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12일 화요일 -
♡ 쥘 (에밀 프레데리크) 마스네 (Jules Émile Frédéric Massenet, 1842~1912)
< 오페라『타이스』중 '명상곡' /'Meditation' from『Thaïs』>
■ https://www.youtube.com/watch?v=BKCnHnqgIAA
아침 산책을 위해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 순간 제법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싸더니 낯익은 귀뚜라미 소리가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짙은 녹색으로 익어가는 단풍잎들 너머에는 올여름 유난히도 뜨거웠던 태양의 열기를 고스란히 머금어 몸짓을 불리고 있는 대추들이 푸르게 푸르게 익어간다. 지금 저이들의 녹색이 깊어질수록 앞으로 한두 달 뒤 찾아올 가을은 아마 더 붉어질 것이다.
아이들 방학이 한참 때라 가족들이 함께 휴가를 떠나서인지 요즘 우리 아파트 아침은 사람소리, 차소리 대신 참새 소리, 매미 소리, 직박구리 소리, 비둘기 소리 같은, 평소에는 애써 들으려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던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자연의 소리들로 채워진다.
새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던 나의 이기적 감각과 욕망을 반성한다. 인공적인 소리들 대신 자연의 소리를 만끽하며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어볼까 하며 오늘의 클래식 약사(略史)를 뒤져보는데, 1912년 8월 13일 내일은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가 70세 일기를 끝으로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마친 날이라고 한다. 미리 찾아보고 산책길을 나섰더라면 그가 이 세상에 남긴 가장 아름다운 선물, 오페라『타이스』에 나오는 이 명상곡을 들으며 걸었을 것이다.
이 곡은 쥘 마스네가 작곡한 3막의 서정적 오페라『타이스(Thaïs)』의 2막 1장과 2장 사이에 연주되는 간주곡으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 덕분에 이 곡만 따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아 원래 오페라의 간주곡이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오페라 간주곡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이 곡의 원래 악기 편성은 오케스트라+솔로 바이올린+합창으로 되어 있다. 아래에 오페라 줄거리 소개에서 나오지만 2막의 1장과 2장 사이 여자 주인공 타이스가 영적 선택을 앞두고 묵상과 회심을 하는 순간에 연주되는 곡이다. 현대에 들어서 바이올린과 피아노 반주로 훨씬 더 많이 연주되는데, 그것은 바이올린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의 깊이와 울림이 이 곡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오케스트라 반주를 피아노 반주로도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곡은 발표되자마자 바이올린·피아노용 편곡이 출판되어 전문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연주되었다. 곡의 아름다운 선율과 빼어난 감성 때문에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앙코르나 리사이틀, 결혼식·예술무대 등에서 즐겨 연주해 온 터라 우리에게도 익숙한 곡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다양한 악기의 편곡버전이 나오고 있는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대신한 하프, 바이올린을 대신한 비올라와 피아노, 비올라와 하프, 플루트와 피아노, 플루트와 하프 등 섬세하고 서정적이면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주제선율을 연주하는 독주악기와 이를 포근하게 감싸는 반주악기의 폭이 생각보다 넓다.
쥘 마스네는 오페라 『파우스트』로 유명한 샤를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와 함께 19세기 프랑스 오페라의 스타일을 완성한 인물로 당시 프랑스 오페라계를 주도하고 있던 이탈리아와 독일 출신의 유명한 작곡가들(로시니, 도니체티, 마이어베어 등)로부터 프랑스 오페라의 존재감을 지켜 낸 뛰어난 작곡가다.
프랑스 동중부 루아르 지방의 작은 마을 몽타우(Montaud)에서 태어난 마스네는 피아노를 가르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피아노의 기초를 탄탄히 다졌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 재능 또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1851년 마스테가 11살 때 가족들은 파리로 이주해 그를 파리음악원에 입학시켰다. 마스네는 당시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앙브루아즈 토마(Ambroise Thomas, 1811-1896)를 사사하며 그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나갔다. 1863년 칸타타 <다비드 리초(David Rizzio)>로 로마대상(Prix de Rome, 파리예술원에서 매년 콩쿠르 1위 입상자에게 주는 상)을 수상하고, 이때 받은 상금으로 이탈리아와 독일, 헝가리로 음악여행을 떠나게 된다. 당시 여행 중 받은 영감으로 <나폴리의 풍경, Scenes napolitaines>(1864)과 <헝가리의 풍경, Scenes hongroises>(1871) 등의 작품을 남기고, 로마에 머물 무렵에는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였던 생트 마리를 만나 평생의 반려가 되었다.
1867년 마스네는 1막의 오라토리오 <대고모>(La grand'tante, 1867)로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1873년 오라토리오 <마리아 막달레나>(Marie-Magdeleine)의 성공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로 자리 잡게 된다. 1878년 36세의 나이에 샤를 구노(1818-1893)의 뒤를 이어 파리 음악원의 작곡가 교수로 재직하며 오페라 『마농』(1884년), 『베르베르』(1892), 『타이스』(1894) 등 프랑스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오페라『타이스』는 프랑스의 문호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1924)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루이 갈레(Louis Gallet)가 대본을 맡은 3막의 오페라로 4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타이스(Thaïs): 알렉산드리아 사교계를 대표하는 관능적인 코르티잔(교양과 미모를 겸비한 매혹적인 여성이지만 몸을 파는 고급창녀로 번역됨)
아타나엘(Athanaël): 금욕과 영적 구원을 추구하는 이집트의 수도사
니키아스(Nicias): 타이스의 옛 애인, 알렉산드리아의 귀족
팔리데(Pallide): 타이스의 친구 및 주변 인물
알브라인느(Albine): 수녀원 지도자
▶ 제1막 - 알렉산드리아의 방탕한 사교계
수도사 아타나엘은 알렉산드라의 방탕한 사교계를 대표하는 매력적인 여성 타이스를 구원해 주기로 결심한다. 니키아스의 저택에서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타이스는 여전히 화려한 알렉산드리아의 사교계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환락에 빠져 살고 있다. 아타나엘은 타이스를 찾아가 영원한 구원의 세계를 그녀에게 설파하며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권유한다.
▶ 제2막 - 아타나엘의 권유에 흔들리는 타이스
타이스는 아타나엘의 자신에 대한 헌신적인 구원 노력에 마침내 자신의 삶에 회의하며, 아타나엘의 설득에 흔들린다. 유명한 ‘명상곡’이 이 막 전환부에 흐른다. 그녀는 결국 화려한 사교계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아타나엘과 함께 사막의 수도원으로 간다.
▶ 제3막 - 구원과 비극
타이스는 수녀원에서 진심으로 신에게 구원을 청하며 헌신적인 수도생활을 이어가지만 점차 몸이 쇠약해진다. 아타나엘은 타이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뒤늦게 사랑임을 깨닫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타이스는 죽음과 함께 신의 품에 안긴다. 아타나엘이 절망하며 오페라가 막을 내린다.
마스네가 활약하던 19세기 후반 프랑스 오페라계는 이탈리아와 독일 중심의 오페라에서 벗어난 프랑스 오페라들이 약진하면서 다채로운 흐름이 공존하고 있었다. 마스네 본인의 대표작만 보아도 《마농(Manon, 1884)》, 《르 시드(Le Cid, 1885)》, 《베르테르(Werther, 1892)》 등 다양한 심리극·서정극을 발표하며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고, 또한 비제의《카르멘》, 생상스의《삼손과 델릴라》, 구노의《파우스트》, 외젠 달리베의《라크메》 같은 정열적이거나 오리엔탈리즘 색채가 강한 오페라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또한 1890년대는 가브리엘 포레와 모리스 라벨 등의 인상주의 작곡가들이 서서히 프랑스만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던 시기였다. 바로 이 무렵에 활동한 마스네는 서정적이면서도 극적 긴장감이 강한, ‘프랑스 고유의 색채와 인간 내면 탐구를 결합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였다.
1894년에 발표된 오페라『타이스』는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관능과 금욕, 신앙과 구원, 그리고 허무로 귀결되는 사랑"을 통해 19세기말 프랑스와 유럽 오페라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오페라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 관능의 여신이었던 타이스가 점차 아타나엘에 감화되어 가며 향락의 삶과 신앙의 삶에서 갈등하는 장면에서 연주되는 ‘명상곡(Méditation)'곡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관능적인 하모니(독주악기의 번민하는 주제선율을 포근하게 감싸는 반주부)로 마스네의 빼어난 음악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바이올린의 고뇌하는 듯한 매혹적인 선율을 하프의 아름다운 분산화음이 안아주면 다시 웅장하게 또는 포근하게 오케스트라가 받아주는 원곡 편성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감상, 먼저 이 곡의 가장 유명한 녹음을 많이 남긴 안네 소피무터의 바이올린과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니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lnDc9n1V0FE
■ 주제선율을 현이 아닌 감미로운 플루트를 연주하는 버전을 세계적인 클래식 플루티스트 장 피에르 랑팔과 후타바 이노우의 피아노 연주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fbm01V_5QUM
♥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 이채
한 줄기 바람도 없이
걸어가는 나그네가 어디 있으랴
한 방울 눈물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여름 소나기처럼
인생에도 소나기가 있고
태풍이 불고 해일이 일 듯
삶에도 그런 날이 있겠지만
인생이 짧든 길든
하늘은 다시 푸르고
구름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여,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물소리에서
흘러간 세월이 느껴지고
바람소리에서
삶의 고뇌가 묻어나는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녹음처럼 그 깊어감이 아름답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