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한 마디

by 노엘

며칠 만에 창문을 열었다. 먼지가 일며 바깥바람이 집 안으로 빨려 들 듯 들어왔다. 몽롱함을 깨우는 상쾌한 공기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소년 만화 같은 푸른색으로 빛났다.


이따금 생각나는 다른 사람의 일기가 있다.


여타 SNS나 블로그가 아닌 개인 홈페이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오래된 일이기도 하다.


나나 그분이나 당시엔 계속해서 사진을 할 것이란 어떠한 큰 그림은 없을, 불안하기만 하던 20대 초중반의 일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따분하고 나른한 오후의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전화가 걸려 온 날."이라는 맺음으로 끝나는 일기였다.


마지막 문장이 10년이 넘도록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마도 줄곧 기억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친하진 않았어도 그가 내가 아는 사람이었고, 동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산다는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리라. 지금처럼 SNS로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없던 시기이기도 했고, 당시에 만나던 여자 친구와 또 주변의 몇몇 지인들이 연결이 돼 있는 분이기도 했다.


나로선 겪어보지 못했지만, 강 건너편의 이야기라도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얼마나 큰 기쁨이었고, 설렘이었을까. 좋아하던 여자아이에게 먼저 걸려온 전화라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뛸 듯이 행복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어딘가 따뜻한 기분이 된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 창밖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목적 없는 시간을 보내던 오후였다.


창가로 드는 햇빛에 방 한 구석의 먼지가 반짝였다. 먼지들은 어디에도 존재했으며, 어느 곳으로도 사라지지 않았다. 줄곧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고, 떠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부유하는 우주를 눈으로 좇으며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오후였다. 조금 흥미가 있는 일들은 있었지만, 딱히 그것을 지금 바로 하고 싶다거나,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매번 읽던 소설책을 여기저기 뒤적거리거나, 변함없는 메일 함을 확인하거나, 생각이 난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어쩌면 어제와 비슷한 날이었다. 하늘에 구름의 모양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했다. 아무렴 어때, 시간만큼은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그러던 평범한 오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엔 네 이름이 선명했고,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큰 표정으로 웃을 수 있었다.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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