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에 '공영방송'이란 규정이
없는 나라

- 한국의 미디어 시장은 현재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법천지'

by 최용수


1. 2026년을 미디어 거버넌스 대전환의 해로...


2026년 1월 22일,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KBS 이사 선임 관련 판결은 대한민국 미디어 법제사(法制史)에 있어 하나의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판결은 표면적으로는 2024년 윤석열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2인 체제’ 의결이 위법함을 확인하는 사법적 선언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어 온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정치적 후견주의(Political Clientelism)와 합의제 행정기관의 파행적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경종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 미디어 생태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공영방송 KBS를 포함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끝없는 추락과 넷플릭스(Netflix)와 유튜브(YouTube)로 대변되는 글로벌 OTT 플랫폼의 국내 미디어 시장 장악!"이 될 터이고, 두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빠른 속도로 콘텐츠 제작과 유통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가공할만한 AI의 도전"을 추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미디어 생태계는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이 거대한 두 조류(潮流)로 인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기의 국내 미디어 시장을 규제할 법과 제도는 말 그대로 '공백(空白)' 상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없다. 파편화되고 분절화되어가고 있는 미디어 이용자의 권익은 물론이고, '한류'의 출발점이자 국내 미디어 생태계의 뿌리를 담당해 오던, 한류 콘텐츠 생산의 중심 공영방송사의 몰락에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대한한국의 미디어 관련 법체계가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제정된, 2000년 '통합방송법'의 낡은 틀 안에 여전히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공영방송을 시민을 위한 공론장이 아닌, 정권 획득 시 반드시 차지해야 할 '전리품'으로 간주해 온 양대 정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여야 정치권력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공영방송의 개념과 공적 책무를 법 개정을 통해 발전시키기는커녕, 이사 추천권과 사장 선임권을 통한 지배구조 장악 등 기득권 유지를 위한 소모적 진영 싸움에만 몰두해 왔다. 소위 이런 정치적 후견주의에의 매몰은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인 본질적 방송법제 개편 논의를 가로막았고, 결국 '공영방송'이라는 정의마저 방송법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입법적 직무 유기를 26년이나 방치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6년은 대한민국 미디어 정책사에서는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7년간 방송과 통신의 융합 환경을 규율해 온 방송통신위원회(KCC) 체제가 막을 내리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Broadcasting Media Communications Commission, 이하 '방미통위')가 공식 출범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기관 명칭의 변경을 넘어, 2024년과 2025년을 관통하며 한국 사회를 극심한 갈등으로 몰아넣었던 '2인 체제'의 파행적 운영과 방송의 정치적 후견주의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입법적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방미통위의 출범만으로 혼돈스러운 대한민국 미디어 생태계의 난맥상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야 출발점에 섰다고 봐야 한다.


글로벌 OTT(Over-The-Top)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확대,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 이후의 재정 위기, 그리고 AI 기반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의 범람은 기존 방송법 체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OECD 주요국들은 디지털 플랫폼 규제와 미디어 공공성 강화를 위해 법적, 제도적 정비를 마치고 실제 행정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미디어 관련 법제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정도로 시급하다.


2. 법·제도 지체(regulatory lag)가 초래한 시장 황폐화


한국 미디어 산업의 위기는 글로벌 플랫폼의 부상이라는 외부적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 원인은 법과 제도가 급격한 미디어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데 있다. 이른바 '규제 지체(regulatory lag)' 현상이다.


2000년 1월 12일 공포된 통합방송법(방송법 제6139호)은 구 방송법, 한국방송공사법, 종합유선방송법, 유선방송관리법 등 4개 법률을 통합하여 분산된 방송 관련 법체계를 단일화했다. 당시 방송법은 위성방송, 종합유선방송(케이블 TV) 등 신규 플랫폼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인터넷 기반 방송이나 OTT 같은 융합 서비스는 상상하지 못한 설계였다.


이후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8년간 방송법은 21회에 걸쳐 개정되었으나, 대부분 부분 개정에 그쳤고 전면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정 내용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규제 완화보다는 규제 강화를 위한 법률 개정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규제 유형별로는 내용 규제에 관한 법률 개정이 가장 많았고, 규제 완화는 소유 규제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1) 이는 방송법이 공영방송 보호나 디지털 전환 대응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시장 개방 압력에 따라 파편적으로 개정되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방송법이 OTT를 규율할 법적 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방송법은 '방송'을 "방송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으나(제2조 제1호), OTT는 이 정의에 명확히 포함되지 않는다. OTT는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되어 방송법이 아닌 전기통신사업법의 적용을 받았고, 그 결과 방송 사업자에게 부과되는 각종 의무에서 자유로웠다.


지상파·종편 방송사는 편성 규제(의무편성 비율, 국내 제작 비율 등), 광고 규제(시간·방식 제한),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 의무, 콘텐츠 심의 등 전방위적 규제를 받는 반면, 글로벌 OTT는 이러한 규제 대부분에서 자유로웠다. 이는 국내 사업자에게는 과중한 규제를, 글로벌 기업에게는 규제 회피 기회를 제공하는 이중 구조를 고착화시켰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초래했다.*2)


더욱이 정부 부처 간 권한 분산은 통합적 정책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는 지상파·종편·케이블 등 전통적 방송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통신망 정책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콘텐츠 제작 지원을 각각 관장하는 분산 구조가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글로벌 OTT 규제,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 의무화, 망 사용료 부과 등 핵심 이슈마다 부처 간 이견이 발생하고 정책 결정이 지연되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OTT 시장에서 Netflix와 같은 글로벌 서비스가 국내 서비스를 압도하고 있고 국내 사업자는 매출 대비 과도한 콘텐츠 투자로 적자 구조가 장기화되고 있으며, 2025년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대비 40% 감소했고, 콘텐츠 제작사의 매출 규모와 수익성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3) 법제도적 대응 실패가 산업 생태계 전반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3. 공영방송 KBS의 공공성 약화와 신뢰 상실의 이유


법제도 지체가 가장 치명적으로 작용한 곳은 공영방송 KBS다. 2024년 KBS는 사업 적자 881억 원, 당기순손실 735억 원을 기록하며 2023년 대비 각각 236억 원, 182억 원씩 적자 규모가 확대되었다.*4) KBS의 박장범 사장이 직접 "TV 수신료, 광고 등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콘텐츠 경쟁력 약세가 지속된 결과"라며 "KBS 소멸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KBS 수입의 49%를 차지하는 수신료 수입은 2024년 6,516억 원으로, 2020~2023년 6,800억~6,900억 원대를 유지하던 수준에서 6,500억 원대로 하락했다. 이는 2024년 7월부터 시행된 수신료 분리 고지·징수의 직접적 결과다. 전기요금과 결합하여 징수하던 기존 방식이 금지되면서 수신료 납부율이 하락하고 징수비용은 대폭 증가했다. 수신료 위탁징수비는 전년 462억 원에서 367억 원으로 줄었으나, 신설된 지로 납부 징수 수수료 243억 원을 합치면 총 징수비용은 전년보다 약 1.3배 증가했다.

광고 수입도 2024년 1,677억 원으로 전년 1,967억 원 대비 290억 원 급감했고, 콘텐츠판매수입은 3,472억 원으로 전년 3,780억 원 대비 308억 원 감소했다. 10) 정부보조금(대외방송 지원금)마저 2023년 119억 원에서 2024년 100억 원으로 줄었다. KBS는 수신료·광고·콘텐츠 수입이라는 삼박자가 동시에 무너지는 전방위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5)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KBS의 공적 책무가 법적으로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과정에서 한국방송공사법이 폐지되고 KBS 관련 규정이 방송법 제4장(제43조~제56조)으로 편입되면서, KBS는 독립된 법률적 근거를 상실했다.


이는 영국 BBC(Royal Charter), 일본 NHK(방송법), 독일 ARD/ZDF(미디어국가협약) 등 주요국 공영방송이 특별법 또는 협약을 통해 공적 책무와 재원을 명확히 보장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방송법 제43조는 KBS의 설립 목적을 "국민에게 건전하고 질 좋은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라고만 명시할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공적 책무의 내용),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지(이행 평가 기준),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수신료 책정 기준)에 대한 규정이 부재하다. 영국 BBC가 칙허장(Royal Charter)을 통해 공정성·정확성·공정성(impartiality)·독립성을 핵심 공적 책무로 명시하고*6), 프랑스 공영방송이 정부와 3~5년 단위 협약(Contrat d'Objectifs et de Moyens)을 체결하여 구체적 목표와 재원을 확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구조다.


이는 취약한 수신료 징수의 법적 근거로 이어진다. 현행 월 2,500원 수신료는 1981년 4월 책정된 이후 45년간 동결되어 왔다. 2023년 헌법재판소는 "수신료 결정 권한은 국회에 있다"라고 판결했으나, 국회는 여전히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1981년 2,500원은 2024년 기준 약 1만 8,000원에 해당하지만, 수신료는 그대로 동결되어 KBS의 실질 재정 기반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7)


2025년 8월 국회는 이른바 '방송 3 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KBS 이사회를 11명에서 15명으로 확대하고 국회 추천 비율을 높이는 등 지배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는 공적 책무 구체화, 협약제도 도입, 수신료 법정화 등 근본적 제도 개선을 포함하지 못한 한계를 갖는다.


공영방송 위기는 단순한 경영난이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영방송이 수행해야 할 공적 기능—공정한 뉴스, 다양한 관점, 소수자 보호, 재난방송, 문화 창달, 사회적 대화의 광장—의 약화를 의미한다. 영국 공영미디어연합(Public Media Alliance)의 해리 록 편집장은 "공영방송은 수익성이 아니라 사명에 의해 운영된다. 어떤 콘텐츠를 제작할지가 수익성보다 공적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며 "공영방송이 영영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을 가졌는지 깨닫지 못할까 두렵다"라고 경고한다.*8)


* 다음 편 예고 : 왜 한국의 미디어 관련법은 산업 발전과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으며 미디어 공공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영방송 KBS는 왜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 지 살펴 봅니다.



< 참고자료 >

*1) 이숙정, "방송법 개정 역사를 통해 살펴본 '방송정책 수단'의 변화와 함의 분석," 『방송통신연구』 제103호 (2018): 9-38.

*2) 1)과 같은 글

*3) 네이트뉴스, "[인더스트리 리포트] 국내 장악한 OTT…업계는 '규제 시급'," 2025년 6월 25일, https://news.nate.com/view/20250624n41388.

*4) 한국기자협회, "수신료 분리징수, 광고매출 급감… "KBS 소멸위기"," 2025년 3월 3일, https://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8003.

*5) 4)와 같은 글

*6)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의 공공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원구조 개선방안 연구," 2022년, https://www.kmcc.go.kr/download.do?fileSeq=58410.

*7) 국회입법조사처, "TV수신료 인상과 공영방송의 역할," 2014년 7월 23일, https://www.nars.go.kr/fileDownload2.do?doc_id=161736&fileName=.

*8) 시사IN, "공영방송의 위기, BBC는 무엇이 달랐나," 2024년,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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