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아쉬움과 그리움의 계절인 이유...

- 2025년 9월 8일 월요일 -

by 최용수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프렐류드와 푸가, 라장조 BWV 532/ Prelude and Fugue in D major BWV 532 >


https://youtu.be/tPfBYY0Viqk?si=fJfNcRmB1qGojAzu


구름 가득한 회색빛 아침 하늘이 사색의 계절,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해마다 정해진 듯 가을은 찾아오지만, 매년 그 계절에 담기는 사연들은 다르다.

그런데, 유독 가을에 대한 기억만 떠올리면 가슴 한 켠으로 밀려드는 그리움과 아쉬움들...

돌아갈 시간을 지키지 않고 늦게까지 뻗대는 여름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가을의 경계를 넘어 훅 밀고 들어온 차가운 북풍의 겨울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해마다 들쭉날쭉, 짧아지기만 했던 가을의 시간보다 가을을 더 그립고 아쉽게 만든 건 가을의 지독한 이별 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봄과 여름 내내 푸른 생명의 기운들로 가득 찼던 대지는 가을이 되면 형형색색 슬픈 이별의 색깔로 물들어간다. 어떤 식물도 예외가 없다.


"나는 떠나가리라. 가을 서리에 몸이 찔리고 사나운 겨울 북풍에 갈기갈기 찢긴 채 긴 겨울의 암흑 속으로 들어가리라. 산산조각 난 몸은 더 많은 박테리아와 균류들의 먹이가 되고,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리라. 봄과 여름의 태양이여 안녕..."


그렇게 마지막까지 대지를 갈색의 이별로 채우며 사라져 갔던 생명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립고, 아쉬웠던 감정들의 실체는...


회색빛 하늘 때문이었을까 서늘해진 아침 기운 때문이었을까?

올 가을은 또 어떤 그리움과 아쉬움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 마음이 애잔하다.


그래서, 오늘은 짐짓 그 무거워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젊은 바흐의 뜨거운 열정이 담긴 프렐류드와 푸가 라장조(BWV 532)를 골랐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요즘은 아침 일찍 글을 쓰기 힘든 때가 많아져 자꾸 브런치 글이 늦어진다. ㅠㅠ)




이 곡은 바흐가 1708년~1711년경 바이마르(Weimar)에서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흐 연구자들 일부는 이보다 더 이른 시기인 아른슈타트 시대(1703~1707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바흐가 24살 때였던 1709년에 작곡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고도 하는데, 어느 기록을 따르더라도 바흐가 한창 오르간 연주자로 명성을 얻고 있던 시기에 작곡된 것만은 분명하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젊은 음악가로 성장하기까지


1685년, 바흐는 현재의 중부 독일 튀링겐 지방에서 대대로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와 형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에게 집에서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만 부모님이 모두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어머니는 바흐가 9살이었던 1694년, 아버지는 1695년 사망) 10살 때부터는 형 집에서 살아야 했다.

이 시기 바흐는 형 집 근처의 오르드루프의 학교에 진학, 라틴어와 신학 등의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학교에서 음악 공부는 따로 가르치지 않아 바흐는 음악가로 활동했던 형이 가진 악보를 필사하며 독학으로 음악을 익혔다. 1700년 바흐는 15세가 되자 독일 북부 뤼네부르크의 성 미카엘 교회(St. Michaelis) 부속 라틴학교(Michaelisschule)에 성가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입학했다. 이 학교는 기숙형 고등학교로, 많은 장서를 보유한 음악도서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오르가니스트였던 게오르크 뵘 같은 훌륭한 음악적 멘토도 있었다. 바흐는 이곳에서 각 국에서 유행했던 작품들의 악보를 공부하면서 오르간 연주자로서의 자질 또한 키울 수 있었다.

바흐가 18세가 되던 1703년, 그는 바이마르 궁정악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잠시 일하다가 같은 해 여름 아른슈타트 성 보나파티우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직에 임용되며 본격적인 음악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아른슈타트에서 바흐는 오르가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합창단 지휘자로도 활동하며 예배음악 전반을 담당했는데, 당시 교회는 바흐의 참신하고 개성 있는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채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흐의 창의적인 연주와 새로운 스타일 때문에 결국 바흐와 결별하게 된다.

1707년 바흐는 뮐하우젠(튀링겐 주)의 성 블라지우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자리가 공석이 되자 지원하여 채용되면서 아른슈타트를 떠났다. 바흐는 뮐하우젠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작곡하고 직접 오르간을 개수하여 연주할 만큼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엄격한 루터파 교리가 지배적이어서, 바흐가 추구하는 화려하고 예술적인 음악 양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바흐는 뮐하우젠에서도 음악적 견해 차이 때문에 교회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더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위해 바이마르 궁정으로 이직하게 된다.

바흐가 아른슈타트, 뮐하우젠, 그리고 바이마르 궁정악단까지 잦은 이직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흐의 뛰어난 음악적 자질뿐만 아니라 바흐의 음악가 집안 배경 또한 큰 힘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7대에 걸쳐 200여 명의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가 집안 바흐가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바이마르 시대(1708~1717)의 걸작, 프렐류드와 푸가 D장조


바이마르 궁정 악단으로 자리를 옮긴 바흐는 1708년부터 1717년까지 약 9년간 그의 음악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디딤돌이 되어준 소위 바이마르 시대를 열었다. 바이마르 궁정 악단(공식적으로 작센-바이마르 공국 궁정 악단)에서 바흐는 오르가니스트이자 콘서트마스터로 활약하며 독일을 대표하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명성을 쌓게 된다. 그의 오르간 작품의 대다수가 이 시기에 창작되었고, 1714년부터는 궁정악단을 이끌며 매달 교회 칸타타를 작곡하고 연주하였다. 그는 이 시기에 비발디, 코렐리 등 이탈리아 작곡가의 협주곡 형식과 기법에 대해 깊이 연구할 수 있었으며 이들의 음악을 자신의 음악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프렐류드와 푸가 D장조(BWV 532) 바로 이 바이마르 시대 초기에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바흐가 바이마르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부임한 뒤, 그의 뛰어난 오르간 연주와 작곡 실력을 증명한 작품이다. 바흐가 바이마르 궁중 악단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존의 파이프 오르간을 새롭게 개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바흐는 직접 오르간 개조작업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성공적으로 오르간의 개조를 끝내자 새로 개조된 오르간의 잠재력을 시험하려는 목적으로 그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정과 바이마르 궁중음악의 수준을 높여보겠다는 의지까지 담아 이 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프렐류드와 푸가 D장조(BWV 532)는 형식과 내용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당시 유럽 음악을 선도하고 있던 국가들의 음악들을 연구하여 그 장점을 함께 녹여낸 독특한 작품이다. 크게 프렐류드와 푸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프렐류드는 D장조 4/4박자의 3부분 구조로, 처음에는 페달의 상행 음계로 힘차게 문을 열고, 이어지는 붓점 리듬에서는 프랑스 오르간 음악의 특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중간부는 이탈리아 협주곡 스타일로 변주되어, 합주와 독주가 교대로 등장하면서 밝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양한 조성 변화와 불협화음,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웅장한 페달 포인트까지 각 부분이 치밀하게 어우러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세 전통의 미학이 한 곡에 집약되어 있다.

이어지는 푸가는 D장조 4/4박자, 4성부로 쓰인 작품으로 주제는 두 개의 모티브로 나뉘는데, 처음에 네 번의 쉼표가 삽입된 뒤 두 번째 모티브가 열 번 반복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주제 구성은 북스테후데와 파헬벨 같은 선배 독일 오르간 작곡가들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푸가는 복잡한 대위법적 구조보다는 간결함과 직관적 전개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마지막 구간에서는 장대한 페달 솔로가 등장해 강렬한 마무리를 선사한다. 이 곡은 '콘체르토 전주곡과 푸가'라는 별칭답게, 기존의 오르간 작품과 차별화되는 콘체르토적인 표현력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 중에서도 가장 널리 연주되고 사랑받는 곡 중 하나로, 이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로도 수차례 편곡될 만큼 큰 영향력을 남겼다. 바흐의 프렐류드(전주곡)와 푸가라는 '2악장 1세트' 형식과 독특한 폴리포니는 이후 낭만주의 시대 로베르트 슈만, 그리고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발굴하여 유럽 사회에 알린 멘델스존 등 후대 거장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프렐류드와 푸가 D장조(BWV 532)는 바흐가 젊은 시절 선보인 대담하고 화려한 음악적 실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그의 창의성 넘치는 젊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오늘날에도 오르간 작품 중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르는 레퍼토리로 입지를 굳혔다.


* 사족 : 바흐가 음악가로서 입지를 다진 바이마르 시대의 유럽과 바로크 양식은...


16~17세기 유럽은 오랜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30년 전쟁(1618~1648)을 거치며 신성로마제국의 권위가 크게 약화되고 여러 지방의 군주국들이 자립적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절대왕정과 중앙집권화가 가속화되었으며, 프랑스는 루이 14세 치하에서 유럽 최강의 경제·군사 대국으로 부상했고, 영국은 명예혁명(1688) 이후 의회제를 도입하며 점차 입헌군주제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편, 1701~1714년의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네덜란드 등 주요 열강들이 유럽 패권을 두고 각축을 벌인 대규모 국제적 분쟁으로 이어졌으며, 이로 인해 유럽 전역은 군사적 긴장, 외교적 변동이 심화되는 불안정 시기를 맞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유럽 문화와 예술계는 전례 없는 번영기를 구가했는데, 이는 절대왕정과 귀족, 그리고 교회가 서로의 세를 과시하기 위한 문화와 예술의 적극적인 지원과 후원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극적이고 웅장하며 장식적이고 역동적인 미학을 특징으로 하는 소위 '바로크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루벤스, 벨라스케스, 푸생 같은 거장들이 화려한 색채와 과장된 구성을 통해 절정의 바로크 양식을 구현했고, 음악계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와 협주곡이 발전하며 비발디, 코렐리, 스카를라티 같은 거장이 활약했고, 특히 베네치아와 로마, 나폴리 중심의 화려한 벨칸토와 독주 협주곡 양식이 정착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륄리와 라모가 왕실의 후원을 받아 우아하고 장중한 오페라, 발레, 하프시코드 음악을 이끌었으며, 절대왕정 궁정 문화와 로코코 풍의 섬세한 감각이 음악에 반영되었다. 영국에서는 퍼셀이 앤섬(anthem, 가톨릭의 모테트와 비슷한 영어가사의 합창곡)과 마스크(가면극), 오페라 등 자국 고유의 성악 양식을 발전시켰고, 후기에는 독일 출신 헨델이 런던에서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합창음악을 성공시켰다. 독일 및 오스트리아권에선 바흐, 텔레만, 북스테후데 등이 교회음악과 기악, 칸타타, 수난곡 등에서 폴리포니와 대위법의 정수를 구현했다.


바로크 시대의 또 다른 음악적 특징은 기존의 교회에서 발달한 선법 체계(한 옥타브 안에서 온음과 반음의 배열, 그리고 으뜸음의 위치에 따라 음을 만들어가는 방식)가 점차 사라지고, 오늘날 서양음악의 근간이 되는 장조·단조 조성체계가 확립되었다. 작곡가들은 각 성부가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다성적 폴리포니와 함께, 노래의 반주 또는 기악 곡에서도 화성 진행을 통한 곡의 구성(화성학)을 중시하게 되었는데, 특히 낮은 성부를 따라 숫자 기호로 즉흥적으로 화성을 쌓는 통주저음(basso continuo)이 음악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 화성 이론의 발전 덕분에 7화음, 증6화음, 다양한 전조와 불협화음이 빈번하게 쓰여, 음악적 표현의 범위와 감정의 깊이가 한층 확장되었다. 바로크 화성학은 곡의 시작과 끝, 부분별 전개에서 종지감을 중요하게 여기고, 즉흥연주와 장식음, 베이스 라인에 바탕을 둔 창의적인 화성적 변주도 특징적이다. 이런 변화는 곧 18세기 전반 바흐, 텔레만, 헨델, 코렐리 같은 거장들의 풍부한 음향과 기악화, 서사적 구조, 그리고 다양한 작곡양식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 바흐의 바이마르 시대에 동시대 가장 뛰어난 작곡가였던 비발디의 1711년 작품 '조화와 영감'( L'estro armonico, Violin Concerto in A Minor, RV 356, Op. 3 No. 6: I. Allegro)도 함께 감상해 보고,

- https://youtu.be/tb4MwEhiLR8?si=Q26-QXvvPp9KDG6i


바흐뫄 같은 해에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배우고 영국에서 오페라로 큰 성공을 거둔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Serse)」의 'Ombra mai fu'를 카운터 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실황연주로 함께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N7XH-58eB8c?si=HWAvBTmFZ-VupVEo


■ 바흐에 앞서 바로크 시대 영국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Dido and Aeneas)」중 'When I am laid in earth'도 마지막으로 함께 들어보자.

- https://youtu.be/-H--Z9UzQYE?si=ELagQmksUpzOGMU8



♥ 그리움을 말한다


- 윤보영



그리움 한 자락 담고 사는 것은

그만큼 삶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그립거든 그리운 대로 받아들이자


마주 보고 있는 산도 그리울 때는

나뭇잎을 날려 그립다 말을 하고

하늘도 그리우면 비를 쏟는다


우리는 사랑을 해야 할 사람이다

그립거든 그리운 대로 그리워하고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받아들이자


가슴에 담긴 그리움도 아픔이 만든 사랑이다

가슴에 담고 있는 그리움을 지우려 하지 마라

지운 만큼 지워진 상처가 살아나고

상처에는 아픈 바람만 더 아프게 분다


그리울 때는

무얼 해도 그리울 때는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그리워하자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 맛을 느낄 수 있게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그리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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