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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추임새 Mar 14. 2020

밥을 먹어야 먹은 만큼 일을 합니다.

김 부장님. 전 소고기를 사주셔야 하는데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처럼 회사생활에서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아직도 고군분투하는 90년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희망은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이렇게 김 부장을 모시는 저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간격이 긍정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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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발령이 완전히 이루어진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회색분자가 되었다. 

김 부장도 인사발령은 확정 전까지는 부서 이동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팀의 일을 잘 서브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인사팀에서 서브해야 하는 일을 간간히 내게 던지긴 했다.

사무실 이사 준비로 인테리어 업체들과 종종 미팅을 해야 했고, 인수인계 느낌처럼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인테리어 업체의 담당자는 만화에 나오는 부엉이 박사처럼 생긴 실장으로 박사들이 쓸 것 같은 안경을 끼고 회의를 했다. 말투가 연극인처럼 말하는 김 팀장과 비슷했다. 


스케줄을 조정하는 김 팀장과 실장을 쳐다보고 있으면,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했다. 

마감기한을 맞추지 못해 우리가 쪼는 입장의 회의였고, 예의 있는 말들이 오갔지만 가식의 고수들 같았다. 

나는 연극 말투에 적응하는 중이었고 김 팀장과 대화할 때면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성격이 파악되지 않았다.

 

인사발령이 그룹웨어에 업로드된 날, 영업팀원들이 하나같이 달려와 나에게 말했다. 

"왜 인사팀으로 갔어요? 영업 팀에 오고 싶어 했잖아."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쩌다 보니..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외향적인 성격의 난,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쥐약이어서 사무직군을 원하지 않았었다. 

어떻게 빵댕이를 가만히 두고 직원들을 서포트를 해야 할지, 나도 서포트를 받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여기에 뭐하러 출근을 하는 것인가. 내가 갈 때까지 가버린 건가.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


친구들이 너 부서 바뀌었어?라고 하면 자세한 내막을 얘기하지 못했다.

당신의 나는 서른이 딱 되었고 세계를 무대로 영업을 펼칠 나의 원대한 포부를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기에

인사팀이라고 말하기가 뭔가 쪽팔렸다.

서른의 나는 당당한 영업 우먼으로 거래처 2~3개는 관리하며 성장했을 거라는 꿈을 꿨었다.

내 꿈은 다시 처음으로 리셋되었다. 누구는 인사팀의 절대권력을 손에 넣었다고 부러워했지만,

내 속은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다. 


부서 이동 후에도 나는 간간히 다른팀들을 따라가서 밥을 먹었었다. 

발령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김 부장이 팀원이 하나인데 서로 식사를 해야 하지 않냐며 점심을 하러 가자고 했다. 본인은 원래가 간헐적 단식처럼(이때부터 그가 독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며 점심은 혼자서도 잘 챙겨 먹으라고 했다.

 

우리의 첫 식사에서 김 부장은 밥을 잘 먹어야 일할 힘을 낸다는 고리타분한 조언을 했다. 

그리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소고기, 한우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연극 말투에 나도 말투가 이상하게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아.. 저는 다 좋아합니다.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나는 김 부장에게 낯을 가렸었다. 

파악할 수 없는 그 말투에 나는 저절로 정숙해지고 말았다. 

우리는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나는 언제 한우를 사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업무를 하다가 트러블이 일어나면 결재판을 던질까 소리를 지를까.

김 부장은 예측이 되는 팀장이 아니었기에 나는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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