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2일 화요일 -
♡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로자문데' 간주곡 3번 내림나장조 D.797-5/'Rosamunde', D.797-5, Entracte 3 in B-Flat Major>
■ https://www.youtube.com/watch?v=EjCE6Dj-KKc
섭씨 22도! 어제 아침에 내린 비 때문인지 아침 산책길에 서늘한 가을바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파트 화단에선 지난여름 내내 찍찍거리던 직박구리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대신 낮고 볼륨 있는 비둘기의 구구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직 밤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은 듯 볼륨을 올리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지난주까지도 처절하고 맹렬했던 매미 소리를 벌써 다 지우고 있었다.
"우리 남은 생에 가장 시원한 여름"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기상학자들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9월에 접어들자마자 빠르게 여름의 시간을 지워가는 위대한 자연의 시계에 감탄하며 우리는 또 지구가 허락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비해 버리진 않을지...
이미 수십 년 넘게 지구는 인간들에게 최대한의 정중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예민한 과학자들은 이런 지구의 경고를 끊임없이 인류사회에 전달해오기도 했었고. 인류의 과학은 이제 원자보다 작은 소립자의 세계에서부터 은하를 넘어 우주의 끝을 사유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이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복잡계들과 대기 중 탄소 농도 문제가 얽혀있기도 하고, 더 직접적으로는 어떤 과학적 해결책을 시도해보려고 해도 천문학적인 예산과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난마처럼 얽힌 이 문제를 풀기도 전에 인류는 지구가 남겨준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의외로 그 해답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간단한 해결책이 최선일 때가 있다. 그건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기존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아이디어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이해관계에 얽혀 문제 해결의 핵심과 실행시기를 자꾸 놓치고 있는 기성세대 대신 다음 세대들에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전권을 맡겨보면 어떨까? 인류역사 이래 이런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에 대한 레퍼런스도 없을뿐더러 미래 세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역사의 시간이기도 하니...
오늘 아침은 불행 속에서 찬란하게 빛난 명작, 슈베르트의 '로자문데' 간주곡을 골랐다. 불행은 온전히 불행만으로 오진 않는다는, 그리고 행복 속에서 불행의 씨앗은 자라고 있다는 이 세상의 모순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1823년의 추운 겨울,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는 한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헬미나 폰 셰치 부인이 쓴 4막 희곡『키프러스의 왕녀 로자문데』에 바탕한 연극이었다. 연극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시간에 쫓겨 충분하게 다듬어지지 못한 각본과 연출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망해버린 연극의 부수음악은 슈베르트가 맡았다. 슈베르트 또한 급하게 작품의뢰를 받아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로자문데의 부수음악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서곡의 경우에는 새로 작곡할 시간이 없어 23세 때 썼던 '마법의 하프'라는 극음악의 서곡을 재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연극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다행히 관객들은 26세의 슈베르트가 작곡한 이 연극의 부수음악에 대해서만큼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앞서 소개한 간주곡 3번은 오늘날까지도 슈베르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는 명곡이지만, 하마터면 이 곡은 세상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연극이 너무 처참하게 실패하자 슈베르트는 이 곡을 선반 깊숙이 숨겨두고 세상에 내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40년이 더 지나 슈만이 우연히 이 곡을 발견하여 다시 세상에 알려졌고, 1867년 영국의 음악사전 편찬자 조지 그로브와 오페라《미카도(The Mikado)》의 작곡가 아서 설리반이 함께 빈을 찾아와 슈베르트의 악보집에서 이 작품을 찾아내어 세상에 발표하면서 기적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1823년 여름은 슈베르트의 인생에 치명적인 전환점이 된 해였다. 매독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매독은 당시 빈 사회에 만연했던 성병이었지만, 슈베르트에게는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까지 다 빠져버리고,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하며 이전의 천진난만한 소년 같던 성격은 사라지고 어둡고 조울증에 시달리는 성격으로 변해버렸다.
1824년 3월, 친구인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에게 보낸 편지에서 슈베르트의 절망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라네. 건강이 영원히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 그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 보게나"
같은 해 일기에서는 더욱더 절망적인 감정이 드러나 있다.
"매일 잠에 들 때마다 나는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이 또 엄습한다. 기쁨도 편안함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이 무렵 슈베르트는 1년에 몇 차례나 거처를 바꿔야 하는 극도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무일푼의 젊은 예술가였던 그는 때로는 형 페르디난트의 집에, 때로는 아버지 집에, 대부분은 친구들의 집에서 거처를 구했고 종종 한 방을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피아노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생계를 위해 특정 행사를 위한 중창곡들, 살롱 음악용 피아노 소품, 무곡 등을 작곡해야 했다.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슈베르트의 밤)는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만든 예술 모임으로 슈베르트가 힘든 생활 속에서도 그의 음악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이 비공식적 동아리에는 아홉 살 연상의 절친 요제프 슈파운(1788~1865), 시인 요한 마이어호퍼(1787~1836),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1796~1862), 성악가 미하엘 포글(1768~1840), 그리고 시인 프란츠 쇼버(1796~1882) 등이 참가하고 있었다.(슈베르트가 매독이란 성병에 걸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프란츠 쇼버가 슈베르트를 빈의 사창가로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들은 밤마다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낭송하며 문학을 토론하고, 술과 담배를 즐겼다. 가난 때문에 거처조차 일정치 않았던 슈베르트는 이렇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현실의 궁핍을 위로받았고, 그의 음악은 번듯한 콘서트홀보다는 작고 은밀한 살롱에서 주로 연주되었다.
그런데,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그들만의 아지트로 몰려다녔던 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흔히 '비더마이어 시대'라고 불린 1815년부터 1848년까지의 시기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의 철혈재상 메테르니히가 주도하여 기존와 왕족들이 다시 권력을 수복한 보수 반동의 시대였다. 겉으로는 유럽 열강의 영광과 번영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살벌하고 억압적인 경찰국가의 모습으로 진보적 지식인들이 억압받던 시기였다. 시대를 비판하며 혁명을 꿈꿨던 젊은 예술가들은 '광장에서 밀실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고, 슈베르트의 '슈베르티아데'도 그런 시대의 산물 중 하나였다.
연극『키프러스의 왕녀 로자문데』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이 희곡을 쓴 베를린 출신의 헬미나 폰 셰치(Helmina von Chézy, 결혼 전 그녀의 본명은 빌헬미네 폰 클렌케(Wilhelmine von Clencke)였다)는 극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시인,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한 당대에 보기 드문 이력을 가진 진보적 여성이었다. 특히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오이리안테(Euryante)』의 대본도 집필한 경험이 있는 오페라 대본 작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빈 음악계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었다.
당시 연극계에서는 순수하게 연극만 공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지만, 때로는 음악을 반주로 하여 마치 오페라처럼 공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음악을 곁들인 연극'(Schauspiel mit Musik)이라고 불렀으며, 이런 공연을 위해 작곡가들은 종종 극음악(Incidental music)을 작곡해 주었다.
슈베르트가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의 의뢰를 받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는 않지만, 슈베르티아데 멤버 중 한 명이었던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Leopold Kupelwieser, 1796-1862)가 헬미나 폰 셰치 부인에게 슈베르트를 소개해줘 작품의뢰가 이루어졌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슈베르트는 오페라와 무대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마도 어릴 적 성가대 합창단을 하며 음악을 익혔기 때문일 것이다. 슈베르트는 모두 19편에 이르는 징슈필(노래 연극), 오페라 등을 작곡했는데, '알폰조와 에스트렐라', '휘에라브라스'(Fierrabras) 같은 오페라가 남아있기도 하다. 그래서 슈베르트는 친구들이 연극 연습을 하면 자주 어울려서 피아노로 극음악을 연주해 주기도 했는데 아마 이런 이유로 그의 친구들이 연극의 부수음악 의뢰를 자연스레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연극『키프러스의 왕녀 로자문데』의 부수음악 의뢰는 상연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너무 급박하게 이뤄진 모양이다.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고작 5일 만에 간주곡과 발레곡을 포함해 모두 10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당연히 촉박한 일정 때문에 서곡은 미처 쓸 시간이 없어 이미 완성된 오페라 '마법의 하프' 서곡을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음악은 우리에게 슈베르트의 유산으로 남아있게 되었지만, 연극의 원작 대본은 유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기록에 남아있는 원작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로자문데는 키프로스 왕의 딸로, 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왕의 유언에 따라 가난한 어부의 미망인 아크샤에게 맡겨진다. 이는 권력투쟁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아크샤는 로자문데가 18세가 될 때까지 정성껏 키우고, 키프로스의 섭정 알바누스는 그녀의 18번째 생일에 키프로스의 정통 계승자임을 세상에 알린다. 하지만 왕의 직무를 대리하고 있던 푸르겐티아스가 권력욕으로 로자문데와 강제결혼을 시도하고 독살까지 기도한다. 이때 어릴 때부터 약혼자였던 칸디아 왕국의 왕자 만프레트가 나타나 이를 막아내고 로자문데와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 간주곡 못지않게 자주 연주되는 그러나, 정작은 다른 오페라 '마법의 하프'의 서곡으로 쓰였던 '로자문데' 서곡은 엔리케 마졸라(Enrique Mazzola)의 지휘로 일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Orchestre national d’Île-de-France)의 연주로 감상해 보고,
- https://youtu.be/xnoxwoOxql0?si=wyFA5xQPTY6hEl-t
■ 극음악 <로자문데>의 전곡은 다음의 링크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와 유럽 챔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4bDWoOF-PtI&list=PLa1rC97wRkZiZUUb68bZXWQgA5Bd7zZFG
♥ 행복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
행복은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내가...
행복은 큰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것...
행복은
눈에 보이는 거이 아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
오늘도 행복은
우리 곁에서 맴맴 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