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인생 경험에서 이때까지 평생 격리를 해본 적 없었기에 '격리'라는 말 자체에서 받는 거부감에 막연한 불안감이 생겼다. 호주로 돌아올 준비를 하면서 강제 격리를 피할 수 있는 방법도, 호텔을 선정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기에 어차피 호텔에서 강제 격리를 하니 다른 지역이 아닌 내가 사는 지역 호텔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집에서도 혼자 잘 노는 편이라 호텔 격리를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14일 동안 바깥 외출을 하지 못해, 가족이 보고 싶다는 등으로 어리광 피우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호주로 출발하기 전 입국과 격리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어보며 호주 정부에서 요구하는 서류들을 하나씩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전 처음 해보는 코로나 검사도 받아보고 준비를 하다 보니 격리 장소도 어디가 되든 상관없이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도 함께 되었다.
호텔 도착
준비된 마음으로 호주에 도착해서 호텔은 다행히 내가 사는 지역에서, 그것도 익히 잘 알고 있는 호텔로 배정받아,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호텔로 향할 수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방 배정을 받고 호텔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넓은 방과 발코니 창문으로 보이는 경치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호텔 생활 정보를 읽으면서 격리 생활이 더욱 맘에 들기 시작했다.
격리 14일 동안 삼시세끼 식사와 빨래까지 해 준다는 설명에 이게 웬 호강인가 싶었다. 남이 만들어주는 식사로 14일 동안 호텔에서 편하게 지낼 수가 있다는 말은 지난 30년 만에 처음 주어진, 가질 수 있는 멋진 조건이었다. 이참에 아무 걱정 없이 맘껏 푹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리 생활
격리 생활은 하루하루가 순조롭게 지났고 이제 내일 아침 10시면 체크아웃을 하기로 이미 며칠 전에 체크아웃 동선을 설명하고 내일 10시에 맞춰 경찰이 에스코트 오면 방에서 나오기로 확정했다.
격리를 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격리 동안 마음속으로 나중을 기약하며 몇 가지 부러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보던, 이른 아침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의 모습을, 운동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아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었고, 차가 지나가는 모습, 트렘이 지나다니는 평범한 모습들이었다.
격리를 하다 보니 그전까지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던 작은 것에 감사함이 다시 들었다. 집 밖을 자유롭게 나갈 수 있고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음에,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 등 그전까지는 당연했고 쉬웠던 일상이었기에 감사함을 잊고 살았는데 격리를 하다 보니 일상이었던 작은 것들이 다시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호주 정부 지정 격리 호텔
퀸스랜드 정부 지정, 코로나 환자만 받는 호텔이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새로운 격리자들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들이 오는 시간에는 모든 배달이 중단된다는 사과문이 아침 식사와 함께 배달되어 왔다.
격리 중 코로나 검사와 호주 보건부의 전화 연락
격리를 하는 동안 나는 호주 정부가 진행하는 코로나 검사를 2번 받았다. 격리 3일째와 10일째에 검사를 받았았고 검사 결과는 다음날 문자로 보내왔다. 코로나 검사를 받을 때에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나름 좋았다. 두 명의 의료진이 의료장비를 끌고 와서 검사를 하고 군인 한 명이 뒤에서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의료진이 방문을 두드리면 발코니 문을 닫고 화장실 환풍기를 틀어 놓은 다음 문을 열고 의료진을 맞았다. 그런 후에는 의료진이 문을 발로 잡고 서면 나는 벽에 붙어 서서 검사를 받았다. 이때도 나는 방에서 한 발자국도 밖을 나가지 않고 검사를 받았다.
격리하는 동안 호주 보건부와 호텔에 상주하는 의료진들의 전화를 자주 받았다. 전화를 걸어오면 제일 먼저 나의 이름 스펠링과 생년 월일을 꼼꼼하게 체크하며 기록을 남기는 듯했다. 처음 호텔에 도착해서는 하루에 두 번도 전화를 걸어주어 격리 정착에 신경 써 주었고, 어떤 필요함이나 불편함이 생기면 주저 없이 호텔 리셉션에 연락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코로나 검사 날짜와 체크아웃 날짜를 알려주었다.
그런 후에는 이삼일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나의 몸과 마음 상태를 상세히 물어주며, 방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필요하거나 부족한 것은 없는지. 가족과 친구들과 소통을 하고 지내는지도 물어오며 대화를 했다. 이들과 통화를 마칠 때마다 항상 '나와의 대화가 오늘 최고의 통화였다'는 찬사를 듣고 통화를 마쳤다. 통화를 마칠 때면 매번 이런 소리를 듣다 보니 그냥 인사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통화를 하면서 나도 즐거웠기에 되었다.
격리 끝나기 하루 전에
격리 생활을 하루 남겨 놓고 돌아보니 호주 정부에도, 서비스를 하는 호텔에도 아무런 불만도 불평도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격리되었지만 돌봄을 받은 것 같았고 추가로 부탁하는 작은 요구에도 모두 진심으로 즉각 들어주어 좋았다.
지난 13일 동안 꼬박꼬박 일정한 시간에 챙겨주는 밥을 먹으며 쉴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처음 며칠 지나니 움직임이 많지 않은 생활에서 이렇게 먹고 쉬다가는 살이 찌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 운동도, 스트레칭도 하며 열심히 움직이며 방에서 혼자 난리법석을 부린 듯해 웃음이 나온다.
음식은 넉넉하게 나왔고 삼시세끼 제공 중에 먹지 않아 쌓이는 시리얼, 디저트와 음료수가 무척 많이 남아 고민이 되었다. 이것은 개인에게 제공된 것이라 내가 집에 들고 가지 않으면 모두 버려질 것 같아 챙겨 가야 할 듯해 아들과 상의하니 들고 오면 아들이 먹겠다고 한다. 병원 다니면서 먹고, 그의 파트너 런치 박스에도 넣어가면 된다고 한다. 나는 이런 것을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다 싶다.
나는 격리 생활을 무척 감사히 즐기면서 잘했다고, 오늘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내일이면 체크아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병원 일 시간을 조절해서 내일과 주말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이미 계획한 착한 아들의 픽업을 받아 호텔을 빠져나가면 우리 둘 제일 먼저 즐겨 찾던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장소를 옮겨 내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점심도 먹고 쇼핑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자는 계획을 아들이 세웠다. 점심 메뉴는 나의 선택으로 주어졌고 나는 아직까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 내일 점심은 내일 느낌대로 가기로 했다.
오늘은 내일 체크 아웃을 위해 꺼내 다시 이때까지 쓴 방과 가방 정리를 하려고 한다. 이렇게 나의 호캉스에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다. "즐거운 격리 생활,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격리 생활 찐하게 잘했다"라고
이렇게 내일이면 호텔 격리 14일은 끝이 날 것이고, 격리를 하면서 나는 격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호주 퀸스랜드 주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아주 자유롭게 다니며 일상을 예전처럼 누리는 모습을 본다. 물론 몇번의 위기가 생겼던 적도 있는 걸 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금 강력했지만 차단을 시켜 이겨낸 것이라 본다.
그래서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인 나는, 나를 위해서도, 가족과 지역 사회를 위해서도 이런 격리 과정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받아들였고 전 세계적 판데믹 상황에서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고 불평을 한다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호텔 격리까지 번거로운 절차도, 호텔로 이동을 하면서도, 오랜 기다림속에서도 그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짐작된다.
모두가 오랜 시간 동안 참고 인내하며 절차를 거쳐 방으로 안내가 되었고 14일을 나처럼 모두 잘 견뎌내는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