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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Jul 23. 2021

엄지발가락이 닮았다.

엄마와 아들


"우와! 진짜 똑같다. 네가 내 엄지발가락을 가져갔구나."


"무슨 말이에요. 엄마?"


옆으로 바짝 다가와 앉으며 아들은 자신의 엄지발가락과 나의 엄지발가락을 서로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했고 나는 반가움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호주에 와서 4년 뒤에 임신이 되었고 그때까지도 임신은 계획에 없던 일이라 겁이 났었다. 하지만 받아들였고 임신 기간에도 일을 했고 한국이 아니었기에 변화된 모든 상황에 적응하며 순조롭게 지냈다. 그래서 그랬는지 태어난 아들도 순한 성격으로 나만 있으면 잘 울지도 않는 착한 아기였다.


부모도, 형제도 없는 외딴곳에서 혼자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인생에서 습득한 모든 것들을 행동으로 말로 전해 주었고 아들은 주는 데로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나를 닮으며 자랐다. 그래서 아들의 성격과 행동에서는 나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외모는 비슷한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성별이 다르기에 닮았다고 꼭 집어 말할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없었다. 그런데 이날 나는 우연히 나를 똑같이 닮은 아들의 신체 부위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엄지발가락이었다. 발가락 위가 도톰하게 통통해서 마치 구부려져 있는 것 같은 엄지발가락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 아들에게 증명할 수는 없었다. 그때는 이미 출산 후라 나의 엄지발가락은 쭉 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쩜 너희들은 엄지발가락까지 닮았냐"


"할머니가 보기에도 나랑 엄마와 똑같이 닮았어요?"


"응, 똑같다."


할머니와 손자가 거실에서 서로 발가락을 만지고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더 이상 아니에요. 찰리 낳고 정신 차려보니 발가락이 펴졌더라고요."


 나는 그들에게로 다가가서 내 엄지발가락을 짜잔 하며 보여 주었다.



"진짜네. 아기 낳느라 얼마나 용을 썼으면 발가락이 다 펴졌네"


"나 낳느라 엄마 고생 많이 했데요, 할머니"




임신, 출산, 육아 중 나는 출산이 가장 힘들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양수가 터져 새벽 3시에 병원에 입원했고 그렇게 입원해서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3일간 진통으로 울었고 겨우 분만실로 올라갔지만 분만실에서도 14시간 만에 아들을 낳았다.


너무 지치고 힘들게 출산을 한 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기하게 나의 엄지발가락이 쭉 펴져 있었다. 처음에는 보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했지만 쭉 펴져버린 엄지발가락으로 예전의 볼통했던 나의 엄지발가락은 잊혔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의 엄지발가락을 우연히 보고는 사라져 버린 나의 엄지발가락이 어디로 갔는지 알게 되었다. 너무 똑같이 나의 엄지발가락을 닮아 있어 우습기도 반갑기도 했고 신기했다.




어느 순간 추억이 되어버린 나의 엄지발가락을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았고 아들은 출산의 고통을 겪지는 않을 것이니 평생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엄지발가락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아들을 보면 발가락이 닮은 것은 유전인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셨으니 이것은 오직 나에게서 시작된 유전인자인 것 같아 더욱 특별하다고 생각된다.


훗날 나의 엄지발가락을 닮은 손자가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도 궁금해진다. 나의 아들도 자신의 엄지발가락을 그대로 닮은 아들을 본다면 그제야 지난날의 나의 마음을 조금은 느끼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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