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by 노엘

입구를 나서자 가을바람이 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은 이미 짙은 감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았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낮보다 밤이 긴 계절이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벌써 햇수로 5년이나 된 렉서스의 구형 해치백 트렁크를 열고 수영용품들을 정리했다. 며칠 전 촬영 장비들을 싣느라 접어 두었던 뒷좌석을 다시 펴고, 창문과 선루프를 모두 열고 시동을 걸었다. 흘러들어오는 바람이 달콤했다.


여름이 지나자마자 가을장마가 시작됐다. 푸른빛과 무지개로 반짝이던 하늘을 자랑하던 여름과 다르게, 도시는 암막 커튼으로 가려 놓은 듯 어두웠고, 거의 매일 크고 작은 비 소식이 있었다. 뒤늦은 장마와 함께 기분도 무겁고 축축해져 갔다. 갑작스레 볼 일이 생겨서 은행에 가게 될 일이 있었는데, 가는 동안 아끼는 바지가 다 젖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곧 중요한 촬영을 앞두고 있었지만, 지구가 반토막이 난다 해도 이대로 집에 가고 싶을 정도로 울적한 마음이 되었다. 하나의 불운을 겪어서인지 촬영은 잘 마무리됐지만, 아직 세탁소에 옷을 보내지 못한 마음 한 구석은 오래된 신문지를 구겨서 가득 채워둔 것처럼 여전히 먹먹하다.


비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다. 희미한 담배 냄새가 바람과 함께 날아 들어왔다. 싫지만은 않은 냄새였다. 다른 가구의 에어컨 실외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창문이 열린 틈으로 윗 층의 TV 소리며 생활소음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음악을 켤까 생각하다가, 왠지 이 소리들을 더 듣고 싶어서 아무것도 켜지 않은 채로 단편집을 꺼내어 들고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사람들의 눈에 비추어지는 스스로의 모습이 어떨지 최근 들어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제법 긴 시간 [아무렴 어때, 그럴 수도 있지]하는 방향으로 생활해 왔던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없고, 아무렴 어떻지 않은 순간들도 얼마간 겪게 되면서, 내가 보는 세계의 반대편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계기들도 있지만, 어떠한 면에선 조금 더 위로와 이해가 필요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가진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던 세계의 반대편이 너무나 아픈 모습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사실은 알 수 있다고 해도 덜컥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모를 때에나 가능하다.


글에 동행이 등장하게 되지 않게 된 일이 오래되었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함께 걸었던 거리라든가, 계절의 조각들을 나누었던 일들이 마치 타인의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지금의 삶에 가장 부재되어 있는 거대한 공백 같은 것이리라. 꿈으로도 채울 수 없고, 물질로도 채울 수 없다. 마음에서 마음이 전파처럼 어느샌가 닿아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아마도 아주 먼 미래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 날의 일일 것만 같다. 나는 여전히 부끄럽고, 사진보다 사람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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