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봄

by 노엘

햇빛으로 달구어진 한여름의 수영장 같은 바람이 불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빠르게 걷다 보면 조금은 더워서 재킷을 벗어 손에 들고 걸어야 할 날씨였다.


양지바른 곳의 벚나무들은 이미 녹색잎이 제법 나왔다. 일 년에 고작 일주일에서 길어야 보름이지만 이 시기를 바라보는 기분은 매번 처음처럼 설렘이 가득했다.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고, 그걸 알 수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기도, 슬프기도 한 일이다. 결말은 반드시 찾아오고, 멈출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하지만 매번 가장 처음의 만남처럼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보다 멋진 일이다. 아주 짧은 순간,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랑과도 닮았다.


먼지가 씻겨나간 며칠 사이 하늘도 맑고, 깊이 들이 마신 공기에선 좋은 냄새가 났다. 많은 피드들에 꽃잎이 날린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흔들린다.


대부분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된다는 말을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던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헤어짐의 형태를 소중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우린 모두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지만, 어쩌면 이대로 다신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훗날 시간이 지나면 문득 떠오른다.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인사라도 제대로 해둘 걸 하고, 희미한 후회를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불분명한 경계들과 관계는 스스로를 점점 불투명하게 만들고 말았다.


4월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계절이다. 어쩌면 삶의 마지막일 수 있는 일들을 겪었던 날들이기도 하고, 스스로의 세계를 송두리째 바꿔 놓기도 했던 계절이었다. 그리고 이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 한 채 거의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아니, 정확히 10년이 지났다. 20대의 마지막이었던 2011년 3월, 상정외라고 외치던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오늘날까지, 늘 무언가 찾으려고 했다. 찾아야만 했고, 어떻게든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남은 것은 더 커진 꿈뿐이었다.


그것에 가지는 불만은 없다. 나는 나의 직업을 너무나 사랑하고, 뷰파인더를 보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그 순간,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 행복하다고 해도 조금의 거짓도 없다.


하지만 너무 긴 시간을 달려와 버린 것이리라, 무의미한 만남과 텅 빈 관계를 몇 번인가 반복하고는 나는 누구와도 제대로 된 만남을 갖기 어려운 마음이 돼 버렸다. 그리고는 무언지도 모를 것을 매일매일 기다려 왔다. 어리석게도 특별한 추억 같은 걸로 받은 상처가 두려워서, 함께 나누는 시간 같은 것에 소극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함께 걷고 싶고,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들을 모두 숨기고, 매번 최소한의 동선과 만남을 반복했다. 상처를 주었고, 모든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에게 돌아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그것들이 다 소용없었다는 것을 느낀다. 특별하지 않으려 했던 순간조차도 기억 속엔 특별하게 남게 되곤 했다. 미안한 마음들이 커졌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것뿐이라고, 만나려고 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그런 사람들에겐 그럴 거면 네가 만나든가, 라는 말이 조금씩 올라오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가는 몹시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적당히 그런 것이 아니다 정도로 항상 이야기를 흐렸다.


여느 때보다 봄 꽃들이 한 걸음 더 빠르게 다가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돌아오는 계절처럼 나도 다시 새롭게 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사랑을 하고, 네가 내 옆에 있고,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싶다. 해가 저물어 조금 차가운 저녁이 되면, 집 근처의 세상의 끝 바에 가서, 맥주나 와인 따위를 마시고, 함께 집에 돌아가고 싶다.


봄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이 마주친 채로 뺨이 닿을 듯 가까이 다가와도 어색하지 않을 온기를 가진 네가 보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