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이라는 책을 보면 토미네 잇세가 와인 한 모금을 마신 뒤 “오오오~~~” 감탄을 하며 꽃밭에 누워 황홀감에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포도로 만든 와인에 꽃향기가 가득하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상하지만 정말 그렇다 와인 자체의 포도 향도 나지만 꽃향기도 나고 다른 과일향도 나고 오크 숙성에 따른 온갖 향이 다 짬뽕되어 있다.
맥주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한국에서 뜨고 있는 맥주들은 화사한 꽃향기, 바나나, 사과, 배, 시트러스 등등의 향이 가득해서 여기에 뭘 넣었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별거 없다. 물, 몰트, 홉, 이스트 그 밖에 코리엔더 씨앗이나 오렌지 껍질 뭐 그 정도뿐이다.
맥주의 주된 향과 맛은 주로 홉에 의해 결정되지만 홉은 한정된 맛과 향만 줄 뿐 우리가 느끼는 복합적인 그런 향들은 효모에서 나온다. 그것이 바로 고등학교 때 화학, 생물 시간에 배운 에스테르라는 것이다.
효모는 당분을 먹고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고 에스테르라는 휘발성 물질을 만들어 낸다. 꽃향기인 페닐에틸아세테이트, 사과 향기인 부틸아세테이트, 배향기인 에틸아세테이트, 베리향인 이소부틸아세테이트, 바나나 향기인 아이소아밀아세테이트 등이다.
효모에 대해 더 궁금해져서 논문을 찾던 중 재미있는 논문 하나를 발견했다. 2014년에 Joaquin F. Christiaens라는 사람이 Cell Reports에 "The Fungal Aroma Gene ATF1 Promotes Dispersal of Yeast Cells through Insect Vectors "라는 제목으로 올린 논문인데 내용을 요약해 보면,
과일에 초파리가 꼬이곤 하는데 이는 과일 표면에 붙어있는 효모가 당분을 발효시키면 거 에스테르 즉 향기를 만들어 내고 초파리는 이 향을 맡고 더 잘 찾아온다는 것이다.
곰팡이의 일종인 효모는 다른 곰팡이류처럼 포자를 만들지 못해 이동 능력이 떨어진다. 즉, 누군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새로운 서식처를 찾을 수 없어서 꽃이 벌을 끌어들이듯 향기를 만들어 초파리를 불러온다고 한다.
요즘 맥주별로 다양한 효모가 나오고 그에 따른 다양한 맛을 만들어 내는데 그 비밀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 예전 화학 시간에 향기 분자를 끝까지 쪼개면 그 향이 딸기향이라고 배웠는데 조금 연구하면 진한 딸기향의 에스테르를 갖는 기가 막힌 맥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발효되는 맥주로 집안에 꽃향기가 가득하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