세 시간이 지나면 눈을 뜨고, 그대로 아침까지 몽롱한 기운으로 다시 잠들지 못한다.
얼마간 이런 상태로 생활중인데 이러면 낮에 제대로 된 집중력이 나오지 않는다. 위 속에 신문지를 잔뜩 구겨 넣은 것처럼 불편하고, 머리는 젖은 솜처럼 무겁고 더디다. 조금 더 기민하게 움직이고 싶은데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이다 보니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나른한 몸을 깨워 보려고 평소에 잘 찾지 않는 커피를 더 마시게 되고, 술이라도 마셔서 오래 자고 일어나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해보았다가, 새벽녘에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 된 적도 있다.
연말에서 연초는 비교적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강화된 거리두기의 영향도 있지만, 초반의 일은 한가한 편이다. 사흘 정도 연속으로 쉬면 불안해지는 비운의 직업이지만, 이젠 이런 불안도 어느 정도 삶의 일부가 되어서 대체로 안 죽으면 살겠지 와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밤사이 내린 눈으로 SNS 피드는 온통 눈에 관한 말들이 넘쳤다. 지금은 어떤가 싶어서 창문을 잠깐 열어봤더니 눈은 멈춰 있었고, 골목길은 벌써 누군가 예쁘게 쓸어 놓았다. 일찍 나가서 뽀드득 거리는 첫 발자국 체험을 하려고 했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내가 잠깐 잠든 사이에도 세상은 성실하게 굴러갔던 것이다.
잠이 깨면 이상하게 공복이 함께 밀려온다. '저녁을 안 먹고 잠이 들었던가?' 싶어서 골똘히 생각해보니 이미 먹었었다. 파스타와 윙을, 그것도 제법 많이. 그럼에도 알 수 없는 공복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뜨거운 차를 내리고, 버터맛 비스킷을 가지고 책상 앞에 앉았다. 작은 컵라면이라도 먹을까 라는 생각을 조금 했지만 왠지 또 탈이 날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면 먼저 책상 앞에 항상 앉던 시기가 있었다. 20대에는 줄곧 그랬던 것 같다. 딱히 무언가 하려고 앉았다기보다는 그저 습관적이었고, 지금 이 순간도 듣고 있는 수만 번은 들었을 미카의 노래를 틀어놓고, 여러 가지 생각의 덩어리를 일기처럼 조금씩 남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고 나서야 다른 무언가를 했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아직 취미로서의 사진을 하던 때라 꽤 열심히 사진에 관해 몰두하기도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사진을 구실로 마음이 있는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이런저런 궁리를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하하)
그렇게 정리된(?) 것들은 지금에 와서 보면 놀라울 만큼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애틋하기도 하고, 서투르지만 모두 내가 남긴 역사처럼 보여서 제법 소중하게 여긴다. 많은 부분이 외롭고 고독하고 울적하고, 어딘가 항상 그립고, 나는 이때부터 나이가 든 지금도 여전히 이러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깊은 고민과 상상과 망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많지는 않아도 그런 모습들에 이끌려 와 준 몇몇의 인연은 여전히 주변에 남아 있어 주어서 표현은 못 하지만, 항상 고맙다. 그리고 가끔씩 몰래 힘이 나던 덧글을 보러 가기도 한다.
언제나 이 계절의 밤은 이렇게 깊었다. 고요했고, 불안했지만 내일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자라는 시간이었다. 살을 에듯 추웠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고, 지난날의 불운 같은 건 아무렴 어때 하면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을 가득 채우던 이 거대한 운명 같은 하얀 세상은 나를 무기력하게도, 행복하게도 만들었다.
차와 비스킷이 떨어졌다. 슬슬 다시 잠을 청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