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간 틈이 나면 산책을 했다. 아직 걸어보지 못한 집 주변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붐비는 연남 공원 근처에서부터 공원이 끝나는 길에 다다르면 좁은 주택가의 골목을 걸었다. 역에서 멀어질수록 주변의 인파도 함께 줄었다. 특별히 운동을 해야겠다거나 그런 목표로 시작했던 일이 아니라, 양손만 비운 채 그날 입었던 옷 그대로를 입고 걸었다. 양손이 자유로운 건 무엇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의식적으로 팔을 붕붕 흔들어 보기도 했다. 기분 좋은 움직임이었다. 살아있다는 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휴일의 씻기 귀찮은 날이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걸었다. 신발이 조금 편했으면 하는 날도 있었고, 편한 옷을 사볼까 싶다가도 얼마나 지속할지 몰라 그냥 보통의 일상복으로 틈이 나면 걸어보기로 했다.
근사해 보이는 가게들이 몇 군데인가 있었고, 몇 번 보는 사이에 위치와 이름을 외웠다. 한 곳은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미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곳이었고,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여유롭게 주말에 방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역시 좋아 보이는 것과 잘하는 것은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법이었다.
음악은 듣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처음에 이어폰을 두고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딱히 뭔가 더하고 싶지 않았다. 주머니 속엔 신용카드 한 장과, 휴대폰만 넣는다. 더 용감해지면 전부 두고 나오고 싶다.
공원 벤치에선 이따금 책을 읽는 사람과 마주쳤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책을 가지고 나와볼까 싶었다. 진짜 바람은 바닷가에서 책을 읽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다. 스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나른한 낮잠 소리처럼 들려왔다. 혼자 있지만 함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세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시간이 흐르는 모습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집에 돌아와 어두운 공간에 떨어진 한 줄기 빛 사이로 먼지가 반짝였다. 나만이 알고 있는 우주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