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은 밀레니얼 세대 중심의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상시 피드백이나 자율과 책임, 투명성, 평가의 공정함 등이 조직 변화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에 대한 오해로 인해 조직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심리적 장벽을 쌓기도 한다. 이에 대한 오해를 짚어보고 건전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
(HR Insight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이른바 FAANG으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들이 최고의 성과를 거두며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떠오르자 국내 기업들은 실리콘 밸리 따라잡기 열풍이 불었다.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대표적이다. 대기업은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직급을 축소하고 호칭을 통일하는 직급체계 개편을 서두르고 있고, 스타트업은 초기부터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로 시작한다.
전통적인 국내 기업들은 위계가 강해 직급이 낮고 나이 어린 직원은 의견을 말하기 어려웠다. Top-Down 방식으로 일하다 보니 자율보다는 지시와 통제에 익숙했다. 조직 문화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나 빠른 속도로 변하는 외부 환경, 밀레니얼 세대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는 조직구조 상황에서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로의 변화는 필수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문화 개선 자체는 목적이 아닌 과정일 뿐이다. 조직문화 변화의 목적은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수평문화와 자율문화에 대한 일부의 오해는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심리적 장벽이 될 수 있다.
1998년 스타트업으로 창업해 빠른 속도로 성장한 구글은 창업 초반 관리자들이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 생산성이 저해되기 시작하 면서 구글은 인사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생산성이 좋은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을 나누는 핵심이 탁월한 리더십에 있다는 결과를 발견한 것이다. 이후 구글은 좋은 관리자가 갖춰야 할 요건에 대해 명확히 정리하고 매년 설문을 통해 업데이트하고 있다.
수평문화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중간관리자가 필요 없어지거나 리더십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구글 사례에서 보듯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수평문화일수록 오히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수평조직에서는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고 직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는데 주저하지 않기에 다양한 의견이 공유된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의 명확한 방향과 원칙, 전략적 의사결정이 없을 경우 조직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자포스가 과감히 시도한 홀라크라시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의사결정 리더십의 부재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리더십은 직원의 성장과 조직의 성과에 있어 언제나 최우선으로 중요하다. 수평문화에서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할 뿐이다. 일상을 통제하고 간섭하며 일방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과 정보와 맥락을 제시해 직원들이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전략적 의사결정과 명확한 피드백을 통해 구성원의 성장을 돕는 코치 역할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 매니지먼트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비저너리 리더십과 코칭 리더십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수평문화의 회사일수록 탁월한 리더십을 갖추는데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수평문화에서는 직급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직급체계나 호칭 변화보다 중요한 건 누구나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피해나 보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머슨 교수는 이미 오래전 의견을 많이 제시하고 실수가 발생할 경우 편하게 보고하는 팀이 학습도 빠르고 성과도 좋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 결과 역시 탁월한 팀의 가장 최우선 조건은 심리적 안전감이었다.
이처럼 수평문화에서는 심리적 안전감이 중요하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수평문화를 안정적이고 편안한 회사로 오해하는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피드백하고 건전하게 토론하며 갈등을 마다하지 않는 문화에 가깝다. 얼마 전 글로벌에서도 성과가 좋은 기업 출신 한 명의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기업의 경쟁력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서로 비판하고 갈등하는 문화를 가장 먼저 얘기했다. 심리적 안전감에 솔직한 피드백과 건전한 갈등의 문화가 더해질 때 탁월한 성과가 생긴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수평문화가 추구해야 할 본질적 지향점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말하고, 실패에 대한 걱정 없이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솔직함과 갈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넷플릭스는 직원을 성숙한 어른으로 대하고 극도로 솔직해지라고 말한다. 직원들은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데 대한 초기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 피드백을 사려 깊게 되짚으며 성장한다고 한다. 픽사는 역량이 우수한 시니어 디렉터들의 솔직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브레인 트러스트라는 회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피드백이 오고 가며 건전한 토론과 논쟁을 유도한다. 평소 자신의 의견을 절대 드러내지 않다가 뒤에서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조직의 성장을 저해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찍히게 된다. 이들은 갈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갈등 상황에 수반되는 불편함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인다.
수평문화에서는 갈등보다 편안함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개인적 감정으로 갈등하거나 사소한 모든 일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해선 안 된다. 하지만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목표 달성 과정에서의 불편함과 갈등은 반드시 필요하고 당연한 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기분이 상할까 봐 서로 비판하지 못하고 친절하기만 한 조직은 솔직히 피드백하고 토론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문화를 이길 수 없다.
한 팀장이 고충을 토로한다. 회사 문화로 인해 팀원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문화가 다른 회사에서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회사로 영입된 리더는 적응이 힘들다. 해야 할 업무가 있는데 지시를 해도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 회사 분위기를 살피고 팀원 눈치를 보게 된다. 논쟁하기 싫어 혼자 야근하고 팀원이 개선해야 할 사항에 대해 피드백 하기를 주저한다.
수평적이고 자율적 문화의 조직에서는 좋은 게 좋다는 암묵적 가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착한 사람 증후군이다. 리더가 착한 사람 증후군에 빠지면 팀 분위기만 편해질 뿐 성과가 날수 없다.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지만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명확히 지시해야 하며 직원 역량의 성숙도에 따라 리더의 적극적 개입도 필요하다.
회사에서 직원들 대상으로 설문해 보면 ‘리더가 명확한 지시와 피드백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가장 많이 나온다. 오히려 리더 스스로 갈등하기 싫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는 경우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리더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면 결국 부채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는 계속 떨어진다. 팀원 눈치를 보며 도전적 목표를 부여하지 않을 경우 우수 인재의 동기는 사라진다. 우수 인재는 회사 내에 도전할만한 일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떠날 생각을 한다. 도전적 과제를 명확히 제시해주고 피드백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보상이고 동기부여가 된다.
수평문화에서 상하 간 활발한 커뮤니케이션과 의견 대립은 필요한 일이며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업무적 갈등은 많을수록 좋다. 수평조직에서 필요한 리더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도전적 목표를 추구하고, 이에 대해 명확히 커뮤니케이션하며, 그 과정에서 구성원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리더가 수평조직에 필요한 리더다.
자율적으로 일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성과관리를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구글은 소수점 단위로 목표관리와 평가를 진행하고, 아마존은 끊임없이 높은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리더십 원칙이며, 페이스북은 반기별로 7단계에 걸친 평가를 진행한다. 자유롭게 일 할 것만 같은 이들은 왜 이렇게 철저한 성과관리를 운영할까? 수평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자유롭게 일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탁월한 성과를 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율문화는 통제와 간섭을 최소화하고 과감한 권한 위임과 개인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문화이다. 그러나 자율문화에 대해 오해할 경우 무책임과 방임의 조직문화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성과관리가 동반돼야 한다. 조직문화 변화는 결국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며 성과관리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도이자 시스템이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에서 성과평가에 대한 엄격한 프로세스가 없으면 오히려 직원들은 공정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성과관리는 과거 방식으로 그냥 유지해야 할까? 물론 아니다. 수평문화와 자율문화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성과관리 변화의 키워드는 상시, 절대, 동료다.
성과관리가 연초에 한번 목표 수립하고 연말에 한번 평가하는 연례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연초에서 연말까지 계속 이어지는 회사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 자체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평가 관점이 아닌 상시 피드백 중심의 성과관리로 변하는 것이다. 휴넷에서는 상시 피드백 문화 정착을 위해 111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팀장과 팀원이 주간단위로 1:1로 1시간 미팅을 한다. 이 시간을 통해 코칭과 피드백, 문제 해결, 경력개발 논의 등이 이뤄진다.
상시 피드백의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평가의 수용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중에 아무 피드백이 없다가 연말에 한번 진행하는 평가에 대해 직원들은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서로 기대하는 결과를 명확히 합의하고, 이에 대한 눈높이를 계속 맞춰가는 상시 피드백 미팅은 평가의 수용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다.
절대평가 전환과 동료 피드백 역시 중요하다. 상대평가는 어쩔 수 없이 동료와 경쟁하게 만든다. 평가의 목적은 성장이고 과거의 자신보다 나아지는 것이다. 목표와 기대 결과에 대해 명확히 합의하며 달성 과정까지 종합해 절대 평가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동료평가는 자율문화 정착에 있어 필수적이다. 긍정적 동료 압박(Peer Pressure)은 개인성과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주는 좋은 장치이다.
회사에서 무제한 자율 휴가제를 시행한 지 3년 차가 됐다. 무제한 자율 휴가제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회사가 직원을 신뢰한다는 의미이고, 두 번째는 인풋 통제 방식이 아닌 아웃풋 성과중심으로 일하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무제한 자율 휴가 이후 특이할만한 점 중 하나는 성과가 좋은 직원들의 휴가 횟수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자율은 직원들을 프로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프로는 스스로 자기 시간과 성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반대로 자율이 악용될 경우 프리 라이더가 생기고 동료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규율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기업들은 비정하지는 않지만 모두 엄격한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하다는 것은 원칙과 기준이 없는 것이고 엄격하다는 것은 정해진 규율이 가이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로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지만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그저 다니기 편한 회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강력한 리더십, 솔직한 피드백과 건전한 갈등의 문화, 철저한 성과관리 프로세스가 규율로 함께 작용해야 한다. 분위기 좋고 다니기 편한 회사가 아니라 프로들이 일하기 좋은 놀이터를 만들어야만 수평과 자율이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조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