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3일 수요일 -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1685~1759)
<사제 자독(대관식 찬가 中 1번) HWV 258/ Zadok the Priest(Coronation Anthem No.1) HWV 258>
■ https://youtu.be/Sm_PNbQebdA?si=MKyV6qo-McCSSi0J
78년 전 오늘, 1947년 9월 3일은 대한민국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부터 일본의 호출부호 'JO'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호출부호 'HL'을 부여받으며 전파 주권을 되찾은 날이다. 이는 단순히 전파 호출부호를 변경한 것을 넘어 독립국가로서 방송의 주권을 회복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방송의 날이 제정된 때는 1964년으로 날짜 또한 현재의 '9월 3일'이 아니라 '10월 2일'이었다. 10월 2일은 한국이 독자적인 호출부호 'HL'로 처음 방송을 송출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77년 일시적으로 방송의 날이 '2월 16일'로 바뀌었는데, 1927년 2월 16일 일제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설립한 '조선방송협회'가 호출부호 'JODK'로 첫 전파를 쏘아 보낸 날을 기념한다는 의미였다. 우리나라 방송의 역사를 20년 더 앞당겨보겠다는 의도 때문이었겠지만, 당연히 이는 민족적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었고 들끓는 여론에 힘입어 1978년부터 현재의 방송의 날인 '9월 3일'(전파주권 회복일)로 다시 변경되었다.
방송은 전파에 영상과 음성을 실어 전달하는 미디어다. 전파의 발견과 활용은 '불의 발견' 못지않게 인류사의 전환점이 된 큰 사건이었다. 인류가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빛의 속도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방송은 이런 전파의 특성 때문에 '동시(同時)'에, (전파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편재(遍在)'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방송 산업이 태동할 무렵 신문업계가 방송사들이 오락물(당시는 주로 음악) 이외에 뉴스는 절대 송출하지 못하도록 지독한 반대를 했던 이유가 바로 이 '동시성'과 '편재성'때문이었다.
방송은 이 막강한 능력과 제한된 전파(전파는 서로 간섭을 일으키는 특성 때문에 물리적으로 사용가능한 주파수를 국가가 독점적으로 배타적 사용권을 할당하는 '공공재(公共財)'다)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태생부터 '공공(公共)'과 '공익(公益)'을 핵심가치로 갖게 되었다.
세계최초의 공영방송사이자 공영방송의 이념과 철학을 정립시킨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의 다음과 같은 공식 미션(mission)은 전 세계 공영방송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BBC의 공식 미션
"공익에 따라 행동하며, 정보·교육·오락에 대한 공정한, 고품질, 독창적인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모든 수용자에게 제공한다"
"To act in the public interest, serving all audiences through the provision of impartial, high-quality and distinctive output and services which inform, educate and entertain"
(* 2017년에 작성된 버전이지만, 설립초기부터 수행해 온 임무들이 종합되어 있고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미션이다. 매 10년마다 왕실칙허장에 의해 BBC의 사업면허가 갱신되기 때문에 2027년 일부 수정될 수 있다.)
화무실입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던가 이제 방송은 과거와 같은 영향력과 파급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리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1970년대에는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이, 1990년대에는 인터넷이, 그리고 2025년 현재 미디어 시장을 장악한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Over The Top의 약자로 원래는 TV위의 셋톱(Set Top) 박스를 의미했지만, 요즘은 기존 방송 플랫폼을 뛰어넘어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칭한다) 서비스들이 과거 전파기반의 방송들이 장악하고 있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국가의 후진적인 미디어 정책과 공영방송사 스스로의 자기 혁신 부족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정성 논란에 휩싸여 내부의 갈등과 반목이 반복되며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부의 우수한 역량들은 다 외부로 떠나버리고(시청자들은 '꽃보다 시리즈', '삼시 세 끼'의 나영석 PD만 기억하지만, 예능 부분에서 '코미디 빅리그' 등을 제작한 이명한 PD, '비정상 회담'과 장안의 화제였던 '흑백요리사' 제작을 맡았던 윤현준 PD,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김민석 PD, 드라마 부분에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 '미생'의 김원석 PD, '도깨비'와 '미스터 선샤인'의 이응복 PD 등등 다 KBS 출신이다) 이젠 변변한 예능과 드라마 한 편 제대로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그나마 최근에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이나 마동석의 '트웰브', 일일극 '대운을 잡아라', 그리고 전통적인 다큐교양 장르의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생로병사의 비밀'('셀럽병사의 비밀'), '아침마당', '6시 내고향', '생생 정보통'이 공영방송 KBS의 명목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만약(역사에서 가정(假定)만큼 어리석은 전제(前提)는 없지만), KBS가 지난 20년 넘는 시간 동안 끔찍한 퇴행적 갈등을 겪지 않았었더라면, 유튜브와 OTT 전성시대인 지금 KBS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영국 방송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이끈 BBC? 재정 문제 해결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상상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지금 월 2,500원의 TV 수신료를 다른 미디어 이용료와 비교해 보자. 대부분의 신문 구독료는 월 20,000~25,000원으로 TV 수신료의 10배에 이르고, 넷플릭스 구독료 스탠더드형 월 13,500원에 비교해도 수신료는 1/5.5 수준이고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 월 14,900원과 비교하면 1/6 정도다.
무엇보다 KBS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만 만들지 않는다. 각종 재난·재해방송과 뉴스, 그리고 본사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다양한 시사·교양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으며, TV 수신료 중 일부는 EBS에도 지원된다.
30년을 KBS에 재직하면서 내가 이 직장에서 어떤 힘으로 버텨냈을까 반문해 보면, 그건 '공공'과 '공익'이라는 가치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나와 함께 일했던 수많은 KBS의 동료, 선후배들도 다 비슷한 마음으로 밤샘을 밥 먹듯 하고 위험한 재난 현장에 누구보다 발 빠르게 달려갔을 것이다.
'공공재(公共財)'와 '공공(公共) 서비스'는 누리고 있을 땐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늘 뭔가 아쉽고 부족 하지만, 막상 그것들이 없어지거나 줄어들면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 KBS가 없어지더라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을 거라 여긴다. 뉴스는 물론 드라마나 예능까지 수많은 대체재들이 넘쳐나는 미디어 시장에서 KBS가 제공하는 서비스 정도는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아침 헨델의 <사제 자독(대관식 찬가 中 1번)>을 고른 이유가 바로 그런 시장이 대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BBC가 생중계한 영국 찰스 3세의 대관식은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크게 중요한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에게 이 행사는 영국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방식이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국 내 지역들(웨일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북아일랜드)을 하나의 국가 공동체로 묶어주는 국가적 의례였다. 우리가 광복절 기념 생방송을 통해 국내·외 대한민국 국민들을 한민족 공동체로서의 역사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게 만들듯이 말이다.
KBS는 시장에서 제공하기 힘든 공동체의 기억과 문화적 정체성을 담고내고 성, 지역, 계층의 차이를 넘어 대한민국 공동체 전체의 존속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삼는 독특한 조직이다.
그리고,이제는 그 비중이 턱없이 줄었지만 공적재원인 수신료 덕분에 시장이 제공하지 않는 아니 제공하기 힘든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유이한 곳이다.(EBS와 함께)
시장에서 공급되는 콘텐츠들은 시청자 개인의 기호와 선호에 따라 제공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다음의 세 가지 문제도 함께 안고 있다.
먼저 개별적 시청행태에서 비롯된 단절과 고립의 경험이다. 최근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K-pop 데몬 헌터스>가 미국인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이유는 그동안 개별적 시청행태를 대표해 온 OTT 서비스가 가족들과의 유대는 물론 낯선 이들이 온-오프 라인을 통해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마법을 부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더 큰 세상으로의 '연결(連結)'을 꿈꿨지만, 실제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고립(孤立)'과 '고독(孤獨)'이었다.
그다음으로 심각한 것은 유튜브와 OTT들이 사용자의 과거 시청기록('좋아요'와 검색 패턴)을 분석해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 우선 추천 하거나 연결링크를 제공하는 '개인화된 알고리듬'의 문제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마치 거품 속에 갇힌 것처럼 제한된 정보와 관점에만 노출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의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필터 버블 현상은 유튜브에서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콘텐츠만 소비하게 되면서 편향된 사고가 강화되고, 다른 관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줄어들게 만드는 이른바 에코챔버(Echo Chamber) 효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유발해 심각한 사회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극우 유튜버들의 선동으로 실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업미디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들은 더 많은 시청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말초적이고 감각적일 수밖에 없다. 쉬는 짬에 잠시 보기 시작한 유튜브나 틱톡 영상 때문에 몇 시간을 허비하거나 휴일날 소파에 누워 몰아보기(빈치 와칭, Binge Watchig)에 도전해 본 사람들이라면, 결코 헤어날 수 없는 늪 같은 시청경험에 당황한 적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비용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 가족 단위의 미디어 이용 시 개인의 프라이버시 희생은 감수해야 했지만, 미디어 이용비용이 지금과는 다르게 턱없이 낮았다.
공영미디어(현재는 전파를 이용한 방송은 실질적인 점유율 측면에서 유명무실해지다 보니 '공영방송' 대신 이제는 '공영미디어'라고 부르게 되었다)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개인화된 미디어 디바이스(스마트 폰, 태블릿 등)를 통해 서비스되는 공영 OTT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해진다면(사실 기술적으로는 큰 어려움은 없어서 약간의 기술적 투자비용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콘텐츠는 현재보다는 훨씬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시장의 상업적 미디어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그리고 개인 미디어들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공익적이면서도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나누는 공동체 지향의 콘텐츠들도 분명 지금보다 더 많이 더 값싸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공익에 따라 행동하며, 정보·교육·오락에 대한 공정한, 고품질, 독창적인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모든 수용자에게 제공한다"
최근 AI의 등장과 빠른 보급으로 미디어 산업지형은 다시 한번 큰 변곡점을 지나고 있지만, 공영미디어들의 역할과 사명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미디어 기술 발달과 미디어 이용 비용의 증가로 발생하고 있는 '미디어 격차(성, 연력, 지역, 소득 등을 다 아우르는) 해소' 또한 공영미디어들이 디지털 멀티 플랫폼 시대에 존립하기 위한 중요한 공적 책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온·오프 라인을 넘나들며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미디어 문해력, 미디어 이용을 효과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 교육'까지 제공할 수 있다면 100년이 다 돼가는 공영방송은 100년을 넘겨서도 공영미디어로 그 존재감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방송의 날'이랍시고 주저리주저리 아침부터 쓰다 보니(오늘은 방송 종사자들은 쉬는 날입니다.) 11시가 넘었다. ㅠㅠ
'사제 자독(Zadok the Priest)'은 구약성서 열왕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다윗 왕조가 반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다윗왕조를 도왔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왕조가 위기를 이겨내고 솔로몬 왕의 즉위 의식을 치르게 되었을 때 사제 자독은 이 즉위식을 주관하고 이 공로로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 지은 첫 번째 성전의 대제사장이 되었다.
헨델은 영국왕 '조지 2세(King George II, 1683~1760)의 대관식을 위해 대관식 찬가(Coronation Anthem No.1~4 HWV 258~261)를 작곡하면서 구약성서의 이 일화를 참고하였다. 총 4편으로 구성된 대관식 찬가의 첫 번째 곡이 앞서 소개한 링크 영상에 깔리던 음악, 바로 '사제 자독(Zadok the Priest)'이다.
1710년 이탈리아에서 유학 중이던 헨델은 역시 이탈리아에 체류 중이던 하노버 선제후국의 게오르크 루트비히(Georg Ludwig) 선제후를 만나게 된다. 사실 헨델은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공부만 한 게 아니라 그의 오페라를 오페라의 고장 이탈리아에서 성공시키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었다. 이미 1707년 헨델이 피렌체에 머무르며 작곡한 최초의 이탈리어어 오페라 <로드리고(Rodrigo)>가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이름은 이탈리아에서도 꽤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1709년 로마에서 벌어진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와의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대결(오르간은 헨델, 스카를라티 승으로 무승부)은 헨델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었고, 이에 그의 오페라 작곡 능력과 연주 실력에 감명받은 게오르크 루트비히 선제후는 헨델에게 하노버 왕실 악단의 악장(카펠마이스터, Kapellmeister) 자리를 제안했고 헨델은 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당시 하노버는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국으로 정치적으로 위상이 높았기 때문에 이런 하노버 왕실 악단의 카펠마이스터는 매우 명예롭고 안정적인 직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헨델은 왕실 악장으로 임명되면서 휴가를 얻을 때마다 런던으로 갈 수 있는 조건도 얻어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으며 헨델이 영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이 임명은 훗날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영국의 조지 1세로 즉위(1714년)하게 되면서 헨델과 영국 왕실 간의 복잡한 인연의 시작점이 되었다.
헨델은 하노버 궁정 악단의 악장이면서도 틈만 나면 영국 런던으로 휴가를 갔는데, 당시 런던에서는 이탈리아의 오페라들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1711년 2월 헨델은 직접 그가 작곡한 오페라 <리날도>를 런던 무대에 올린다.(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가 나오는 바로 그 오페라) 오페라는 대성황, 무려 15회나 상연되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헨델은 런던에서 인기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영국 왕실 또한 이런 헨델의 명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1713년, 헨델은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앤 여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앤 여왕의 탄생일을 위한 송가(HWV 74)》를 작곡해 바치게 되는데, 이에 앤 여왕은 기뻐하며 그에게 연금을 하사하기 시작했고, 그해 7월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위트레흐트 조약을 축하하는 작품을 의뢰받아 장엄한 《테 데움(Te deum, HWV 278)》과 《유빌라테(Jubilate, HWV 279)》를 작곡해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연주하여 큰 호응을 받게 된다. 하노버 보다 훨씬 큰 무대인 런던에서의 성공을 확신한 헨델은 결국 하노버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정착해 버리는데, 이 배신 행위가 그를 곤경에 빠뜨리게 된다.
1714년 하노버 궁정 악장이면서도 오히려 영국 왕실의 총애를 받으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던 헨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긴다. 그해 앤 여왕이 후사도 없이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공석이 된 영국 국왕의 자리에 하노버 선제후의 아들 조지 루이스(독일어로 게오르크 루드비히) 1세가 즉위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조지 1세는 하노버 궁정악장이면서도 런던에만 머물렀던 헨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순 없었고, 헨델은 조지 1세의 복수가 두려워 나름의 묘수를 생각해내게 된다.
1717년 조지 1세가 영국으로 오게 되었을 때 헨델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템즈 강에 악단을 태운 배를 띄워 왕이 행차할 때 그가 작곡한 수상음악을 들려주었다. 다행히 이 음악이 맘에 들었던 조지 1세는 이 음악을 몇 번이나 다시 연주시키면서 헨델에 대한 처벌은 유야무야 되었다.
이렇게 영국 왕실의 대표 음악가로 거듭난 헨델은 조지 1세의 뒤를 이어 조지 2세가 즉위할 때 그의 대관식 음악을 맡아 작곡하게 된다. 오늘 소개한 '사제 자독'은 네 개의 대관식 찬가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영국인들이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여기는 곡 중 하나다. 이 곡은 1727년 이후 모든 영국 군주의 대관식에서 연주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앞서 소개한 영상처럼 2023년 찰스 3세의 대관식에서도 울려 퍼졌다.
'사제 자독'의 가사는 구약성경 열왕기상 1장 34-40절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다윗 왕이 자신의 후계자로 솔로몬을 지명하면서, 사제 사독(Zadok)과 예언자 나단(Nathan)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 전통적인 기름부음(Anointing) 의식 때 쓰인 대사는 973년 바스 대성당에서 열린 에드가 왕의 대관식부터 모든 영국 대관식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헨델은 이 고대의 전통적인 안티폰(antiphona, 교대로 부르는 후렴구) 'Unxerunt Salomonem'을 영어로 번역한 가사를 사용했다.
'사제 자독'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제 자독과 예언자 나단이 솔로몬을 왕으로 기름 부었도다
그리하여 모든 백성이 기뻐하며 말하되:
하나님이 왕을 구원하소서! 왕이여 만세!
하나님이 왕을 구원하소서! 왕이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할렐루야
'사제 자독'은 D장조로 작곡되었으며 이는 바로크 시대 승리와 축제를 상징하는 조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밸브가 없던 바로크 트럼펫이 연주하기 가장 용이한 조성이 D장조였기 때문에 D장조가 승리 팡파르를 상징하게 되었을 걸로 추정된다.
곡은 7성부 합창(SSAATBB)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악기는 일반적인 2부가 아닌 3부로 나뉘어진다. 이는 헨델이 당시 대관식을 위해 동원한 연주진이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였기 때문인데, 47명 정원(定員)의 왕실 예배당 합창단에 추가로 50여 명의 합창단원이 더해졌고, 오케스트라 단원 또한 160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곡은 크게 세 개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장대한 기악의 서주부는 현악기의 상승하는 아르페지오와 하성부 현악기 및 목관악기의 풍부한 반복화음으로 시작되어 점진적인 크레센도를 통해 압도적인 긴장감과 기대감을 끌어올린다. 이어서 7성부 합창이 트럼펫과 팀파니와 함께 등장하며 조용한 시작에서 큰 소리로의 극적 변화를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합창은 가사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호모포닉하게 진행되며, 대위법적 요소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헨델은 이 곡에서 화성적 변화보다는 D장조에 확고히 뿌리를 두고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표현을 추구했다. 가장 단순한 수단만으로 인상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 헨델의 음악적 내러티브는 독창적이고 압도적이다.
■ 마틴 니어리의 지휘로 웨스트민스터 사원 합창단, 런던 브라스, 니콜라스 다니엘(오보에), 마틴 베이커(오르간)의 연주로도 '사제 자독'을 감상해 보고,
- https://www.youtube.com/watch?v=waTzBd5lTHQ
■ 대관식 찬가 4부 전곡은 데이비드 윌콕스 경의 지휘와 네덜란드 소년 합창단, 네덜란드 바로크 오케스트라 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tnxzi-STF54?si=A_8K5R9-GalVjaeZ
■ 마지막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테마송으로 편곡된 '사제 자독' 버전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6SckdpiJ8oM
♥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