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완성(未完成), 부족한 대로도 아름답다...

- 2025년 10월 17일 금요일 -

by 최용수

♡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 Opera『Les Contes d'Hoffmann(The Tales of Hoffmann)』>


https://www.youtube.com/watch?v=eTyxSjeSfCE&list=RDeTyxSjeSfCE&start_radio=1


삶의 속도를 늦추니 정말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발버둥 쳐왔던 수많은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꿈꾸던 성공(成功)은 정말 나를 위한 욕망이었을까? 타인이 욕망하는 걸 마치 내가 욕망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는 않았을까?

수많은 노력을 들여 내가 이룬 것들은 정말 완성(完城)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들이었을까?


제작현업에 있던 시절, 힘들게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으로 내보내고 난 다음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아쉬움과 허무함, 그리고 때때로 후회까지. 프로그램 제작자로서 30년을 살아왔지만, 내가 진심으로 만족했던 프로그램은 단 한 편도 없었다. 프로그램 말고도 회사에서 여러 프로젝트들을 맡아 최선을 다했다고 믿으며 진행했던 일들조차도 그랬다.


기획 단계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새로운 사실들과 그 사실들을 둘러싼 인과관계들을 파악하는 일부터가 난관이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제한된 시간 안에 내가 취재해야 할 대상에 대한 정보를 완벽(完璧)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기획이 끝나고 취재에 들어가면 더 당황스럽다. 애초에 내 기획의도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이들에게 내가 취재하고 싶은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해도 원하는 내용의 영상과 인터뷰는 얻는 일은 난망하고, 설사 기획의도가 시의성이 있고 대중적 공감도 있어서 출연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에도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 때문에 서로 오해와 갈등을 빚는 일도 다반사다.

게다가 프로젝트 보고서와 달리 방송프로그램은 제작스탭과의 협업이 필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작가와 카메라 감독, 기술스태프들까지 수많은 인원들과 함께 작업하다 보면, 사소한 문제로 제작일정이 늦춰지거나 취소되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 힘든 과정을 겪으며 최종적으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 보고서를 완성할 단계에 이르면, 이 결과물이 세상에 나가게 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수십 차례 시뮬레이션해 보면서 마지막까지 단어 하나 도표 한 장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도 필수다.

수많은 게이트 키퍼(Gatekeeper, CP(Chief Producer), 부장, 국장 등/요즘은 사전심의가 없어졌지만, 때로는 심의실까지)들의 첨삭이 이어지고(이 과정은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일이기도 하지만, 제작자들에겐 자신의 최초 기획의도가 온전히 관철되었는가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과정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단계이기도 하다) 그렇게 마침내 최종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 과연 이 프로그램(또는 프로젝트)에서 내가 무언가를 "완성했다"라고 평가할만한 부분들은 무엇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가장 보편적인 평가기준은 내가 처음 제시했던 '기획의도'가 최종 평가물에 충분히 드러났는가일 테다)


어디 회사일들만 그렇겠는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가 일생을 산다는 것은 애초에 내 존재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살아온 흔적 모두는 온전히 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남겨질 뿐인데 어떻게 스스로 '완벽(完璧)'이라느니 '완성(完城)'이라느니 하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에게 남는 선택은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내가 욕망하는 것들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이루고 사는 것일 수밖에 없다. 각자 다른 환경, 다른 조건에서 살아온 인생들에게 획일적인 '완성(完城)'의 의미란 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일인데 왜 우리는 끝없이 완성을 갈구하는 것일까?


자크 오펜바흐는 대중적 오페레타로 큰 성공을 거둔 작곡가지만, 사실 그는 평생 상업적 흥행 작곡가란 말보다는 예술가로 인정받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평생 단 한 편 예술적 가치만을 바라보고 한 작품을 쓰게 되는데, 그게 바로 오늘 소개하는 오페라『호프만의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작품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인생은 늘 '미완성(未完城)'일 수밖에 없지만, 내가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끊임없이 이루려고 노력하는 그 속에서 가장 빛나는 것 같다.



우리에겐 '캉캉 춤'(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 으로 익숙한 자크 오펜바흐는...


자크 오펜바흐는 1819년 6월 20일 독일 쾰른에서 야코프 오펜바흐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이삭 유다 오펜바흐는 시나고그의 칸토르이자 음악교사였으며, 어머니는 마리안네 린츠코프였다. 열 명의 자녀 중 일곱째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여섯 살 때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두 해 만에 작곡을 시작했으며, 아홉 살에는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역의 유명한 첼리스트 베른하르트 브로이어에게 첼로 수업을 받았고, 12세에는 자신의 작품으로 첫 연주회를 가졌다. 형 율리우스, 누나 이사벨라와 함께 삼중주를 결성해 지역 무도회장과 카페에서 연주했다.

1833년 14세의 나이에 형 율리우스와 함께 아버지의 동반으로 파리로 떠났다.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려 했으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지만, 즉석에서 첼로를 연주해 보인 후 입학이 허가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음악원을 1년 만에 그만두고 15세에 오페라 코미크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로 취직했다.

오페라 코미크에서 젊은 작곡가 프리드리히 플로토우를 위해 악보 필사 일을 하며 친분을 쌓았고, 함께 첼로곡집을 만들기도 했다. 1844년부터는 첼로 독주자로 활동하며 영국을 순회 공연했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앞에서 연주해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 받기도 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여유를 얻어 본격적인 작곡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1850년 극장 매니저로 일하기 시작했고, 1855년 자신의 극장인 부프 파리지앵을 열어 오페레타 작곡에 본격 뛰어들었다. 1858년 『지옥의 오르페우스』(우리에겐 오페레타보다는 '캉캉 춤'으로 유명한)로 대성공을 거두며 오페레타 장르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이어서 제2제정 시대 파리의 화려하고 풍자적인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1860년대에는 『아름다운 헬레네』(1864), 『파리의 생활』(1866), 『제롤슈타인 대공비』(1867) 등 걸작들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1870년 보불전쟁과 제2제정의 몰락으로 오페레타의 인기가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1872년부터 1876년까지 가이테 극장을 운영하며 새로운 시도를 계속했다. 1876년에는 미국 순회공연을 다녀오기도 했다.


평생 대중적인 오페레타의 아버지로 명성을 얻었지만, 이때부터 오펜바흐는 대중적 흥행보다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알리고 싶은 욕심에 정극 오페라 작곡에 매진하게 된다. 1877년부터 작곡을 시작한『호프만의 이야기』가 바로 그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무렵 오펜바흐는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져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전곡을 피아노 곡으로는 완성했다) 1880년 10월 5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친구 에르네스트 기로에게 미완성 부분을 맡겼고, 1881년 2월 10일 에르네스트 기로가 완성한 작품의 초연이 이뤄졌다.


오펜바흐의 필생의 역작『호프만의 이야기』


오펜바흐는 1880년 10월, 오페라 초연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사망하면서 『호프만의 이야기』를 미완성으로 남겼다. 그의 친구인 작곡가 에르네스트 기로가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하여 1881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초연 당시 이 작품은 비평가들과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오펜바흐가 오페레타 작곡가를 넘어 진정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초연 이후부터 이 작품은 악보의 복잡한 역사를 겪게 된다. 출판사나 연출가들의 재량에 따라 악장의 순서가 바뀌거나, 일부가 삭제되거나, 다른 작곡가의 음악이 추가되는 등 수많은 판본이 난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초연 당시에는 극장 화재를 우려하여 제3막(줄리에타)이 통째로 삭제된 채 공연되기도 했다. 이러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호프만의 이야기』는 그 뛰어난 음악성과 독특한 극적 구조 덕분에 빠르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현재까지도 전 세계 오페라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오페라 레퍼토리의 경계를 넓혔다는 평가와 함께 환상적인 스토리텔링과 심리 묘사를 오페라에 효과적으로 접목시킨 모범적 선례로 인정받았다. 오펜바흐는 오페레타 명성 위에 예술적 깊이의 정점을 더함으로써 그의 음악적 유산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의 음악은 후대 작곡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오페라의 드라마틱한 전개와 감성적인 멜로디를 중요시하는 흐름에 기여했다. 이는 오펜바흐가 단순한 희극 음악가가 아니라, 비극적 서사와 인간 내면을 탐구할 수 있는 위대한 작곡가였음을 증명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오페레타를 넘어선 오페라 판타스티크 『호프만의 이야기』


오페레타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발달한 가벼운 음악극으로, 유머러스한 주제와 해피엔딩을 특징으로 한다. 오페라에 비해 음악이 단순하고 접근하기 쉬우며, 노래와 함께 대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90분에서 2시간 정도의 짧은 길이를 가지며, 풍자적이고 재치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오페라는 이야기가 주로 노래를 통해 전개되는 반면, 오페레타는 대화와 노래가 혼재되어 있어 더욱 역동적이고 오락적이다. 오페레타의 성악 스타일은 클래식 성악과 대중적 성악의 중간 형태로, 높은 기술적 요구사항을 갖지 않는다. 춤과 무용이 자주 포함되며, 보통 두 쌍의 연인(주연과 조연)이 등장하는 구조를 갖는다.

오페레타의 대가로 명성을 얻었던 오펜바흐의 마지막 작품 『호프만의 이야기』는 기존 정극 오페라보다 더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요소를 담고 있어 특별히 오페라 판타스티크(opera fantastique)라고 불린다.

오페라 판타스티크는 일반 오페라보다 더욱 복잡한 심리적 묘사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문학적 깊이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오펜바흐의 경우 기존 오페레타의 가벼움을 버리고 바그너적 영향을 받은 더욱 풍부한 화성과 관현악법을 사용했다. 이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예술적 깊이를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극이었다.


『호프만의 이야기』원작과 줄거리


『호프만의 이야기』는 독일 낭만주의 작가 E.T.A. 호프만의 세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은 『모래사나이(Der Sandmann)』, 『크레스펠 고문관(Rat Krespel, 또는 The Cremona Violin)』, 『잃어버린 거울상(Das verlorene Spiegelbild)』이다. 1851년 쥘 바르비에와 미셸 카레가 이를 연극으로 각색했고, 오펜바흐는 이 연극을 보고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오페라는 프롤로그, 1~3막,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막은 호프만의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프롤로그에서 시인 호프만은 뉘른베르크의 루터 맥주집에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세 연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설정한다. 각 막은 호프만의 인생 단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젊음에서 성숙, 그리고 타락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여정을 그린다.

1막 올림피아는 『모래사나이』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호프만이 아름다운 기계인형에게 반하는 내용이다. 올림피아는 물리학자 스팔란차니가 만든 정교한 인형으로, 호프만은 그녀가 진짜 여인인 줄 알고 사랑에 빠진다. 악역 코펠리우스가 올림피아를 파괴하면서 호프만의 첫 번째 환상이 깨진다.

2막 안토니아는 『크레스펠 고문관』을 원작으로 하며, 병든 가수 안토니아와의 사랑을 다룬다. 안토니아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노래를 부르면 죽을 수도 있는 병을 앓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 크레스펠은 딸을 보호하기 위해 노래를 금지하지만, 악역 닥터 미라클의 유혹으로 안토니아는 노래를 부르다 죽게 된다.

3막 줄리에타는 『잃어버린 거울상』을 바탕으로 한 베네치아 이야기로, 호프만이 창녀 줄리에타에게 자신의 거울상(영혼)을 빼앗기는 내용이다. 이는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힌 호프만의 타락을 상징한다. 에필로그에서 호프만은 세 사랑이 모두 실패로 끝났음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인 뮤즈를 만나 예술에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각 막의 악역들(코펠리우스, 미라클, 다페르투토)은 모두 같은 가수가 연기하여 호프만을 괴롭히는 악의 화신을 상징한다.


■ 이 오페라에는 유명한 아리아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앞서 소개한 곡이 가장 유명한 '아름다운 밤, 사랑의 밤(Belle nuit, ô nuit d'amour)'으로 시작하는 뱃노래(Barcarolle)다. 이 곡은 호프만의 세 번째 사랑이야기에서 베네치아의 운하 옆 호화로운 주택에서 호프만의 친구 니클라우스와 고급 매춘부 쥴리에타가 부르는 이중창이다. 특히 이 노래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수용소에서 흘렀던 노래로 더 인상 깊게 남아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YORggndH-Ew


■ 그리고 첫 번째 실패한 사랑이었던 기계인형 올림피아의 노래, 일명 '인형의 노래'로 알려진 '새들은 나뭇가지 사이에(Les oiseaux dans la charmille)'는 조수미의 목소리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lW2iiZ8MyGI


■ 두 번째 사랑이야기에서 나오는 안토니오와 호프만의 이중창 '이것이 사랑의 노래라네'(Pourtant, ô ma fiancée - C'est une chanson d'amour)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리처드 터커와 루신 어마라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ICzUVwrUik4



몸관악기


- 공광규


˝당신, 창의력이 너무 늙었어!˝

사장의 반말을 뒤로하고

뒷굽이 닳은 구두가 퇴근한다


낡은 우산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슬픔의 나이를 참으라고 참아야 한다고

처진 어깨를 적시며 다독거린다


낡은 넥타이를 움켜쥔 비바람이

술집에서 술집으로 굴욕을 끌고 다니는

빗물이 들이치는 포장마차 안


술에 젖은 몸이

악보도 연주자도 없이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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