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계절

by 노엘

추석 전 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적당히 일들을 마무리 짓고 집에 돌아왔다. 거실의 열려있는 창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커튼을 모두 걷어내니 가을의 햇살이 하얀 벽면 한쪽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집안 가득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흩어진 여름의 조각들은 메마른 소리를 내며 계절을 재촉하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며칠 전에 사다 둔 차가운 크림빵과 차가운 커피를 꺼냈다. 다행히도 아직 먹을만했다. 일기를 쓰는 동안 십 년이 넘도록 같은 음악을 듣고 있어서인지 모든 기억이 중첩돼 쌓여있는 것만 같다. 이젠 모든 일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없지만, 이 계절에 부는 바람과, 붉게 기울어진 빛의 투명함만으로도 마음은 흔들렸다.


공기의 냄새가 변했다. 한낮은 아직 뜨겁지만, 해가 지는 시간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바꿨다. 깊은 호흡을 하면 무더위에 가려져 잊고 있었던 지난 계절의 기억들이 밀려왔다. 그렇게 계절은 다시 한번 돌아왔다. 그 중심에서 눈을 감고 있다 보면, 다음 계절에 눈을 감았던 내가 떠오른다. 그런 반복이다. 지금 이 순간 잘 알 수 없었던 만남과 수많은 일들이, 매번 한 걸음 뒤늦게서야 마음을 두드린다.


서투르기만 한 스스로가 참 싫기도 하지만, 이 서투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이들이 있어서 그래도 때때로 행복하다. 사실은 백 퍼센트의 무언가를 늘 찾고 있었다. 지금도, 아마도 앞으로도. 그리고 그런 일들은 필연적으로 극심한 공복과 같은 고독을 함께 불러왔다. 아마도 스스로가 백 퍼센트가 아닌 이유로, 그것은 언제까지나 채워질 수 없는 공백 같은 것이리라.


삶을 펼쳐 놓으면 그리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부디 평안하길, 나 또한 그러하길. 변하지 않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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