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5일 금요일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evich Rachmanino, 1873~1943)
< 피아노 협주곡 3번 라단조, Op.30 /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 https://www.youtube.com/watch?v=DPJL488cfRw
살면서 가끔씩 뜻하지 않게 마치 영화장면 같은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는 오히려 현실이 더 영화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내게 영화장면 같은 순간이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순식간에 상황을 반전시키는 극(劇)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이미 3년도 더 지난 위 유튜브 링크의 임윤찬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처음 듣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그의 연주는 처음에는 다른 전설적인 연주자들의 그것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거나 오히려 존재감이 덜 느껴지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런데 5분을 넘겨 그의 연주가 조금씩 탄력을 받으며 흐름을 만들기 시작하자 내 눈과 귀는 모니터 화면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임윤찬의 거센 피아노의 흐름을 오케스트라는 아슬아슬하게 뒤 따랐다. 지휘자 마린 알솝은 섬세하게 임윤찬의 호흡을 읽고 반응하며 오케스트라의 속도를 제어했다. 이 연주가 오케스트라와 연주호흡을 맞추기 위해 여러 차례 리허설이 허락된 일반적인 콘서트가 아니라 여러 연주자들이 경쟁하는 콩쿠르 무대라 간단한 기술적 리허설 정도로만 진행하고 이뤄진 연주라고는 도무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호흡이 느껴졌다.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이 시작되자 이제 이 연주는 말 그대로 한 편의 아름답고 긴장감 넘치는 영화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대공연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협주곡 공연들을 여러 번 녹화를 해보기도 했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2번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연주자들의 녹음을 수차례 들어본 터라 당시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면서는 '어 이 부분의 연주가 이랬었나' 하며 임윤찬의 해석에 감탄을 연발했다. 그의 연주가 이전 연주들과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름의 차이는 임윤찬의 루바토(Tempo rubato라고도 한다. 기본적인 전체 템포를 변화시키지 않으며 각각 음표의 길이를 조금씩 늘리거나 줄여서 연주하는 연주자의 해석이 담긴 부분) 정도 때문이 아니었다.
18살의 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곡에 대한 몰입과 진정성 있는 해석이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하여금 임윤찬의 연주에 그동안 감춰두었던 자신의 모든 음악적 열정을 이끌어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나고 마린 알숍 지휘자가 눈물을 닦아내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이 젊은 거장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연주 내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호흡을 끝까지 지켜본 관객이라면 커튼콜 장면에서 이 감동적인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었을 것이리라 믿는다.
오늘 아침 모처럼 이 긴 곡을 다 들었다. 역시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한 듯한 느낌의 긴장감과 환희, 감동이 밀려온다. 금요일이라 모처럼 이 음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제 안 들어 본 사람은 거의 없게 된, 여러 비평가들이 역대 모든 피아노의 거장들이 연주한 그 어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도 견줄 수 있는, 역대 최고 수준의 연주라는 평가를 받는 이 곡으로 한 주의 피로를 날려버렸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얼마 전 데카에서 반 클라이번 결선 무대에서의 이 연주녹음을 음반으로 출판해서 그 버전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서 유튜브 링크의 실황 연주버전을 권한다. 연주회장에서 벌어진 그 생생한 감동을 함께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4월 1일 러시아 노브고로드 주 세묘노보에서 귀족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음악에 대해 조회가 깊었는데, 친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를 사사한 아마추어 음악가였고, 아버지 바실리는 은퇴한 육군 장교이면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했다. 어머니 류보프 페트로브나는 부유한 장군의 딸로, 역시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접하며 살았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9살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했고 12살 때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전원하여 피아노와 작곡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음악원 시절 라흐마니노프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돋보였다. 1891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완성했고, 1892년에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1막 오페라 《알레코》를 단 17일 만에 작곡하여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할 정도였다. 차이콥스키가 직접 관람하기도 한 이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원 최고상인 금메달을 받으며 19살에 졸업했다. 같은 해 그는 모스크바 전기 박람회에서 피아니스트로 공개 데뷔하며 《전주곡 올림다단조(Op.3, No.2)》를 초연했는데, 이 곡은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1897년 3월 교향곡 1번의 초연이 참혹한 실패로 끝나면서 그의 인생은 급변했다. 초연이 실패한 데는 지휘자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의 미숙한 지휘와 충분하지 못했던 리허설 탓이 크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 또한 좋지 못했다. 특히 러시아 5인조 중 한 명이었던 세자르 큐이(César Cui)는 익 곡을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에 비교하며 신랄하게 비평했는데, 이 충격으로 라흐마니노프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3~4년 동안 거의 작곡을 하지 못했으며, 자신을 "뇌졸중을 겪고 오랫동안 머리와 손을 사용하지 못했던 사람"으로 묘사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 시기에 그는 피아노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1897~98 시즌 사바 마몬토프의 모스크바 사립 러시아 오페라에서 보조 지휘자로 일하면서 작곡가로서의 삶을 힘겹게 이어갔다.
1899년 말 우울증이 더욱 심각해지자 라흐마니노프는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의 최면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이 최면 치료의 효과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이듬해인 1900년부터 다시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고, 1901년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발표하며 대중과 평단의 큰 찬사를 받으며 그의 명성을 완전히 회복시하였다. 이후 그는 지휘자로서도 활동 폭을 넓혀 1904년부터 1906년까지 볼쇼이 극장의 수석 지휘자를 역임하기까지 했다.
1907년 라흐마니노프는 가족과 함께 독일 드레스덴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작곡에 집중했다. 이 시기에 그는 교향곡 2번과 교향시 '죽음의 섬',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 1번과 같은 그의 중요 작품들을 완성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세계적인 성공에 힘입어 1909년에는 피아니스트로서 첫 번째 미국 순회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오늘 소개하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바로 이 미국 순회 연주회에서 연주할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낯선 땅 미국으로의 연주 투어는 라흐마니노프는 성공에 대한 부담과 함께 장거리 여행의 두려움을 이겨내야만 하는 압박감이 되었다. 그럼에도 라흐마니노프는 가족들조차도 이 곡을 언제 썼을지 모를 정도로 놀라운 집중력으로 협주곡을 완성했다. 이 곡에는 새로운 세상에서 들려줄 러시아의 서정과 선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909년 11월 28일 뉴욕 뉴 시어터에서 초연된 그의 첫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는 대성공을 거뒀다. 관객들은 수차례나 커튼콜 무대로 라흐마니노프를 불러 올리며 앙코를 연호했다. 성공적으로 순회연주를 마친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로 돌아가 탐보프 근처 이바노프카 영지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여러 작품들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의 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작곡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라흐마니노프는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영구히 떠나 1918년 뉴욕에 정착했다. 미국에서 그는 주로 피아니스트로서 연주 활동에 전념해야 했는데, 이는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작곡가로서의 활동은 급격히 줄어들어 러시아를 떠난 후 완성한 작품은 단 6곡에 불과했다. 1932년부터는 여름마다 스위스 루체른 근처의 빌라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곳에서 1934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작곡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연주 활동을 지속하던 라흐마니노프는 1942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는 1943년 3월 28일 흑색종으로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라흐마니노프의 생애를 천재적 재능과 실패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내고 완성한 예술적 성취로 압축해 표현한다면 너무 단편적일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라단조 Op.30)은 음악적 해석과 기교적 난이도로 전 세계의 피아니스트들 거장에게 가장 도전적인 곡 중 하나다. 3악장의 순환 구조, 두 가지 버전의 카덴차, 거대한 연주 시간, 손을 크게 벌려야 하는 패시지들, 신체적 지구력과 섬세한 음악성이 함께 해야만 성공적인 연주가 가능한 이 곡은 처음 라흐마니노프가 이 곡을 헌정한 폴란드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조차 헌정을 거절할 정도로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만 연주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1996년 영화 '샤인'(Scott Hicks 감독, 제프리 러시 주연)은 한 음악가의 재능과 고통, 그리고 구원의 매개체로 피아노를 활용했는데, 주인공이 마지막까지 혼신의 열정을 다해 연주하다 무대에서 쓰러질 때의 곡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영화 클립 https://www.youtube.com/watch?v=N29WamXg4pY)
하지만 이런 극악의 난이도조차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반 클라이번 등의 위대한 거장들이 이 곡을 자신만의 색으로 해석해 내며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함께 가장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반클리어번 결승무대에서 임윤찬의 연주는 수많은 클래식 마니아들(나도 마찬가지였다 ㅠㅠ)의 가슴을 뛰게 만들며 역대 최고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해석으로 클래식 음악사에 한 페이지를 남겼다.
■ 먼저 임윤찬이 자신의 연주를 위해 참고했다는 호로비츠의 연주와도 비교해보고,
- https://www.youtube.com/watch?v=D5mxU_7BTRA
■ 개인적으로 이 연주와 함께 임윤찬의 연주와 비교해 듣게 되는 역시 20세기 피아노의 전설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로도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ycK1mZiZmo0
♥ 마음이 고요하니 삶이 고요하여라
- 이채
스스로 간절히 묻고
스스로 바로 세우니
한가로운 것이 어디 구름뿐이랴
남의 허물을 즐기지 아니하고
남의 탓을 일삼지 아니하니
어진 것이 어디 산뿐이랴
나에게 엄하고
남에게 후하니
모두가 정겨운 내 이웃이요
마음이 따뜻하고
생각이 부드러우니
모두가 소중한 내 벗이로다
천지를 닮은 가슴에 숲이 무성하니
바람도 쉬어가고
새 우짖는 나뭇가지마다
푸른빛이 한창이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세상이야
마음 밖의 세상이니
스스로 고요한 자여!
함뿍 젖은 이슬 내리는 밤
달 곁에 누운 별이 뉘라서 그대 아니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