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얼마간 미뤄두고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이후의 일정은 없었지만 묶여 있는 느낌은 어서 털어내고 싶었다. 여름 냄새가 나는 바람이 불었다. 남쪽의 휴양지가 떠오르는 바람이었다. 텅 빈 주차장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평화로운 주말만큼이나 고요하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거대한 여백 위의 작은 쉼표 같았다.
내일 오전 촬영에 필요한 짐들을 트렁크에 싣고 평소보다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앞자리의 창문을 모두 열고 선루프도 열었다. 바람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얇은 유리창문이 하나 없을 뿐인데,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살고 매일을 지나다니면서 수도 없이 드는 생각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수많은 인파들 중에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이 감각에 극심한 고독함을 함께 느낀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처음 정착해서 살게 된 이 도시를 좋아한다. 유년시절을 보낸 거리에는 특별한 기억도 친구도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나에겐 지금 이 거리가 고향과 비슷하다.
문득 계절을 느낄 때마다 시간이 흐른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리고 무엇이 변했는지 감지해보려 잠시 멈춰 멍하니 서게 된다. 명확히 그려낼 수는 없지만 어떠한 그립고 부드러운 기류 같은 것이 손 끝에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잡을 수도 없고, 형태도 명확하지 않지만, 그것은 대체로 평화롭고, 애달프고 사랑스럽다. 이제는 희미해진 가능성마저 그 안에서는 아직 살아있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이 흐르고, 언젠가 웃었던 비슷한 표정을 지어본다.
전할 수 없는 말들이 더 많이 남았지만, 그런대로 평화로운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