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기엔 봄처럼 온화한 날씨였다. 계기판에 표시된 실외 기온은 8도, 창문을 반쯤 내리고 목적지를 향했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머플러의 나른함처럼 부드러웠다.
하루 동안 운행을 쉬었는데도, 창에 쌓인 먼지는 거의 없었다. 공기가 맑았던 날이 이어졌던 것이다.
무기력에 잠식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아 두려울 때가 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시간 뒤편으로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생긴다. 뒤틀린 시공간의 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 버린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의 기분이 이랬을까.
혼자 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그럼에도 착실하게 시간이 흐르는 걸 눈치채게 되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머릿속의 단어들이 천천히 지워져 가는 기분이 든다.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수차례 다짐한다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소한 거절도 받고 싶지 않다. 이러면 안 되는데, 결국 다시 그렇게 된다.
그래도 이런 날이면 발걸음이 가볍다.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가끔씩 마스크를 벗고 걸었다. 달콤한 바람 냄새가 난다.
다가올 계절이 봄이라는 것에 조금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는 조금도 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은 다른 모습의 나를 기대한다.
왠지 안녕을 말해야 할 것 같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