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의 조각모음

by 노엘

눈이 내린 밤, 열 한시쯤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파고들었다. 잠깐만 휴대폰을 보다가 자야지 싶었는데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오전 두 시에 가까운 시간이 됐다. 내일 일정은 아주 이른 오전은 아니지만 분명 도로 상태 때문에 스튜디오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 확실해서 저녁부터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머릿속 한구석이 줄곧 불편한 기분이 남아 있어서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눈을 감고 있어도 영 불안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갑자기 물욕이 되어서는 더 좋은 집에 살고 싶다.(사실 정해져 있음) 더 좋은 차도 타고 싶다.(이것도 정해져 있음)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러면 일을 어떻게 해야 하고 지금의 조직이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고, 우리 편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잘하는 사람과 친구도 되고 싶고, 자주 하지 않는 남과 비교도 한 번 해보고, 반성도 하고 절망감도 맛보는 그런 밤을 걷고 있다.


세상엔 잘하는 사람이 놀랄 만큼 많다. 나처럼 큰 특징과 재능이 없는 사람은 보다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감이 오지 않는 일들을 척척 해나가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잘하는 걸 알아볼 수 있다는 정도인 것 같다. 으음. 의식의 흐름이 녹아내린 눈처럼 조금 애달프다.


라디오를 볼륨을 올렸다. 10년 전의 봄날 같은 노래가 흐른다. 조금 안심이 된다. 평소라면 거의 들릴 듯 말 듯하게 켜 두곤 하는데, 새삼 집안의 정적이 무섭게 느껴졌다. 가끔 있는 일이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서는 그림을 보고 그 어느 때 보다도 강렬하게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무서울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이별을 두려워한다.


사흘 정도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 기온이 가장 낮게 내려간 -17도 무렵에 고장이 났었다. 다행히도(?) 수도 전체가 동파된 것은 아니라 온수 파이프만 동결이 됐었고, 그 사이엔 물을 조금씩 끓여서 적당히 씻었다. 하루 반 동안 다른 방의 창문을 열어 보일러실의 온도를 높였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겨울철의 냉수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무엇보다 설거지가 가장 힘들었다.


몹시 비현실적이지만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꿈을 꿨다. 이토록 선명하고 아쉬운 꿈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꿈이었다. 며칠이나 시간이 지나서 많은 부분 희미해졌지만, 기억나는 중요한 내용들은 메모해 두었다. 언젠가 꼭 정리해두고 싶다.


온수 파이프가 얼어붙어 가는 동안 눈밭에서 사진을 찍었다. 생각만 하고 체념하던 순간 좋은 기회가 닿았다. 고마운 마음이다. 얼어붙은 마스크와 추위로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눈을 볼 수 있었던 건 충분히 행복한 일이었다. 잠실 3대 감자탕집 중의 한 곳이라는 식당도 방문했다. 다음번엔 차 없이 가보고 싶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너무 맛있게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운전을 할 때는 안 좋아하지만, 역시 눈이 내리는 날은 좋다. 오늘도(어제) 예상치 못한 눈이 내렸고, 덕분에 모두에게 더 좋은 작업이 되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행복한 기분이 된다.


으으. 이젠 자야 된다고 정말. 그만 책상에서 일어납시다 슨생님. 마지막 곡, 델리스파이스가 부릅니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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