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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Jun 06. 2021

격리 3일, 찾아온 반가운 얼굴

호주 호텔 격리 3일 차


명상과 운동이 정답이다.

격리 3일째 몸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여전히 몸은 무겁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몸도 마음도 많이 가볍고 상쾌함을 느껴졌다. 오늘부터 호텔 격리를 낭비하지 말고 알차고 재미있게 보내자는 생각이 들어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발코니 문을 활짝 열고 서서 경치를 보며 뭉쳐있는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꼼꼼히 했다. 그런 다음 침대에 다시 올라가 앉아 명상을 했다.


그런 후 호텔 방 벽을 따라 걸으며 아침 산책도 나름 즐겼으나 걸어 다니기엔 좁은 공간이라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줄넘기 없는 줄넘기를 했다. 호텔방에 갇혀 있지만 갇혀있는 기분이 들지 않게 하는 데에는 명상과 운동만 한 것도 없겠다 싶고 이 기회에 몸과 마음의 회복에 주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 돌아오니 10년 넘게 해오던 나의 습관이 몸속에서 살아나는 것 같아 감사했다. 이른 아침부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오랜만에 땀도 흘리며 알차게 보냈다 싶어 흐뭇해하다 오늘도 익숙하지 않은 노크 소리에 놀라며 아침 식사가 배달된 것을 알았다.


아침식사를 방 안으로 들고 들어와 열어보다 '와~ 아보카도다.'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한국에 있으면서 가끔 그리웠던 메뉴였었다. 오늘 아침에 잘 구워진 토스트 한쪽과 노른자가 흐르게 데쳐진 계란이 빠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 문득 격리를 시작하면서 식사가 제공된다는 것에도 무척 감사했는데 벌써부터 아쉬움이 생기며 슬쩍슬쩍 음식 평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고 다시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

 


노래가 다시 위안으로


호주 오기 전 한국에서 어떤 계기로 마음이 얼어붙은 듯 차가워져 식욕도 의욕도 잃어버려 노래도, 글도, 그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었다. 그랬었는데 오늘 가방에서 작은 스피커를 꺼내어 노래를 틀어 방안 잔잔하게 노랫소리로 가득 채워두고 샤워도 하고 발코니에 나가 앉아 한참 감상하며 멍 때리기를 즐기다 보니 사르르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다시 졸음이 찾아왔다. 평소 낮잠을 전혀 즐기지 않은데 이렇게 맥없이 졸리니 '미녀는 잠꾸러기라더니 미녀가 되려나' 하는 싱거운 생각이 들어 피식 웃으며 침대로 자리를 옮겨 이른 낮잠을 즐겼다.




점심

낮잠을 즐기고 일어나서 책을 읽다 노크 소리에 놀라며, 언제쯤에나 익숙하게 노크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궁금해졌다. 오늘 점심은 감자 수프와 치킨 랩이었다. 겨울이라 따뜻한 음식이 당기니 감자 수프를 먼저 먹고 나니 배가 차서 치킨랩을 맛만 보고는 내려놓았다. 과일은 건강을 위해 모두 해치웠지만 수박 빼고는 두 가지 색 레몬들과 파인애플은 완전 무맛이었다. 삼일째인 오늘, 먹지 않고 남은 간식들과 음료수들이 이미 서서히 쌓이고 있다. 이런 식이면 14일 격리가 끝나면 아주 많이 쌓일 것 같고 버릴 수는 없으니 집으로 가져가면 한동안 간식은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아들과 상봉

오늘은 아들이 호텔로 방문한다고 했다. 아들은 내가 호주에 도착하고부터는 계속 '뭐가 먹고 싶은지, 필요한 건 없는지 호텔 올 때 무엇이든 준비해서 가지고 온다며' 전화 통화 때마다 물었지만 필요한 것이 전혀 없어 고민했다. 그래서 아들은 나름 맥주 6병과 한국에서 먹고 싶다고 말한 적 있는 시고 짠 감자 칩스 그리고 신컵을 몇 개 사 왔다. 날 닮아 손이 큰 아들은 신컵도 한 박스 사 오겠다는 것을 두세 개만 먼저 사달라고 했고, 햇반과 참치캔도 사 오겠다는 것을 호텔에 전자레인지도 없을뿐더러 아직까지는 호텔 음식에 불만 없다고 설득시켰다.


호주에 도착해서 내가 아프고, 아들도 병원 일이며 감기로 고생하는 바람에 서로 전화로만 소통하다 오늘 드디어 아들과 아들의 파트너가 호텔로 찾아와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10층이라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 세 사람은 전화 통화를 하며 이렇게라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아들과 그의 파트너는 둘이 합쳐 머리 위로 큰 하트를 만들어주며 다음을 기약하며 떠났다.






방까지 찾아온 손님

아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발코니에 앉아 있는데 롤리킷 앵무새가 발코니에 찾아와 난간에 앉았다. 먹고 있던 것을 쥔 손을 그대로 내밀었더니 폴짝 내려앉는 나의 먹거리를 살펴보는 녀석의 용감함에 손을 내민 내가 적잖이 놀라 가슴이 뛰었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새는 지켜보는 정도만 좋아했기에 겁이 났다. 그러면서 손을 내민 나의 객기와 거기에 날아와 앉는 앵무새의 용기에 겁이 났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까칠한 발톱을 지닌 녀석의 행동은 사람 손에 꽤나 익숙하게 앉아본 경험 새인 듯 한동안 날아가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기에 앉았기에 내가 먼저 겁에 움찔하는 바람에 앵무새가 훌쩍 날아가 버렸다. 날아가는 앵무새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내일부터는 찾아와도 절대 손은 내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녁 식사

아들도 앵무새도 날아가고 오후 운동으로는 요가를 틀어놓고 따라 하고 반신욕을 즐기고 나왔다. 깊고 큰 욕조가 있다는 것도 너무 행복했다. 씻고 나와서는 켈리 그래픽을 따라 써보며 글씨체를 연습하고 익히는데 저녁 배달되었다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저녁 배달 시간을 미리 체크하며 기다리다 보니 처음으로 노크 소리에 크게 놀라지 않게 되었다.


저녁으로 배달된 음식은 그리스식이나 아랍 음식으로 사워크림 소스가 올려진 소시지와 볶음밥이었다. 한국을 떠나는 날부터 5일 만에 처음 보는 밥이라 욕심내어 조금 많이 먹었다. 역시 한국 사람은 밥심인가, 빵보다는 원래 밥을 좋아하는 나라서 입안에 들어오는 밥의 식감은 다르지만 저녁을 먹는 내내 즐거웠다.


저녁을 먹고는 야경을 구경하며 책을 읽다 이렇게 격리 3일 차를 무사히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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