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4일 화요일 -
♡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s, 1862~1918)
< '환상' 또는 '꿈', L.68 / Rêverie, L.68>
■ https://www.youtube.com/watch?v=9AuzJ2GBCGw&list=RD9AuzJ2GBCGw&start_radio=1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어둠의 그림자들로 가득 차 있다. 달력의 계절이 가을의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가을이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밤과 어둠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밤과 어둠이 한때는 꿈과 환상을 위한 시간인 적도 있었다.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신비한 존재들이 가득한 환상 속 세상, 의식의 영역 너머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세상이 노골적으로 꿈을 통해 내 감각세계와 연결되었던 시절... 그저 사납고 무서운 존재라는 것 이외에는 그 형상을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것들에게 쫓기는 현실의 내가 식은땀을 흘리게 만든 꿈, 벼랑에서 떨어지며 아득한 추락의 감각을 일깨우던 꿈, 넓고 푸른 바다 한가운데 암초 위에서 파도에 맞서 시원하게 오줌을 지리는 꿈 등등... 어머니는 내가 그런 꿈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가볍게 웃으시면서 그건 그저 내가 잘 자라고 있다는 뜻의 꿈이라고 하셨다.
이제 그런 꿈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아니 어릴 때 성장통처럼 꾸던 그 환상 가득한 꿈보다 더 잔혹하고 기괴한 현실에 익숙해진 지금,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꿈처럼 아득해진 이 가을 아침이 왠지 낯설고 혼돈스럽다.
어릴 적 내가 꿈속에서 만났던 세상은 내가 성장하면서 만나게 된, 내 눈과 귀에 다 포착되지 않았던 세상의 숨겨진 이면(裏面)이었을까? 중년을 넘긴 내가 더 이상 꿈꾸지 않게 되었다는 건 감각기관 너머의 세상까지 내가 이 세계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내가 이제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꿈과 환상의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수단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찰나의 순간마저 놓치지 않고 내 감각기관을 온통 장악해 버린 미디어. 아마 그것들 때문일 것이다. 밤과 어둠을 타고 내 감각기관 너머의 세계에서 전해져 오던 신호들이 현실의 미디어들로 다 막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사라진 게 아니라 현실이 환상까지 재현해버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릴 적 만화나 소설에서나 읽었음직한 끔찍한 이야기들이 버젓이 TV모니터를 통해 생생한 영상으로 '이건 현실이야'라며 큰 소리로 울려 나오고 있으니...
드뷔시의 《Rêverie》는 1890년경 작곡된 피아노 독주곡으로, 당시 28세였던 드뷔시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어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곡이다. '꿈꾸는 상태'를 의미하는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은 몽환적이고 평온한 분위기를 통해 인상주의 음악의 초기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곡이 쓰여졌던 1890년대 초 유럽 음악계는 낭만주의 음악의 절정기를 지나며 새로운 음악적 모색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독일에서는 '바그너 대 브람스'로 상징되는 '낭만주의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는데, 바그너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1876년 시작)을 통해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영향력을 전 유럽에 과시하고 있었다면, 브람스는 1890년대까지 고전적 형식미를 고수하며, 빼어난 그의 교향곡들(1876-1885)이 여전히 유럽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살롱 문화가 전성기를 맞고 있었으며, 1890년까지 파리 살롱은 서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의 무대로 여겨졌다. 하지만 1874년부터 인상파 화가들이 주류 미술계에 맞서 독립적인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유럽 예술계는 기존 아카데미즘에 대한 도전이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1890년대에는 조제 팽 펠라당이 주최한 '장미+십자 살롱'과 같은 신비주의적 예술 운동도 등장했다.
드뷔시의 음악적 성장과정은 보통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초기(1879-1892)에는 파리 음악원에서 보수적인 교육을 받으며 전통적 형식에 충실한 작품들을 썼고, 1884년 칸타타 《탕아》로 로마 대상까지 수상하는 등 주류 음악계의 유산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마대상을 수상하며 떠나게 된 1885~1887년까지의 이탈리아 유학 중 로마 빌라 메디치에서 체류하는 동안 드뷔시는 기존 음악 교육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된다.
《Rêverie》가 작곡된 1890년은 드뷔시가 품었던 기존 음악에 대한 회의(懷疑) 본격화된 시기로 그의 음악여정에서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무렵 드뷔시는 프랑스 음악계의 두 거물의 지지와 영향아래 있었다. 그의 스승이었던 카미유 생상스는 여전히 고전주의적 전통을 고수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가브리엘 포레는 섬세하고 내성적인 음악어법으로 드뷔시에게 영감을 주고 있었다. 에르네스트 쇼송은 이 시기 드뷔시의 중요한 후원자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1890년 말 드뷔시는 몽마르트르의 카바레 '오베르주 뒤 클루'에서 에릭 사티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에릭 사티는 기존 음악과 다른 실험적 접근법으로 기존 관습에 대한 도전하고 있었으며, 이런 사티의 음악세계는 드뷔시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언어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다.
드뷔시는 《Rêverie》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급하게 작곡했다고 훗날 회고했는데, 그가 출판사 외젠 프로몽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 순전히 물질적 고려 때문에 서둘러 쓴 중요하지 않은 작품으로... 출간을 후회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곡가의 겸손한 평가와 달리, 《Rêverie('환상' 또는 '꿈')》는 이후 그의 작품들에서 나타날 화성적 혁신과 형식적 실험의 초기 징후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은 평온하고 차분하며 내면의 성찰이 담긴 작품으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상태를 음악으로 구현한 듯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화려한 색채감이나 극적 대비보다는 음악의 분위기와 감정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이 무렵 드뷔시는 여러 중요한 초기 작품들을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는데, 《Suite bergamasque(베르가 마스크 모음곡)》은 1890년부터 작곡을 시작해 1905년까지 수정을 거듭한 작품으로 특히 3악장 《달빛》은 후에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곡이다.《Deux Arabesques(두 개의 아라베스크)》(1888-1891) 또한 초기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곡으로 아라베스크 양식의 건축물 위로 펼쳐지는 미묘한 자연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이 시기 드뷔시는 폴 베를렌의 시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Suite bergamasque(베르가 마스크 모음곡)》의 여러 악장 제목들도 베를렌의 시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의 초기 대표작《Rêverie》 역시 상징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아 꿈과 환상의 세계를 음악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에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Rêverie》는 1891년에 초판이 출간되자마자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작곡가 본인의 우려와는 달리, 이 작품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혁신적인 화성 언어를 담고 있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의 성공은 드뷔시가 대중적 인지도를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현재까지도 피아노 레퍼토리의 핵심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명상과 마음 챙김을 위한 음악으로도 자주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재즈 음악의 화성적인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Rêverie》와 관련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마도 작곡가 자신이 이 작품의 출간을 극구 반대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드뷔시는 이 곡이 자신의 성숙한 스타일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출판사와 대중들의 판단은 달랐던 것 같다. 이는 예술가의 자기 평가와 작품의 실제 가치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괴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볼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전자음악 작곡가 도미타 이사오가 이 작품을 전자음악으로 편곡하여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대적 재해석은 《Rêverie》가 지닌 시대를 초월한 음악적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Rêverie》는 비록 드뷔시의 초기 작품이지만, 그가 후에 완성할 인상주의 음악의 핵심 요소들을 이미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20세기 현대 음악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그의 1894년 작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로 이어지는 음악적 혁신의 여정에서, 그 첫 번째 중요한 이정표였다.
■ 우리나라의 가을은 맑고 푸른 하늘, 청명한 대기로 상징되는데 최근의 잦은 가을비는 마치 여름의 장마가 가을로 옮겨온 듯하여 너무 아쉽다. 그나마 짧은 가을을 더욱 아쉽게 여겨지는 날들이다. 오늘 같은 날은 드뷔시의 곡들이 여러 모로 위안이 된다. 일본의 도미타 이사오가 전자음악으로 편곡한 'Rêverie'의 좀 더 몽환적 분위기를 느껴보자.
- https://youtu.be/y-H3A67A6AQ?si=fTJrOtZ_nk2MfCl9
■ 역시 전자음악보다는 아날로그의 피아노 소리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러시아 음악계를 뒤흔들었던 반 클라이번 피아노 연주로 다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gfnRWQg6xd0&list=RDgfnRWQg6xd0&start_radio=1
■ 이제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이지만, 그의 다른 색감의 화려하지만 아름다운 곡들을 모아놓은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오늘 하루는 그냥 드뷔시에게 빠져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UETuJ2LXJWQ&list=RDUETuJ2LXJWQ&start_radio=1
♥ 가을 바람
- 이해인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은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 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 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