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심을 수 있는 채소를 찾다 보니 무 씨가 눈에 들어와서 지난겨울에는 빨간색과 흰색 무 씨를 심었다. 씨를 한꺼번에 뿌려 싹을 틔우니 너무 많아서 텃밭을 가지고 있는 이웃에게도 모종을 나눠주었고 올겨울 내내 지금까지도 텃밭에서 무를 수확해 아주 잘 먹고 있는 중이다.
빨간색 무는 한번 키워본 적 있어 그 경험 그대로 심고 잘 커서 샐러드로 즐겨 먹었다. 그러나 흰색 무는 처음 키우면서도 키우는 방법을 찾아보지 않고 그냥 빨간색 무처럼 생각하고 심었더니 다 자란 흰색 무의 생김새가 삐딱 삐딱한 것이 개성적이었다.
흰 무는 심기 전에 땅을 부드럽게 잘 일궈줘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에 딱딱한 땅을 깊게 파고들려고 하다 보니 모양이 각각 다른 개성 있는 무가 되었지만 먹기에는 단단하니 전혀 문제없었다. 그리고 나는 무보다는 무청을 더 좋아하기에 텃밭을 가득 채우며 탐스럽게 자라는 무청은 먹는 것도 좋았지만 키우는 즐거움까지도 좋았다.
하루에 한두 번씩은 텃밭에 둘러보며 이틀에 한 번은 물을 준다. 백 프로 유기농법으로 텃밭을 관리하고 물만 주는데도 나의 텃밭 식물들은 잘 자란다. 겨울 내내 무도 쑥쑥 자라서 굵어진 무 순서대로 서너 포기씩 뽑아서 김치를 담아 먹기 시작했다.
김치를 담아 먹어보니 비료 없이 키워 그런지 무청이 질겼지만 건강하게 자란 것을 알기에 질긴 느낌조차 나쁘지 않았다. 김치는 다 먹고 떨어지면 그때그때 뽑아와서 김치를 새로 담았고 올 겨울 내내 무 김치는 떨어지지 않고 먹고 지금도 먹고 있다.
그렇게 김치만 담아 먹는 나에게 울 언니들이 물김치도 담아 보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물김치를 좋아하지 않고 호주에 살면서 한 번도 물김치를 담아 먹어본 적조차 없었다.
그래서 언니들에게 레시피를 듣고 오십 살도 훌쩍 넘은 내 인생 처음으로 물김치에 도전장을 냈다.
물김치는 한번 담아보니 담는 법이 너무 쉬워 놀랬고 처음 담은 물김치 맛이 생각보다 좋아서 놀랬다. 물김치를 담아서 익혀 그냥도 먹고, 따뜻한 밥을 넣고 쓱쓱 비벼 먹기도 하며 즐겼지만 나는 김치를 별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특히 물김치는 더욱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물김치에는 밀가루 풀물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하얀 물김치와 빨간색 물김치를 각각 한 번씩 담아 먹고는 더 이상 물김치는 담지 않았다.
겨울 내내 지금까지 무를 심어서 먹다 보니 김치만 담기에는 넘쳐나서 무 활용법, 무 요리를 찾아보았다.
무와 무청을 말려서 말린 무청을 삶아 시래기 된장찌개에도 사용해 보았지만 말린 무청을 삶아보니 녹색잎이 다 녹아 떨어졌다. 그래서 무청을 다시 말리지는 않았다.
무청은 삶아서 용도에 맞게 썰어 냉동 보관해 두고 음식에 이용하니 활용도가 높고 좋았다. 이번 겨울에는 무와 무청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보고 요리해서 먹었다.
호주에 30년 넘게 살면서 처음으로 무를 직접 키워 먹으면서 다양한 무 요리를 시도해 보았다. 그전에는 아주 가끔 무를 사면 무만 있기에 깍두기를 한두 번 담아 본 경험이 전부였었다.
그런데 키우니까 텃밭에서 서너 개씩 뽑아와서 무청과 무를 분리해서 김치도 담을 수 있었고 질긴 무청 김치는 담고는 다음날로부터 먹기 시작하고 깍두기는 냉장고에 보관해 잘 익으면 아들, 미래 사돈, 친구들에게도 나눠주었다.
호주는 9월 1일 오늘부터 봄이 시작되었다. 이제 나의 텃밭에도 봄 채소를 심기 위해 곧 겨울 작물을 텃밭에서 비워내야 한다. 겨울 내내 고마웠던 무를 비워내야 하지만 여전히 잘 자라고 있으니 빈자리부터 봄 채소를 천천히 심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