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이사이야기
'호주에 살면서 이사를 몇 번이나 했을까?'
시드니에서 4년 정도 사는 동안 젊은 혈기로 7번 이사를 하며 여러 지역에서 살아 보았다. 그런 후 아들이 태어나고 한 살 되기 전에 골드코스트로 옮겨와서는 3번 집을 옮겼지만 마지막에 아들과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서는 19년 동안 살았었다.
대학 졸업하고 이십 대에 호주로 건너와 살면서 나는 오십 살이 훌쩍 넘었고 그러는 사이에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은 성인이 되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나는 책임과 의무를 마친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과 동시에 뭔가를 잃어버린 허전한 느낌도 함께 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살아온 나의 모든 것을 재정립해 보았다.
지난날을 반성하며 돌아보다 다시 나를 찾고자 하는 꿈이 생겨났다. 그래서 아들이 직장을 갖는 시기에 맞춰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우선 외국에 살고 있는 오빠와 언니들을 찾아가서 그 주변 국가들을 조금씩 여행을 하며 여러 나라를 다녀 볼 욕심이 생겨났다.
2년 동안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우선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을 정리하는 동안 19년 동안 쌓고 스며든 추억들이 떠올라 여러 감정들을 만나 울기도, 웃기도 했었다. 아까운 것들은 중고 매매를 하려다 마음을 바꿔먹고 친한 친구들이 원하는 것은 선물로 주고 그 외 일체는 동물 복지 제단에 기부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여행용 가방 두 개에 나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었다.
2년 장기 여행에 오르며 브리즈번 공항에서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환하게 웃으며 호주를 떠났다.
첫 방문지인 한국에 도착하고 일주일 지나자 코로나가 터졌다.
84세 노모가 걱정되어 호주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한국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전 세계적 팬데믹으로 3개월 이상은 체류가 허락되지 않던 관광비자 연장을 15개월간 연장할 수 있었다.
15개월 후 더 이상 연장이 거절되어 2주의 시간을 받아 한국을 떠날 준비를 했다.
코로나로 호주 여권을 가지고는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었기에 호주로 돌아왔다.
올해 들어와서 아들은 나를 위해 호주에서 먼저 집을 서서히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집값이 많이 올랐고 경쟁력도 심해져 집을 매입하기에는 좋은 시기는 아니었지만 7개월 앞당겨 나의 호주 귀국이 결정되어 급해져서 부동산 매입에 좋은 시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호주에서는 임대료와 집 매입 가격을 급격히 올려놓았고 경쟁도 심해져서 임대를 위해 오퍼를 넣어 3-4번씩 떨어지는 경우가 다 있었다는 한 친구의 하소연도 들었다. 호텔 격리를 마치면 먼저 임대를 해서 잠시 살면서 천천히 집을 매입할까, 에어비엔비로 임시 거처를 구할까를 생각하며 호주에 도착해서 호텔 격리를 하는 동안 내내 임대와 매입을 위해 부동산 웹서핑을 많이 했다.
몇몇 친구들이 자신의 집에서 지내라는 제공도 해왔지만 호텔 격리를 끝내고 아들의 강한 설득으로 아들이 사는 집의 그레니 플랫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힘듦도 풀지 못한 상태에서 7개월 일찍 호주로 돌아와 급하게 집을 구하는 기분이 들어 편하지 않았지만 나의 귀국에 맞춰 아들은 휴가를 내어 그런 나의 마음을 잘 보살펴주었고 그 노력으로 나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시간 집을 찾는데 투자했고 부동산과 예약해서 아들이 쉬는 날에 맞춰 인스펙션이나 오픈하우스를 산책 가듯 가볍게 보러 다니면서 카페를 찾아 커피나 브런치도 먹으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다 보니 집 구경도 서서히 즐기게 되었다.
어느 순간 특별한 이유 없이, 나이가 들었는지 땅 욕심이 생겼다. 정원에 작은 텃밭도 만들어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 하우스도 같이 보러 다녔다. 그래서 하우스와 아파트에서 갈등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우스를 보러 다니면서 그리고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나의 예상 금액으로 하우스는 조금 외곽으로 빠져야 좋은 것을 살 수 있었고 그러면 아들의 집과 병원과 우리가 좋아하는 바닷가 쪽에서도 멀어져야 했다. 그리고 특히 곤충을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하우스는 흰개미, 개미, 거미와 나방 같은 너무나 다양한 종류의 곤충들과 싸워야 하고 집 안은 물론이고 밖까지 끝없이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이 원하는 엄마 집은 자신의 집에서도, 일을 마치고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를 원했고, 엄마가 하루 종일 집 고치는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아직은 엄마에게 집중하며 편하게 살기를 원하기에 관리하기 쉬운 아파트를 적극 권했다. 그리고 나중에 좀 더 엄마가 나이가 들고 그때도 하우스를 원하면 자신이 가까운 위치에 하우스를 하나 사주겠다며 약속해왔다. 그래서 설득당해서 어느 순간 하우스가 아닌 아파트나 타운하우스를 보러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