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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Nov 08. 2021

안개비 내리는 오늘 아침은 비 멍으로



4시 30분에 일어나 밖을 보니 어제와 같이 흐린 날씨였다. 이번 주 내내 흐린 날씨였지만 산책하기에는 좋았던 날씨라 준비하고 밖이 훤해지자 곧 10살이 되는 귀염둥이 바디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현관을 나가자 그때서야 비가 내리는 것을 알았다. 그저 흐린 날씨인 줄 알았는데 안갯속에 비가 숨죽인 듯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이왕 내려왔으니 제대로 된 산책은 아니더라도 우리 바디 실망시키면 안 될 것 같아 점퍼 후드를 올려 쓰고 비속을 걸었다.


바디는 비 맞는 것이 성가신 듯 연신 털어 내며 걷다 서둘러 아침 용무를 봤다. 그래서 ‘턴! 레츠 고 홈’이라 말했더니 걸음 멈춰 서서 나를 올려다봤다.


평소 아침 산책으로 적게는 5킬로에서 9킬로를 걸을 때면 집에 가자는 말이 떨어지면 바로 방향을 돌리고 기쁜 듯 껑충껑충 뛰며 나를 앞질러 걸어 나가던 바디였는데 오늘의 짧은 산책이 이상한지, 습관이 무서운지 걸음을 떼지 않고 멈춰 서서 나를 살피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말해주고는 내가 먼저 방향을 돌려 바디를 당겨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도착하니 짧은 시간 동안 옷이 꽤 많이 젖어 있었다. 집에 들어와 바디를 먼저 닦아주고 아침밥 만들어서 먹게 해 주고 나는 간단히 샤워하고 나와 젖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세탁기 돌리는 날인데 나의 허락도 없이 비가 내리네’라는 생각을 하며 웃다가 거의 실직 상태인 건조기도 모처럼 일을 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린 날씨에 비까지 맞았으니 따뜻한 차 한잔이 간절해졌다. 아침 6시도 안된 이 시간, 평소면 산책 중일 시간이니 오늘은 발코니에서 이른 모닝 티 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포트에 물을 끓이고 티를 꺼내어 준비하고 핸드폰 뮤직 플레이 리스트에 들어가서 음악을 준비하고 스피커를 켰다. 물이 다 끓자 티를 우려내고 차가운 우유를 적당히 넣어 따뜻한 밀크티 한잔 만들어서 발코니로 나왔다. 멀찍이 소파에 누워 나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바디도 따라 나왔다.


거의 매일 아침 산책을 마친 후 발코니에서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오늘처럼 바람이 불지 않고 촉촉이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 시간을 더욱 사랑한다.


차를 마시며 멀리 숲을 바라보니 안갯속에 수줍은 듯 몸을 숨긴 나무들이 촉촉이 내리는 비로 단장한 듯 초록이 한결 짙어져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나의 텃밭이 궁금해져 일어나 발코니 끝에 서서 내려다보니 다른 이와의 텃밭 경계로 심어 둔 옥수수들이 부쩍 자라 멋진 경계를 만들고 있었고 오늘 비를 맞으니 옥수수는 물론이고 상추, 파슬리, 고수, 애호박, 오이, 고추, 가지 등 모든 채소들도 훌쩍 자라날 거라는 생각으로 내리는 비가 고마워졌다. 식물을, 채소를 키우면서 비가 최고의 영양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조용히 내리던 비가 빗방울이 굵어지며 소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비는 이렇게 내릴 것 같다. 이른 아침 따뜻한 차 한잔 들고 발코니에 나와 앉은 나의 오늘은 멍 놀이로 시작된다.


비를 보며 비 멍, 하(늘) 멍, 숲 멍, 안(개) 멍… 즐길 수 있는 멍들이 많아 갑자기 부자 된 듯 행복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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