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을 찾지 못하는 이에겐 내일의 행복도 없다!

- 2025년 8월 13일 수요일 -

by 최용수

♡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

<'윌리엄 텔' 서곡/William Tell - Overture>


https://www.youtube.com/watch?v=JcRuChk7Exo (서곡 중 '폭풍우')


사나운 빗소리에 잠이 깼다. 열린 창문으로 거친 빗방울이 들이치고 있어 창문을 닫으러 다가가자마자 '번쩍' 번개의 섬광이 비치더니 2초도 되지 않아 '콰르릉' 천둥소리. 유난히 길고 뜨거웠던 올해 여름 내내 이런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비는 처음인 듯싶다.

내 기억 속 어린 시절의 여름은 태양이 뜨겁게 대기를 데우기 시작하면, 맑았던 하늘은 이내 덩치를 키우며 가파르게 하늘을 오르는 뭉게구름으로 채워지고 얼마 되지 않아 솜사탕처럼 몽글몽글 이쁘던 구름이 거대한 회색 구름(적란운)으로 바뀌어 하늘을 덮어버리면 방금처럼 '번쩍, 콰과강' 하며 시원한 여름 소나기가 내리곤 했다.

그런데, 올여름은 유별스럽다. 아니 올여름뿐만이 아니라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다. 분명히 대기는 뜨겁고 습한데 시원한 소나기는 내리지 않는다. 강원도와 동해 연안은 올해 몇 년 새 가장 심한 가뭄에 고통받기도 했다던데. 게다가 이제 더위도 좀 누그러져 시원해진 아침부터 뜬금없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라니...

당최 종잡을 수가 없다. 과연 이 사나운 비가 지나고 나면 이제 뜨거운 여름과 정말 이별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은 갑작스러운 번개와 천둥소리가 반가워 모처럼 로시니의 '윌리엄 텔(스위스어로 '기욤 텔')' 서곡 중에서 천둥과 번개를 묘사하고 있는 '폭풍우' 부분을 듣고 있다. 오랜만에 듣고 있는데 마침 천둥소리와 딱 어울린다.

86세대들은 아마 이 곡을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였을까? 음악 교과서에서 배웠다. 명궁 윌리엄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화살을 쏘는 장면은 이미 TV 인형극이나 동화책에서 무수히 재현된, 전 세대를 아울러 인기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할 테지만, 좀 아쉬운 건 86세대 중에 '윌리엄 텔 서곡' 음악과 이 이야기를 연결 지어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 전쟁 이후 소위 '2차 베이비 부머'가 대부분인 86세대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 덕에 교육인프라는 너무 부족한 게 너무 많았고(도시와 지방의 격차는 더 컸다) 교육은 벽돌 찍어내듯 대부분 주입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옛날을 회상할 수 있을 정도로 나라는 부유해졌지만, 어째 우리 세대들에겐 여전히 마음의 여유는 많이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위생적인 생활환경 덕에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부모님 세대를 모셔야 하는 기간은 더 늘어났지만, 우리 세대와 달리 자식 세대들의 취업과 결혼시기 또한 많이 늦춰지면서 위아래로의 부양 의무가 고스란히 86세대들에게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참혹한 전쟁을 겪어야 했던 부모님 세대보다 우리가 더 불행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우리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자식세대들에게도 우리가 너희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고 말은 못 하겠다. 어떻든 우리 세대는 어느 인류 세대보다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왔으니...


역사의 어느 세대든 주어지는 시대의 부담은 크게 차이 나진 않을 것이다. 설사 불가항력의 천재지변과 인류의 1/3을 쓸어버린 전염병을 겪으며 살아남아야 했던 조상세대들조차도.(살아남았다는 점에서) 결국 나는 이 역사를, 이 시대를 사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현재 오늘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면서 스스로 행복한 시간들을 만들어가며 사는 수밖에 없다"고 믿게 되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음악에 몸을 훔찟훔찟 하면서...




이른 성공과 조기 은퇴,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작곡가 로시니


내 기억 속 클래식 음악 작곡가 중에 로시니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1792년 이탈리아 페사로의 음악가 집안에 태어난 로시니는 핏줄의 영향때문인지 일찍부터 작곡에 소질을 보였다. 14세에 볼로냐 음악원에 입학해 첼로와 피아노, 작곡을 배우며 작곡가로서의 기반을 다진 그는 고작 18세 때 첫 단막 희극 오페라 <결혼 보증서>(1810)를 써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탄크레디>(1813),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1813) 등의 작품들도 연이어 성공하며, 그가 오페라에서 즐겨 사용한 벨칸토 창법과 화려한 피날레는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그리고, 1816년 그의 나이 고작 24살 때 단 13일 만에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1816)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는 일약 유럽 전역의 스타 작곡가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후로도 <도둑까치>(1817), <신데렐라>(1817), <호수의 여인>(1819) 같은 인기작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높은 명성과 막대한 부를 쌓았다. 로시니의 오페라는 아름답고 우아한 아리아와 합창, 기교적인 선율과 세련되고 절제된 감정이 버무려진 음악으로 대중과 평단 모두로부터 사랑받았다. 하지만, 1820년대에 접어들며 로시니 오페라의 인기는 조금씩 시들해져 갔다. 오페라계가 격동의 전환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유럽 각지에서 로시니가 정착시킨 벨칸토 오페라는 여전히 인기를 끌었지만, 점점 더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 대규모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진 스펙터클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었다. 특히 당시 파리 오페라계는 이탈리아 오페라에게 빼앗긴 관객들을 되찾아오기 위해 바로 그런 스펙터클을 가진 '그랑(grand) 오페라'라는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이후 대중들은 오페라가 단순히 아름다운 음악과 세련된 이야기만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서사와 역사, 민족적 소재,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길 바랬다. 대중들의 이런 요구를 반영해 등장한 '그랑(grand) 오페라'는 웅장한 극적 구성과 화려한 시각적 연출, 대규모 합창과 무용, 특수효과까지 동원해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로시니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뛰어넘어 프랑스 오페라계를 평정할 마이어베어, 오베르 같은 작곡가가 등장한 것이다. 오페라는 이제 음악적 기교뿐 아니라 시대정신과 혁명, 거대한 감정의 무대이자 사회적 울림까지 담아내는 장르로 변모하고 있었다. 로시니 역시 이런 변화를 감지했고, 고전적 벨칸토 양식에서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며 1829년 <윌리엄 텔>이라는 자신의 마지막 야심작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던 것이다.


<윌리엄 텔>을 마지막으로 37살에 오페라계를 떠난 로시니


1829년 8월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윌리엄 텔>은 역시 오페라의 거장 로시니의 작품답게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며 극찬한 신문(Globe)의 평가처럼 오페라의 음악적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 로시니는 이전 그의 작품과 다르게 프랑스식 그랑 오페라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하였으며 관현악과 합창, 무대미술 등에서 그만의 스펙터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초연 당시 대중들은 예전의 로시니 작품과 달리 열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려 4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복잡한 드라마, 민족주의적 정서를 담은 진지한 주제 때문이었다. 결국 로시니는 초연 이후 일부 장면들을 축소·삭제해야만 했다. 1831년도에는 원래 4막의 오페라를 3막으로 개정해서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했고, 특히 성악가들은 벨칸토 창법으로 배역을 소화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오페라는 '일부분만 공연'되거나 '축약판' 형태로 무대에 올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로시니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고작 37세란 젊은 나이에 오페라계를 떠나게 된다. 더 이상 그가 추구해 온 벨칸토 창법을 자유롭게 소화할 가수도 찾기 힘들었고, <윌리엄 텔>같은 새로운 오페라 형식으로 과거와 같은 성공신화를 쓰기도 힘들다는 판단때문이었을 것이다. 은퇴 후 로시니는 파리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요리와 미식, 사교생활을 즐기며 작곡에서 멀어졌다. 비록 관객들의 요구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작품들을 더는 쓰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들은 오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중요한 작품들로 기록되어 있다.(사실 로시니처럼 이른 성공과 조기 은퇴를 하고서도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이 회자되고 무대에 그의 작품이 오른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축복같은 일인가?)


오페라 <윌리엄 텔>은?


윌리엄 텔의 주요 등장인물

윌리엄 텔(빌헬름 텔): 평범한 사냥꾼이지만 뛰어난 활 솜씨와 용기를 지닌 스위스의 국민 영웅이다. 개인의 자유와 가족애, 정의로운 리더로 그려진다.

발터 텔(아들): 텔의 아들로, 사과를 머리 위에 올리고 아버지에게 활을 맞는 시련을 겪으며,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믿는 순수한 인물이다.

헤르만 게슬러: 오스트리아의 폭압적 총독. 주민들에게 자신의 모자에 경의를 표하도록 강요하고, 텔과 그의 가족에게 시련을 안기는 억압의 상징이다.

멜크탈: 텔과 함께 저항하는 지주이자 마을의 원로. 도덕적 중심 역할을 담당한다.

아르놀드: 멜크탈의 아들로, 사랑과 민족적 탄압 사이에서 갈등하며 투쟁의 동참자가 된다.

에드비게(텔의 아내): 가족을 지키려는 따뜻한 인물로, 텔의 곁에서 힘이 되어 준다.

르외토르트 및 동료 농민들: 마을민으로, 합스부르크의 압제에 맞서 함께 싸우는 평범한 저항자들이다.


막별 줄거리 요약


1막
1307년 스위스의 한 마을은 오스트리아의 폭압에 시달리고 있다. 사냥꾼 윌리엄 텔은 가족과 더불어 자유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간다. 청년 아놀드는 오스트리아 귀족 마틸드와 사랑에 빠졌지만, 민족적 현실 앞에서 갈등한다. 목동 르외토르트가 딸을 구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병사를 죽이자, 텔은 그를 배에 태워 도망치게 한다. 곧 오스트리아 군대가 들이닥쳐 멜크탈을 체포하고 마을을 파괴한다.


2막
사냥터에서 아놀드와 마틸드가 사랑을 나누던 중, 아놀드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분노한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세 개의 칸톤 대표들이 모여 독립을 위한 연대를 선언한다. 텔은 저항군의 지도자로 뽑히고, 모두 함께 ‘뤼틀리 서약’을 하며 스위스 민족 해방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막
오스트리아 총독 겔슬러는 마을 광장에 자신의 모자를 걸어놓고 모든 스위스인이 절하게 강요한다. 텔이 이를 거부하자, 겔슬러는 그의 아들 예미의 머리 위 사과를 활로 쏘라고 명령한다. 텔은 정확하게 사과를 맞혀 아들을 구하지만, 주머니 속의 두 번째 화살이 발각되어 겔슬러를 겨눌 의도를 숨기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겔슬러는 텔과 예미를 체포하지만, 마틸드가 예미를 구해낸다.


4막
스위스인들은 텔을 구출하고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내기로 결의한다. 예미가 봉화 신호를 올리며 반란이 시작된다. 마틸드는 예미를 어머니 헤드비지에게 데려다 주고, 폭풍 속에서 탈출한 텔은 매복 끝에 겔슬러를 활로 저격해 쓰러뜨린다. 마침내 스위스 민중은 자유를 되찾고, 텔은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 앞서 폭풍우 부분만 먼저 들어보았다면 서곡 전체를 카라얀의 지휘와 베를린 필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c-ZZ2Z1AbzQ



♥ 폭풍


- 정호승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날으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 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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