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의 2분 44초

by 노엘

책상의 의자를 바꿨다. 바꿨다기보다 몇 년간 사용하던 불편한 접이식 의자를 빼내고 거실의 1인용 소파에 쿠션을 얹어서 스탠더드 한 높이에 가깝게 맞췄다. 최근 말이 많아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책상 앞에 편히 앉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 예전의 습관을 불러왔다.


사실 수년간 생각해 왔다. 지금 사용하는 의자가 영 불편해서 30분 이상 앉아 있기 힘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려면 몸을 배배 꼬면서 어떻게든 편한 자세를 찾으려 애를 쓰게 됐다. 그러다 보면 머릿속은 온통 불편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책상 앞에서 벗어나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거실의 TV 앞에는 더 편한 흔들의자가 있지만, 그곳에 앉으면 습관적으로 전원을 켜고 무언가를 보게 됐다. 생각할 틈이 생기질 않았고, 나의 시간이지만 다른 차원에 빼앗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딱히 그러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10대 후반부터 TV 없는 생활을 했었다. 자취를 하면서도 없었고, 그러다 몇 년 전에서야 TV를 사게 됐는데, 그것도 단순히 PS4를 플레이하기 위해서였다.(최근엔 PS5가 나왔다.) 아이맥에 입출력 연결이 가능했더라면 아마 그것조차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리라. 그래서 어쩌다 보니 거의 20여 년 만에 TV 있는 생활을 하게 됐고, 여전히 찾아보는 방송이라든가 그런 건 없지만, 넷플릭스나 유튜브, 게임을 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늘게 됐다.


TV 없이 오랜 시간 생활한 걸 이야기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라 선물을 하나밖에 못 받겠어요, 같은 말과 비슷한 맥락인데 처음부터 그렇게 지내오다 보니 딱히 불편하거나 억울한 점은 없었다. 정말 궁금한 건 어떻게든 다른 경로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집에 돌아오면 씻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았다. 항상 듣는 음악을 켜 두고, 사진을 정리하거나, 가끔 게임을 하거나, 블로그에 이런저런 혼잣말들을 써왔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에는 지금이야 흔하지만 1인 라디오 방송도 했었다.


책상 앞에 편안하게 앉게 되니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여담이지만 항상 듣는다던 음악은 뉴에이지 곡인데, 재생 횟수는 1만 번은 가볍게 넘을 것이다. 십여 년 전에 체크된 횟수만 8천 회가 넘기 때문에 어쩌면 2만 회가 넘을지도?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 그 정도면 직접 연주도 할 수 있을 거라 하며 웃었다. 사실 지금도 듣고 있다.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나도 좋다. 나의 모든 시간이 2분 44초에 압축돼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큰 의미는 없지만 월요일, 무언가 시작하기 좋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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