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가른 밤이 지났다...

- 2025년 6월 4일 수요일 -

by 최용수

♡ 표토르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교향곡 제5번 마단조, Op.64 / Symphony No.5 in e minor, Op.64>


https://www.youtube.com/watch?v=c8xB73uYjf8


운명의 밤이 지나고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다시 찬란한 태양이 아침을 연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뭔가 새로운 희망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개표 결과를 보여주는 뉴스의 그래픽 지도에는 갈라진 표심만큼의 분열과 갈등의 경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 땅에는 '새로운 희망의 기운'보다 '치유와 화해'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 생각, 느낌... 유권자들이 지역(地役)과 세대(世代)와 성(性)이라는 공고한 진지에 갇혀 서로의 하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깊은 진지를 허물고 나와 서로의 지혜와 용기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 날은 언제쯤 올까...




오늘 아침에 이 곡을 고른 이유는 고통스러운 운명에 맞서 결국 자유와 해방, 그리고 승리의 기쁨을 얻게 된다는 차이콥스키의 '운명'교향곡과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4악장(Andante maestoso – Allegro vivace, E장조)은, 전체 교향곡을 관통하는 ‘운명'을 표현하는 동기가 장엄한 분위기로 바뀌며 시작되는데, 앞선 악장들에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반복되던 '운명' 주제가 드디어 웅장하고 희망적인 색깔로 재탄생한다. 이는 운명의 힘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이겠다는 차이콥스키의 용기와 도전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보다 이 차이콥스키의 '운명' 교향곡이 더 인간적이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 곡을 작곡할 무렵(1888년) 차이콥스키의 삶은 겉으로는 명성과 안정을 얻었지만, 내면적으로는 고독과 불안이 교차하고 있었다. 1877년 안토니나 밀류코바와의 비극적인 결혼이 파국으로 끝나고 그는 독신으로 지내고 있었고, 그나마 그의 옆을 지켜준 이는 여동생 알렉산드라와 그 자녀들이었다. 차이콥스키는 이들과 교류하며 조금씩 마음의 안식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이별, 가족과의 반복된 단절의 경험은 평생 그의 내면에 외로움과 불안을 깊게 새겨 놓았다.

사회적으로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쓸 당시 러시아 음악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1884년에는 황제 알렉산드르 3세로부터 세인트 블라디미르 훈장을 받았고, 공식적으로 귀족 작위와 연금(연 3,000루블)을 받으면서 제국의 대표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의 오페라와 교향곡, 발레 음악은 러시아의 공식 예술로 자리 잡았고, 유럽 각지에서 지휘자로 초청받으며 국제적 명성도 높아졌다.

경제적으로는 1878년 이후부터 나데즈다 폰 메크(Nadezhda von Meck) 백작부인의 후원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 폰 메크 부인의 월정 후원금과 황실 연금으로 차이콥스키는 생계 걱정 없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이 덕분에 그는 모스크바 근교의 프롤로프스코예(후에 클린)에서 자연과 함께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며, 러시아 음악의 발전과 후진 양성, 그리고 자기 작품의 완성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그는 여전히 불안과 우울, 창작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의 음악적 영감은 고갈된 것이 아닐까?”라는 자문을 반복했고, 자신의 예술적 생명력에 대한 불안이 컸다. 사회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로움과 자기 검열, 그리고 동성애적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 등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1888년, 차이콥스키는 오랜 유럽 순회연주를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와, 모스크바 근교 프롤로프스코예의 새 집에서 다시 삶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그의 마음은 설렘과 불안, 그리고 창작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10년 만에 다시 교향곡에 도전하게 된다. 5월부터 8월까지, 차이콥스키는 악상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해 고심하다가도, 어느 순간 영감이 몰려오면 밤낮없이 악보를 써내려갔다. 그렇게 힘든 여름을 넘기며 그가 편지에도 남긴 것처럼 “처음엔 정말 힘들었지만, 이제는 영감이 밀려온다” 며 마침내 곡을 완성한다. 그렇게 완성된 교향곡 5번은 1888년 11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직접 지휘하며 초연되었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에 대해 “운명 앞에 완전히 순응하는 심정, 신의 섭리에 대한 체념”이라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지만, 그의 그 신에 대한 체념같은 '운명'을 상징하는 주제부는 마지막 4악장에서 승리의 팡파르처럼 변주되며, 마침내 해방과 희망의 메시지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 앞서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연주로 4악장을 먼저 들어보았다면, 러시아적 감수성을 담은 명연주로 평가받는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전곡 감상에도 도전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xA50ayxecWI


♡ 유월


- 한 강


그러나 희망은 병균같았다

유채꽃 만발하던 뒤안길에는

빗발이 쓰러뜨린 풀잎, 풀잎들 몸

못 일으키고

얼얼한 것은 가슴만이 아니었다

발바닥만이 아니었다

밤새 앓아 정든 胃위 장도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걷게 했는가, 무엇이

내 발에 신을 신기고

등을 떠밀고

맥없이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웠는가 깨무는

혀끝을 감싸주었는가

비틀거리는 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아름다워라 山川, 빛나는

물살도 아니었다

무엇이 내 속에 앓고 있는가, 무엇이 끝끝내

떠나지 않는가 내 몸은

숙주이니, 병들 대로 병들면

떠나가려는가

발을 멈추면

휘청거려도 내 발 대지에 묶어줄

너, 홀씨 흔들리는 꽃들 있었다

거기 피어 있었다

살아라, 살아서

살아 있음을 말하라

나는 귀를 막았지만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귀로

막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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