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5일 수요일 -
♡ 카미유 생상스(Charles-Camille Saint-Saëns, 1835~1921)
< '동물의 사육제' R.125 / 'Le Carnaval des Animaux' R.125>
■ https://youtu.be/b44-5M4e9nI?si=N6L9V8m90MXN72Da
새벽에 병실을 찾은 간호사 소리에 잠을 깼다. 의자 겸 간이침대에서 쪽잠이 들었는데도 잠이 꽤 깊이 든 모양이다. 간밤에도 간호사들이 분명 병실을 다녀갔을 텐데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어제 출근길에 태백에 계신 어머니 이웃분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께서 계단 아래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계셔서 근처 병원 응급실로 모셨다고 했다. 계단을 내려오시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신 것 같다고 했다. 의사의 진단은 뇌진탕과 좌쇄골 골절상... 그런데, 좌쇄골의 골절된 뼛조각이 어긋나면서 신경과 근육을 건드리고 있어 수술이 필요한데 어머니가 지병이 계시고, 따로 그 병원에는 마취과 의사가 없어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셔야 된다고 해서 내게 전화를 했다 하셨다.
출근길 회사로 향하던 차를 태백으로 돌렸다. 점심을 좀 지나 태백에 도착해서 병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저녁 무렵 중앙대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다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밤 9시를 넘어서 수술을 위해 입원수속까지 마쳤다. 병원의 직원 말로는 늦게나마 의정갈등 사태가 마무리돼 전공의들이 복귀하면서 병원 응급실 운영에 숨통이 트여 늦게나마 어머니의 입원이 가능했다고, 어머니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어머니의 중앙대병원 입원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지병인 기관지염이 도지면서 호흡이 곤란해지면서 처음 입원치료를 하셨었고, 한 달쯤 뒤 의자에서 미끄러지는 낙상사고로 척추를 다치시면서 수술을 위해 두 번째 입원, 그리고 어제 또 계단 낙상사고로 좌쇄골 골절 수술을 위한 입원... 지난 두 번의 입원 때는 통합간호병동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가족 간병이나 면회도 쉽지 않았는데, 어제는 빈 병상이 보호자가 24시간 환자를 케어해야 하는 병동뿐이어서 모처럼 어젯밤은 어머니 병상을 내가 직접 지킬 수 있었다.
어머니는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야 했던 내가 계속 신경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간호사에게 통합간호병동으로 옮겨달라고 떼를 쓰셨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부모들은(특히 어머니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건강보다 자식의 건강을, 자신의 자아실현보다 자식들의 성공을 우선하게 된다. 그건 자연계 내 모든 생물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가 성공적인 번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이 세계에서 존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오직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야생(野生)의 공간에서 벗어나 사회적 존재로 거듭났다고 해도 이 원초적 본능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힘든 순간을 묻는다면, 자식이 아플 때이거나 자식이 원하는 것을 자신들의 능력으로 해줄 수 없을 때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러 병으로 고통을 겪고 계시는 부모님을 돌보아야 하는 자식의 입장은 어떨까?
사실 어릴 때는 부모님은 아픈 데라고는 없는 위대한 철인(鐵人)들 같았다. 내가 이런저런 병치레로 병원을 다녀야 했을 때 당신들은 항상 나의 '보호자'였고, 집안의 장례나 혼례 같은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며칠씩 걸리는 여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해 내셨다. 내 기억에 대학생이 되어서도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에 가신 적이 거의 없다.(지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대학을 다닐 때나 직장생활 초년기 때는 당신들이 굳이 내게 병원에 간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모시고 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제 중년이 되면서 당뇨나 고혈압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마치 철인 같았던 당신들도 그 무렵부터 몸이 망가지고 있었고, 우리에게 내색하시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을...
올해 초 아버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해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제 나도 아버지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내 인생의 마무리를 차곡차곡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내게 남겨진 삶의 시간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직 내가 지금껏 못 이룬 꿈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나를 바라보고 계시던 어머니의 쓸쓸하지만 따스한 시선을 보면서 조용히 다짐하게 된다. 나의 마지막은 나와 내 자식이 고통받지 않도록 별다른 병치레 없이 조용히 행복하게 마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조심조심 살아야겠다고...
오늘 아침은 어제 어머니를 응급실에 모셔놓고 휴대폰으로 틀어드렸던 생상스의 동물사육제 중 13번째 곡 '백조'를 골랐다. 어머니가 좋으시다셔서 아침식사할 때도 스마트폰으로 틀어놓았다.
'사육제'(Carnival)는 본래 기독교 전통에서 사순절(부활절 전 40일의 금욕 기간)에 들어가기 직전 한껏 즐기는 축제를 의미한다. 이 시기는 '참회의 화요일'(Shrove Tuesday, 불어로 Mardi Gras) 전까지 이어지는데, 유럽 곳곳에서 화려한 퍼레이드와 가면극, 음악회가 열리고 일상의 틀을 넘어 자유와 환희, 재치를 마음껏 표출하는 기간이다.(시작은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불어로 Mercredi des Cendres 라고 한다)
19세기 파리에서도 사육제는 시민과 예술가 모두에게 해방감과 상상력을 주는 사회적 이벤트였다.
생상스에게도 이 사육제의 분위기는 그의 음악작업에서 특별한 영감의 근원이 되었는데, 음악계는 물론 예술 전반이 융합된 이 축제를 바탕으로 생상스는 유머와 풍자, 위트 넘치는 그만의 작품을 구상할 수 있었다.
'동물의 사육제'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는 당대 프랑스 음악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첼리스트이자 저명한 음악계 인사였던 샤를 르부크(Charles Lebouc)의 의뢰로 작곡되었다. 생상스와 르부크는 파리의 다양한 음악회 모임에서 만나 예술적 동지로 가까워졌는데, 르부크는 단순한 첼리스트 연주자가 아니라 프랑스 사교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부크는 특히 사적인 음악회나 작은 살롱 연주회를 자주 기획해, 동료 음악가들에게 자유로운 실험의 장을 제공했다.
생상스와 르부크는 돈독한 인연을 맺으며 경쾌한 사교적 분위기의 음악회를 자주 열었는데, 마침 르부크는 생상스에게 사육제 기간 중 특별한 연주회를 위한 신작을 의뢰하게 된다. 르부크는 이 연주회를 색다른 축제로 꾸미고 싶었기 때문에 생상스에게 익살과 기지가 넘치는 작품을 부탁한다. 그 목적에 부합하게 만들어진 음악이 바로 ‘동물의 사육제’다.
1886년, 파리 음악가들은 사순절 직전 들뜬 분위기에서 축제를 준비하며 여러 가지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 무렵, 생상스는 독일 순회공연 실패 이후 잠시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다. 브루크는 당시 사육제 분위기에 들떠있던 프랑스 음악계의 분위기를 전하며 생상스에게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을 요구하게 되자, 생상스는 이전까지 그가 고수하고 있던 작곡의 틀을 벗어나 유쾌한 곡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생상스는 오랜만에 기존의 음악적 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해방감을 느끼며 친구들의 요청에 맞춰 2월의 짧은 휴양 기간 동안 14악장의 소품으로 구성된 작품을 단 번에 완성한다. 각 악장은 사자, 닭, 코끼리, 백조 등 다양한 동물의 특징을 음악적으로 묘사한 '동물학적 환상곡'으로, 재치와 풍자가 가득했다. 특히 첼리스트 르부크를 위해 13번째 곡 '백조'는 첼로의 솔로 연주가 두드러지게 만들어 르부크의 기량과 서정성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초연은 1886년 3월 3일, 파리의 한 살롱에서 임시로 조직된 사적인 연주회에서 진행되었다. 르부크가 이끄는 이 연주회에는 생상스 본인, 디에메르, 타파넬 등 당대의 뛰어난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청중들은 동물의 사육제 각 악장의 유머, 위트, 동물묘사, 패러디에 박장대소했으며, 특히 르부크의 첼로 연주는 큰 감동을 자아냈다.
생상스(1835-1921)는 일찍부터 신동으로 명성을 떨친 천재적 작곡가였다. 1860년대에는 오르간 연주자로, 1870년대에는 오페라와 교향곡 작곡가로 명성을 쌓았고, 1878년에는 대표적 교향곡인 『제3번 오르간 교향곡』을 발표하며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1880년대 들어 생상스는 창작활동뿐만 아니라 교육과 비평에도 활동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 음악의 독자적 기반 마련을 위해 사생아(흑인 음악가)인 오귀스트 콜(Romain Bussine) 등과 함께 프랑스 국민음악협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1886년 독일 연주 투어 실패와 평론가들의 비판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시기에, 친구를 위한 위트와 풍자를 담은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는 욕구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동물의 사육제'였기 때문에 생상스는 이 곡을 '비공식적'이며 지인들과의 사적인 모임에서만 연주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래서 곡의 출판도 그의 생전에 이뤄지지 않았고, 전곡의 악보가 공개되는 일도 없었다. 이는 당시 그의 명성을 떨치게 만들었던 오페라, 교향곡 등의 "진지한 작품"들이 대중들이 가볍게 생각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단, '백조'만은 예외로 생전에 별도의 작품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이 곡은 음악사 풍자, 동시대 음악가의 패러디, 그리고 당대 유행하던 테마와 클래식 음악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생상스는 그의 음악수업에서 '동물의 사육제'에서 피아노와 현악기, 관악기 등 다양한 악기를 동원해 동물의 특징을 재치 있게 표현한 내용을 직접 활용하기도 했다. 가령 거북이 악장에서는 오펜바흐의 캉캉 선율을 느리게 패러디해 엉뚱함과 유머를 돋보이게 한 악장까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가브리엘 포레, 에릭 사티, 라벨 등 동료 음악가들은 이 곡을 듣고 크게 감탄 또는 유쾌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사후(1921년 이후) 전곡이 출판되자 곧바로 이 곡은 세계적 인기를 누렸고, 오늘날에는 어린이 교육용 작품, 클래식 입문곡, 그리고 음악회에서 필수적으로 연주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 작품은 클래식 음악의 경직된 이미지를 깨고, 음악에도 유희와 위트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줬는데, 이로써 생상스는 20세기 이르러 미니멀리즘, 개그 음악, 재치 있는 편곡 등 다양한 음악 스타일의 선구자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동물의 사육제'는 14개의 짧은 악장(서주 포함)으로 이루어진 모음곡이다. 각 악장은 한 가지 동물(또는 생상스가 풍자하고 싶은 대상을 동물로) 비유해 음악적으로 그 특성을 표현한다. 빠르거나 느린 곡이 번갈아 나오며, 피아노 두 대와 현악 4중주(혹은 작은 관현악단), 글라스 하모니카(현대에는 첼레스타나 벨로 대체) 등 기발한 조합의 편성을 자랑한다. 각 악장별 제목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1곡 : "수사자 왕의 행진" - 힘찬 서주와 위엄 있는 선율
2곡 : "닭과 수탉" - 까끌까끌 날카로운 현의 피치카토
3곡 : "거북이" - 오펜바흐의 캉캉을 패러디한 ‘느린 유머’
4곡 : "코끼리" - 현악기 저음부와 콘트라베이스의 중후한 유머
5곡 : "캥거루" - 현악의 활 튕김으로 점프 묘사
6곡 : "수족관" - 투명한 음색의 물결 묘사
7곡 : "백조" - 첼로의 서정적 선율(가장 유명함)
8곡 : "피아니스트" - 연습생의 어긋난 스케일을 패러디
9곡 : "동물원에 사는 사람들 (당나귀)" - 둔탁하고 낮은 소리를 내는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묘사
10곡 : "볼모 (Boléro)" - 당나귀를 뜻하는 프랑스어 '볼모(Boléro)'로, 당나귀의 거친 울음소리를 묘사
11곡 : "공작새" - 피아노의 트릴과 현악기의 우아한 선율로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과 자태를 표현
12곡 : "화석" - 생상스가 자신의 이전 곡들과 프랑스 민요 '반짝반짝 작은 별' 등을 인용하여 뼈가 부딪히는 소리처럼 익살스럽게 묘사 (목금과 피아노 사용)
13곡 : "백조" - 첼로의 서정적인 음색으로 백조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묘사
14곡 : "종결곡" - 모든 테마가 재등장하며 떠들썩하게 축제를 마무리
곡 전체에는 여러 동시대 음악가와 유행 음악, 심지어 자신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유쾌한 반전이 있다. 각 악장은 매우 짧고 음악적 재치가 넘치지만, 동시에 진지한 음악적 실험정신이 살아 있다.
■ 14악장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등장하는 곡이 11악장 '피아니스트'인데, 생상스는 꼭 갓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초보 연주자처럼 쳐야 한다고 악보에 지시해 놓았다. 재미있게 한 번 들어보자.
- https://youtu.be/7SjagpXeNhM
■ 13악장 '백조'는 첼로와 피아노로 편곡하여 첼리스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곡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요요마의 첼로로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3qrKjywjo7Q
■ 전곡은 샤를 뒤투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에타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HDwehJzaahs?si=MeKgEcscBJlzjM5s
■ 영원이 찰나를 부른다
- 추영탑
하늘이 거기 있으므로 보았다
털 빠진 새 한 마리 두 발로 날아간다
저 새도 내가 무엇으로 걷고 있는지를
보고 있을까
세상 하나를 견디다 다른 세상 하나를
만나면 세상 하나는 기꺼이 버려야 하는 것
몸은 두고 그림자만 오라는 듯
그림자 먼저 들어서는 좁은 문
함께 병들고 함께 죽지 못하는
찰나로 뒤섞이는 영원, 누가 영원永遠이
있다고 했는가
점점 좁고 작아지는 저 문
세상에 나온 뜻을 모르니 세상을 떠냐야 하는
뜻도 모르는데 자꾸만 밀려가는 찰나 하나가
사는 것도 병이라며 영원 속을 기웃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