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4일 목요일 -
♡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헝가리 무곡 1번 사단조, *WoO 1/Hungarian Dances, WoO 1: No.1 in G minor>
* WoO는 독일어 'Werke ohne Opuszahl'의 약자로, "작품번호가 없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작곡가가 미처 작품번호를 붙이지 못했거나(그래서 사후에 발견되었거나), 완성하지 못한 곡들을 분류하고 식별하기 위해 사용된다. 브람스는 본인이 직접 작곡하지 않은 부분이 포함된 편곡 작품에 이 번호를 썼다.
■ https://www.youtube.com/watch?v=sgdhoAuLows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호우예보 문자가 들어와 있다.
가을비 치고는 꽤 사납고 많은 양의 비다.
일주일 중 가장 몸이 무거운 날이 아마 목요일 아침이지 싶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그냥 관성처럼 한 주를 살아가게 되는데 목요일 아침은 그 반복되는 관성의 힘만으로는 지난 3일 동안 쌓인 피로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서일 것이다. 어제는 방송종사자에게만 주어진 깜짝 휴일이어서 잠시 어머니가 계신 태백에 다녀왔다. 새벽의 여독 때문인지 오늘은 브런치를 쓸 시간도 녹록지 않다.
이런 날은 무조건 힘차고 즐거운 음악으로 몸의 활기를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에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골랐다. 헝가리 무곡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곡은 엄밀하게 헝가리 '집시(Gypsy)'들의 음악이다. 리듬은 흥겨운데 멜로디는 왠지 모를 우수(憂愁)로 가득 차 있다. 선곡의 실패다. 그냥 왈츠 같은 밝은 곡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나마 5번은 좀 나을 듯 해 1번이 끝나자마자 같은 음반의 5번 곡을 듣는다. 사실 처음에는 5번을 먼저 들을까 했었다. 밝고 더 활기찬 건 맞는데, 역시 이 곡은 너무 익숙해서인지 선곡의 묘미가 떨어진다.
■ https://www.youtube.com/watch?v=PyCHVikkt-E&list=OLAK5uy_n6JGM3I0QAJwjlIab5zJUDpRak2J9QdC4&index=6
내가 처음으로 '집시(Gypsy)'라는 유랑민족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계기는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의 1996년 영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에서였다. 지금은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주요 장면들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이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그들의 삶을 이어가며 벌이는, 그들의 역사적 정체성 같은 축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축제 장면에서 끊이지 않고 흐르던 브라스 밴드의 멜로디와 리듬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았다.
(*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유튜브에 이 영화 전편이 올라와 있다. 모처럼 속을 끓이며 다시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9Dc-IWCxP2I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예전 학창 시절 음악 감상시간에 자주 듣던 음악이었지만, 사실 그때는 이 음악이 집시의 음악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걸 브람스란 이름 때문에 잘 알지 못했다. 오늘의 선곡 실패 또한 브람스란 이름 뒤에 감춰져 있던 '집시(Gypsy)'란 이름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집시(Gypsy)'의 기원은 대체로 인도 북서부(주로 펀자브·라자스탄 지역)의 하층민('돔(Dom)'이라 불린 불가촉천민) 계층이 중동을 거쳐 10~15세기 사이 동·서유럽 전역에 이주해 온 유랑민족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민족·언어적으로 인도-아리아계 혈통을 이어받았다. 그들이 처음 유랑의 삶을 살게 된 이유는 사회적 소외와 빈곤, 그리고 전쟁과 정복으로 인한 강제이주(이슬람 세력에 의한) 등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넘어오는 수세기 동안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부인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차별과 박해를 받으며 살아왔다. 15세기 이후 많은 집시들이 헝가리·루마니아·슬로바키아 등의 동유럽으로 넘어왔는데, 이는 당시 동유럽이 외부의 유랑민족인 집시들에게 비교적 열린 경제구조(농노제의 잔존, 귀족 계층의 후원 등)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유럽과 달리 박해와 탄압이 덜했던 동유럽 곳곳에 이르러서 그들은 대장장이, 말 치기, 특히 음악 연주자로 활동하며 유럽 사회의 틈새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집시(Gypsy)’라는 명칭은 원래 이들이 유럽에 처음 나타났을 때 “이집트(Egypt)”에서 온 사람이라 오인한 데서 비롯됐다. 집시들이 이집트에서 받은 통행증을 들고 유럽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라는데, 유럽인들은 그들의 갈색 피부 때문에 별 의심 없이 이 유랑민족이 이집트에서 왔다고 믿었고, 그래서 영어 ‘Egyptian’이라고 지칭하다가 ‘Gipcyan’, ‘Gipsy(Gypsy)’로 변형되면서 지금의 이름이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집시들의 기원이 인도 북서부라는 사실은 근대에 이들이 쓰는 언어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밝혀졌다.
집시들은 중세 이후부터 거리에서, 시장에서, 귀족의 연회에서 음악을 연주하면서 생계를 잇는 경우가 많았는데, 귀족과 부르주아, 심지어 당시 활동하던 작곡가들도 이 집시 악단을 고용해 연주회를 열기도 했고, 그들의 즉흥연주 기법도 작품에 반영하는 등 그들의 음악성은 일찍부터 인정받았던 모양이다. 집시들은 오랫동안 유랑생활을 통해 여러 지역의 민속 선율을 그들의 음악으로 흡수하면서 발전시켜 왔는데, 그래서 그들의 음악에는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매력이 있다.
집시 연주자들은 뛰어난 연주실력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즉흥연주가 장기였는데, 현란하고 빠른 선율, 변화무쌍한 템포와 리듬, 그리고 강렬한 감정적 표현 때문에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많은 작곡가들은 그들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등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집시 음악이 끼친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하지만, 집시들은 그들이 서양음악사에 남긴 유산과는 별개로 유럽사회에 깊이 착근하지는 못했는데 이는 유대인처럼 오랜 유랑생활을 겪으면서도 그들의 종교와 언어, 그리고 문화적 관습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집시음악의 격정과 매력에 빠져 있었던 반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집시는 최하층 빈민, 이방인, 범죄자 집단으로 취급되어, 언제나 차별과 박해, 희생의 대상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나치당은 집시를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하고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학살·강제노동·수용소 구금의 비인륜적 범죄를 자행했는데,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등에서 약 20만~50만 명의 집시가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유럽 내 집시들은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스페인, 이탈리아 등 전역에 분포하지만, 평균 수명·교육률·취업률, 주거 수준 등은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 빈곤과 범죄에 시달리며 노점상·비정규직 노동·매춘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인종차별과 사회적 배제, 혐오 정서에 시달리며 추방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집시 사회는 1960년대 후반부터 ‘집시(Gypsy)’란 표현 자체가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적 멸칭(蔑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그들 스스로 ‘롬(Rom, 단수형)’ 또는 ‘로마니(Romani, 복수형)’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명칭은 그들 모어(롬어)에서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1971년 국제 롬 회의(International Romani Union)를 통해 그들은 집시(Gypsy)라는 말대신 ‘로마니(Romani)’를 그들을 지칭하는 국제표준어로 정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집은 1869년과 1880년 두 차례에 걸쳐 총 21곡이 완성되었는데, 우리에게 익숙하고 또 널리 연주되는 곡은 앞서 소개한 1번과 5번이다. 브람스가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계기는 시간을 거슬러 1852년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트 레메니(Ede Reményi)와의 만남이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헝가리 지배에 반기를 들었던 1848년의 헝가리 민중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혁명에 가담했던 젊은 예술인들은 고국 헝가리를 떠나 항구도시인 북독일 함부르크로 몰려들었다. 일종의 망명이었던 셈인데, 그래서 함부르크에서는 헝가리 출신 예술가들의 무대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1852년, 망명자로 떠돌던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드 레메디 또한 함부르크에서 연주회 무대에 올랐고, 관객석에는 열아홉 살의 수줍은 미소년, 요하네스 브람스가 앉아있었다. 당시 브람스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생계를 위해 이곳저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을 독학으로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날 레메디의 매혹적인 선율에 매료된 브람스는, 공연 후 레메디를 찾아가 그에게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했고, 브람스보다 3살 많았던 레메디 또한 이런 브람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항구의 술집들을 돌며 함께 연주를 했는데, 레메디가 집시 바이올린 곡을 연주하면 브람스가 반주를 하는 식이었다. 브람스는 레메디와 함께 순회 연주회를 다니며 헝가리의 집시풍 연주 스타일과 민요를 듣고 익히기 시작했다.
1853년부터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함께 유럽 연주여행에 나서게 되는데 함부르크에서 하노버, 바이마르, 뒤셀도르프를 거쳐 헝가리까지 이어진 이 연주여행으로 브람스는 집시 풍 헝가리 음악에 깊게 빠져들게 되고 이 당시 채록한 헝가리 민요들은 그가 훗날 헝가리 무곡 시리즈를 출판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특히 브람스는 이 음악여정 중 뒤셀도르프에서 슈만 부부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1853년 연주여행 이후 브람스는 슈만 부부와의 도움으로 작곡가로서 적극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1854년엔 피아노 소나타, 피아노 협주곡 1번 등 대작을 발표하며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시기 클라라 슈만에 대한 그의 연모도 깊어지기 시작한다. 브람스는 1860년대 내내 빈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합창곡, 실내악곡, 성악곡 등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었지만, 작곡가로서 큰 명성은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1869년 그는 예전부터 꾸준히 모으고 있었던 헝가리 민속음악들을 피아노 연탄곡집으로 편곡해 베를린의 짐로크(J. Simrock)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게 된다. 출판 직후 이 무곡집은 즉각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독일을 넘어 프랑스와 영국까지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당시 유럽에서는 피아노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중산층 가정에서 피아노 보유와 연주는 교양의 척도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살롱문화와 사교모임이 많아지면서 가족과 친구들, 혹은 초대 손님을 위한 음악 연주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연주나 오페라와 같이 대형 무대에서의 공연을 직접 관람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유명 교향곡이나 무곡, 오페라 등을 피아노 연탄 형태로 편곡하여 집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악보는 가장 인기 있는 출판물이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집은 바로 이런 시대적 요구에 맞춘 상품이었고, 브람스는 이 무곡집의 성공으로 작곡가로서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첫 번째 헝가리 무곡집은 모두 10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곡들은 모두 브람스가 작곡한 곡들이 아니라 그가 채록한 헝가리의 집시 민속음악을 피아노 연탄곡으로 편곡한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브람스는 이 무곡집에 그의 작품번호를 쓸 수가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의 무곡집이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되면서 브람스는 뜻하지 않은 소송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에게 집시풍의 헝가리 음악 스타일을 알려준 레미디와 브람스가 헝가리 민속음악이라 여겼던 5번째 곡의 실제 작곡가 벨러 케를레르(Béla Kéler)가 저작권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판 당시 브람스가 분명하게 편곡이라고 밝혀놓는 덕에 결국 저작권 소송에서 승소하게 되었다.
이후 브람스는 1880년 두 번째 헝가리 무곡집을 발간하게 되는데, 모두 11곡이 수록된 두 번째 무곡집은 첫 번째 무곡집과 달리 3곡은 직접 작곡(11번, 14번, 16번)한 곡을 포함하여 출판했지만, 첫 번째 무곡집처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총 21곡 중 5번이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아서 브람스 곡으로 이루어진 연주회가 있을 때는 앙코르곡으로라도 5번은 꼭 연주회 레퍼토리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 헝가리 무곡 1집의 5번을 원곡 포핸즈 연주로 감상해 보고,
- https://youtu.be/aEX48pzi_Pw
■ 역시 5번을 헝가리 필하모닉의 연주에 맞춘 볼쇼이 발레로도 감상.
- https://youtu.be/2yd6WduQSd4
■ 집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데이비드 가렛의 바이올린 연주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XH6ZWV5QspA
■ 아르헨티나 출신 듀오로 30년 가까이 함께 연주하고 있는 헥토르 모레노와 노르베르토 카펠리의 연주로 헝가리 무곡 전 21곡을 포핸즈로 감상해 보고,
- https://youtu.be/ltZ_Mv7wpKU
■ 마지막으로 전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 버전으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YXT42ghiuZ4
♡ 집시
- 주향숙
사자를 보고
사막에 누워 있는 여자를 보고
눈물이 났다
(알 수 없는 일)
쏟아질 것 같은 하늘과
동그란 달빛 때문에
사막의 전갈이 나를 쏜다 해도
(이것은 슬픔이 아니다)
여자 곁에는 만돌린 손에는 지팡이
여자는 그을렸고
까만 맨발로 잠이 든 여자
냄새를 맡는 사자는 마치
여자를 구원하는 전사인 것만 같고
여자는 꿈결인 듯 미소를 짓고
어디까지든 가는 것이다 집시는, 달빛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