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2025년 8월 29일 금요일 -

by 최용수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 1864 ~ 1949)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Op.30/ "Also sprach Zarathustra", Op.30>


https://www.youtube.com/watch?v=e-QFj59PON4


새벽에 비가 내렸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대기, 어제 이맘때쯤 들리던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지 않아 오랜만에 새벽의 고요에 잠긴다. 오늘은 아무래도 아침에 이 글을 게재하기 힘들 것 같다. 물리적인 시간상...


지난 이틀 동안 부천 웹툰융합센터에서 진행된 생성형 AI 영상제작 실습과정에 참여했다. 오늘은 그 마지막 날이다. 강의가 시작되는 오전 9시에 맞추느라 아침 산책도 포기하며 오늘 아침까지 부산을 떨었지만, 막상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바탕으로 오늘까지 예제영상을 만들어 제출하기가 난망(難望)해 보인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AI 영상 생성툴들인 Midjourney, Runway 뿐만 아니라 여러 회사들에서 출시한 오디오 편집 도구, 립싱크 수정 도구, 오디오 생성 도구들을 고작 3일(실제 수업 시간은 20시간 정도?) 동안 다 배우고 활용하려니 정신이 없었다.(사실 여러 도구들의 매뉴얼 익히기에도 벅찼다.) 2인이 하나의 편집 툴을 가지고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ㅠㅠ)

그나마 이 강좌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평소 깊게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던 AI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해야 하나... 수업이 끝나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브런치를 열었다...


오늘 고른 음악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앞서 링크에서 보았겠지만 이 음악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에 발표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과 중요한 장면 장면마다 사용되었다. 왜 이 음악을 골랐는지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영화에서 서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AI이기 때문이다.




1968년 개봉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한 AI에 대한 서사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영화사적으로 가장 혁명적인 SF영화(미국영화연구소 AFI 선정 최고의 SF영화)이자 작품성으로도 전설적인 영화 고전 <시민 케인>, <대부>와 함께 평론가들이 뽑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6위를 차지한 작품이다.(2012년 영국 '사이트 & 사운드'지, 영화 평론가 대상 설문)


이 영화는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는 '인류의 새벽'이라는 에피소드로 선사시대 호미닌(600~700만년 전 유인원에서 분화되어 나온 인류의 조상과 현생 인류를 통칭)들이 모놀리스(반듯한 직육면체의 물체로 극중에서는 외계인들의 장치)를 만나 도구 사용법을 깨우치며 진화의 첫 단계를 맞는다. 2부는 수백만 년 후인 2001년, 달의 크레이터에서 발견된 또 다른 모놀리스가 목성을 향해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3부는 가장 긴 에피소드로 18개월 후 목성 탐사선 디스커버리 1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우주선의 운항과 승무원 관리까지 선장을 대신해 우주선의 거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컴퓨터 HAL 9000(이하 'HAL')은 현재 기술로도 넘사벽인 성능의 AI(인공지능)이다. HAL은 지구에서 출발하기전 승무원들에게 특정시점 전까지는 달에서 목성으로 신호를 보내는 모놀리스를 탐험하는 임무에 대해 함구하라고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승무원들에게 운항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정확하고 거짓없이 전달해야한다는 컴퓨터의 일반원칙과 배치되는 명령이었다. 결국 HAL은 두 논리가 충돌하는 논리적 오류에 빠져 승무원들을 살해하게 되는데(두 가지 임무를 모두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냥 다 죽이면 되겠군"이었다), 조종사 데이브 보우먼이 간신히 살아남아 가까스로 HAL을 비활성화시키면서 3부가 마무리된다.

4부는 HAL을 무력화시킨 데이브 보우먼이 목성 궤도에서 거대한 모놀리스와 조우한 후, 스타게이트라 불리는 환상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시공간 터널을 통과하며 색채와 빛의 현란한 시각적 여행을 경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시공간 터널을 통과한 보우먼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꾸며진 신비로운 방에 도착해 급속한 노화와, 임종, 그리고 태아 형태의 "스타 차일드"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외계 지성체에 의해 인류 진화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고 해석되는데 영화는 지구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태아("스타 차일드")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이 4부는 대사가 전혀 없이 순수하게 시각적 표현과 클래식 음악(리게티의 작품들)만으로 구성되어,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경험을 관객이 직접 체감하도록 의도된 실험적 영화 언어의 극치를 보여준다.


HAL은 영화에서 기술에 대한 인류의 맹목적 신뢰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상징하는 핵심 캐릭터로, 완벽한 논리와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감정과 도덕성이 결여된 차가운 지성의 화신이다. HAL의 오작동과 살인 행위는 단순한 기계 고장이 아니라 임무 성공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논리가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시되는 아이러니로 창조자인 인간이 자신들이 만든 기술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해 죽임까지 당하는 상황에 대해 관객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HAL이 해체되면서 "데이지 벨"을 부르며 애원하는 장면은 기계가 과연 진정한 의식과 감정을 가지는지, 아니면 단순한 시뮬레이션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며 기술 발전의 윤리적 한계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영화 전체로 보면 HAL에 대한 묘사는 인류 진화의 세 번째 단계에서 기술적 진보가 가져올 수 있는 딜레마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모놀리스가 제시하는 진화의 길목에서 인간이 극복해야 할 시험이자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 그리고 니체


MGM의 로고와 함께 초저음(오르간/콘트라베이스가 C–G–C의 자연 배음에 근거한 선율로 '우주', '자연'이라는 모티프)의 선율이 깔리면서 MGM 로고가 사라지고 화면이 암전되면 멀리서 금관이 '빠~바~바'하고 비범한 시작을 예고한다. 화면에는 지구 실루엣 너머 태양이 떠오르며 암전이 사라지고(누군가 이 장면이 '문명의 새벽'을 상징한다고 했다) 화면 가득 떠오른 태양과 함께 갑자기 금관의 힘찬 '빠방'소리, 강렬한 티파니의 두드림,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선율. 이 강렬한 오프닝 씬은 현재까지도 영화사의 가장 중요한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르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듯 영상과 찰떡 케미를 보여준다.


1896년에 작곡된 <차르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1968년에 개봉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이런 영상과 음악의 환상적인 케미는 사실 스탠리 규브릭 감독의 치밀한 편집적 계산에 의한 것이지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굳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영화의 주요 극적 장면 장면마다 사용한 이유는 그의 영화가 니체의 '초인 사상'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데 유용했기 때문은 아닐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는 니체가 18세기 이후 서구사회가 종교·도덕·진리(이성) 등의 절대적 가치들이 무너지고(니체는 이를 '신의 죽음'으로 명명한다) 허무주의가 만연한 상황에서 '마지막 인간'(위험·고통·자기극복을 포기하고 소소한 안락과 안전만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 책 서문에서 "우리는 행복을 발명했다"라고 말하는 군중으로 묘사) 이후 무엇이 인간에게 가능한가를 묻고, 인간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라고 촉구한다. 니체는 도덕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로 하여금 자신이 만든 도덕적 세계의 몰락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선언하게 하는 역설적 구성을 취했으며, 전체적으로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적 서술과 설교·대화·독백을 통해 철학적 내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서문과 함께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차라투스트라는 10년간 산에서 은둔한 후 하산하여 시장과 군중들에게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가르침을 펴기 시작하고, 인간을 짐승과 초인 사이의 밧줄로 비유하며(서문), 인간들이 '세 가지 변신'(낙타(복종, 순응하는 자)–사자(순응을 거부하고 자유를 얻은 자)–어린아이(신성한 긍정으로 스스로 질서를 창조하는 자)) 단계를 거쳐 복종의 도덕을 넘어 놀이하는 창조의 정신으로 나아가라고 요구한다(1부). 이러한 변신의 최종 목표가 바로 '초인(Übermensch)'으로, 이는 기존의 모든 가치를 파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운명애, amor fati) 영원회귀까지도 긍정할 수 있는 자기극복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어 국가·시장·동정의 우상을 비판하며, 타자 지배가 아닌 자기 지배의 힘, 곧 힘(권력)에의 의지로 스스로 베푸는 덕을 강조한다.(2부) 유명한 '영원회귀' 사상을 다룬 3부에서는 똑같은 삶이 반복되더라도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영원회귀의 긍정을 통해 허무주의를 넘어설 것을 주장하며, 마지막 4부에서는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산으로 돌아가 '더 높은 인간'들(왕들, 거머리, 마술사 등)과의 축제를 벌이며 그들조차 여전히 미완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그조차도 극복할 것이라며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희망적 전망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감명을 받아 1896년 이 작품을 작곡하여 그해 11월 27일 자신의 지휘로 초연하였다. 그는 최초로 '철학의 음악화'를 시도하였으며 악보 제목 밑에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자유로히 따른'이라는 부제와 '나는 결코 위대한 철학자 니체의 작품을 음악으로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니다. 인간 발전의 관념을, 갖가지 단계를 거쳐 초인에 이르는 과정을, 니체의 초인 사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장대한 오프닝을 담은 ‘일출’(Sunrise)로 명명된 서주가 끝나면 다음의 부제가 붙은 8개 에피소드별로 연주된다.

1 세상 저 편의 사람들에 대하여(Of the people of the unseen world),

2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Of the great longing),

3 기쁨과 열정에 대하여(Of joys and passions),

4 만가(Dirge),

5 학문에 대하여(Of Science and Learning),

6 치유 받고 있는 사람(The convalescent),

7 춤의 노래(Dance Song),

8 밤 나그네의 노래(Night Wanderer‘s Song)


에피소드별 특징을 살펴보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에서 현실로의 전환을 코랄풍의 선율과 점진적인 동적 상승으로 표현하고, 세 번째 '기쾌와 열정'에서는 생명력 넘치는 춤곡 리듬으로 니체의 삶 긍정 철학을 구현한다. 다섯 번째 '학문에 대하여'는 전체 작품의 중심부로 정교한 푸가 형식을 통해 이성의 체계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하지만, 점차 거대한 음향에 압도되어 학문의 한계를 드러낸다. 일곱 번째 '춤의 노래'는 B장조의 밝은 왈츠로 삶의 환희를 표현하며, 마지막 '밤 나그네의 노래'에서는 C장조와 B장조가 동시에 울리는 복조성 기법으로 조성적 해결 없이 끝나 니체 철학의 미완결된 질문과 영원한 탐구를 상징적으로 남겨두며 곡은 마무리된다.(이 영화가 니체의 철학과는 정반대의 해석, 즉 니체가 전도하고자 했던 플라톤 이데아론을 오히려 옹호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을만큼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슈트라우스가 조성의 완결없이 끝낸 것처럼...)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직접 지휘했던 1944년 빈필의 공연 녹음으로 감상.

- https://youtu.be/E9PztWHu9FQ


■ 2부에서 우주선이 지구에서 우주정거장으로 가는 장면, 우주 정거장이 우아하게 회전하는 장면 등에서 사용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도 OST와 함께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Xu6F5q-J6JA


* 8월의 마지막 브런치의 시라 이육사님의 시를 골라봤습니다.


♡ 광야(曠野)


- 이육사(李陸史)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

모든 산맥山脉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곧을 범犯하든 못하였으리라

끈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픠여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엇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노아 부르게하리라


* 1945년 12월 17일, 자유신문(自由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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