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8일 금요일 -
♡ 클로드 볼링(Claude Bolling, 1930~2020)
<플루트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Trio>
■ https://www.youtube.com/watch?v=cq74JQ1Q9uw (1곡 'Baroque and Blue')
어제는 입추(立秋)였고, 내일은 말복(末伏)이다. 이제 이 고통스러운 더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입추(立秋)는 태양을 도는 지구의 궤적을 따라 정해지는 24 절기 중 하나로 양력을 따른다는 걸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양력으로 하지(夏至)와 동지(冬至)가 각각 6월 21일과 22일, 12월 21일과 22일 중 하루이듯이 입추(立秋)는 대략 8월 7일 또는 8일 중 하루로 올해는 8월 7일 어제가 입추였다.(하루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주기가 365.2422일(365일 5시간 49분)이기 때문에 4년에 한 번씩 보정을 하기 때문이다.)
24 절기가 한자로 달력에 표기되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아마도 24 절기를 음력이나 다른 기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삼복(三伏)의 날짜 때문인 듯하다.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의 삼복(三伏)은 양력을 따르는 24 절기에 포함되지 않고 따로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60 간지를 따라 정해지기(하지(夏至) 이후 가을을 상징하는 '경일(庚日)'이 배치되는 날짜에 따라 결정) 때문에 해마다 다르다.
좀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한 산수(算數)만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하늘의 기운을 오행의 순서에 따라 10개로 나누면 '갑(甲)/을(乙)'-목(木), 봄을 상징하며 방향은 동(東) 쪽 색깔로는 청(靑) 색, '병(丙)/정(丁)'- 화(火), 여름을 상징하며 방향은 남(南) 쪽 색깔로는 붉은(赤) 색, '무(戊)/기(己)'-토(土), 중앙(中央)을 상징하며 색깔은 노란(黃) 색, '경(庚)/신(辛)'- 금(金), 가을을 상징하며 방향은 서(西) 쪽 색깔로는 흰(白) 색, 임(壬)/계(癸)-수(水), 겨울을 상징하며 방향은 북(北) 쪽 색깔로는 검은(黑) 색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리가 '황금돼지띠', '백말 띠' 하는 것들도 다 60 간지(干支)와 관련이 있는데, '황금돼지'는 천간과 지지로 풀면 가운데를 뜻하며 노란색을 상징하는 '무(戊)/기(己)'와 12 지지(地支, 천간의 영향을 받아 변하는 땅의 12가지 기운으로 자(子)-쥐/축(丑)-소/인(寅)-호랑이/묘(卯)-토끼/진(辰)-용/사(巳)-뱀/오(午)-말/미(未)-양/신(申)-원숭이/유(酉)-닭/술(戌)-개/해(亥)-돼지와 같이 각각 상징동물들이 있음)의 12가지 동물 중 돼지를 뜻하는 '해(亥)'의 조합으로 '무해(戊亥)년', '기해(己亥)년'이 황금돼지띠가 된다.(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같은 노란색을 뜻하는 '무(戊)/기(己)'라도 앞의 '무(戊)'는 양(陽) '기(己)'는 음(陰)이라 성질은 좀 다르다.)
조금 응용해 보면 '청말 띠'는 갑오(甲午)년 또는 을오(乙午)년, '붉은 원숭이 띠'는 병신(丙申)년 또는 정신(丁申)년임을 알 수 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하지가 지나고 가을의 기운을 뜻하는 '경(庚)'의 천간을 가진 3번째 날(천간은 10개라 '경(庚) 일'은 10일마다 온다)이 초복(初伏)이 된다. 중복은 열흘 뒤인 그다음 '경(庚) 일'이 되고, 마지막 말복은 입추가 지난 첫 번째 '경(庚) 일'이 된다. 그러니까 복날 날짜는 절기(태양력)로 ‘기준점’을 잡고, 전통 60 갑자의 ‘순번’을 따라 정해서 매년 달라지고, 이것이 ‘양력과 음력(간지)’이 뒤섞여 계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날은 공식적으로는 음력도, 양력도 아닌 셈이다.(올해 말복은 입추 다음으로 오는 경일이 내일이지만, 작년에는 입추 다음으로 오는 경일이 5일이 밀려 8월 14일이었다.)
아침부터 왜 갑자기 절기와 복날 이야긴가 싶으실 텐데, 아침 일찍 태백에 계신 어머니께서 복날이니 닭이라도 고아 먹으라는 전화를 해주시는 바람에 예전에 명리학 책을 보며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복날('복날'의 복(伏)은 가을의 기운이 뜨거운 여름의 기운에 엎드린 모양이다.)은 자연의 기운이 바뀌는 시기에 맞춰 체력을 보충하고 병을 예방하라는 조상님들의 현명한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니 남은 한 주 잘들 정리하시면서 원기회복하시길...
오늘 아침은 창문으로 밀려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음악을 골라보았다. 끌로드 볼링의 클래식과 재즈의, 이 환상적인 조합이라니...
'현대 클래식 음악'은 상반된 개념들을 가진 단어들의 조합으로 그 부조화성 때문에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클로드 볼링의 '플루트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은 이 부자연스러운 조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음악이다. 플루트와 피아노의 선율이 바로크 시대의 구조와 규칙을 따르는 듯 흐르다가 갑작스레 화음과 리듬이 재즈의 즉흥적인 변주와 스윙으로 바뀌고 다시 재즈의 스윙 리듬을 낭만주의적 선율이 잡아채 연주하는, 마치 전(全) 시대의 음악들이 묘하게 뒤섞여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심미적 공감 영역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을 작곡한 클로드 볼링은 프랑스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지휘자, 심지어 배우로도 활동했던 다재다능한 음악가였다. 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지만 14살 때부터 이미 뛰어난 재즈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며 재즈음악의 신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0대 때 이미 Fats Waller, Earl Hines, Duke Ellington 등 재즈 거장들의 음악을 들으며 심취했다고 역시 '타고난 재능'이란 게 있는 모양이긴 하다. 16살 때 첫 밴드를 만들고, 18살에는 첫 녹음을 했으며, 1945년 파리에서 열린 Jazz Hot과 Hot Club de France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파리 재즈음악계에 될 성 부른 나무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이후 볼링은 1950~60년대 유럽 전통 재즈 신( ‘신(씬, scene)’은 특정 예술 장르에 속한 음악가, 관객, 공연장, 클럽, 평론가 집단 등 하나의 음악적 생태계나 커뮤니티를 뜻하는 용어)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프랑스의 대표적 재즈 밴드 리더로 성장하게 된다. 1956년 자신의 빅밴드를 창단해 수십 년간 이끌었으며, 미국과 유럽의 유명 재즈 뮤지션과 활발한 협연활동을 펼쳤다. 아울러 그는 100편이 넘는 영화와 TV 음악을 작곡하며 프랑스 대중음악과 영화음악에도 큰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는 클래식 연주자와의 협업하며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 대표작이 오늘 소개하는《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Trio》(플루트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이다. 그는 클래식과 재즈가 만나는 새로운 흐름의 중심에 있었고, 기타, 바이올린, 첼로 등 다양한 클래식 악기 연주자와도 협업하며 클래식 음악 장르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킨 프랑스 재즈의 거장이자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혁신가였다.
이 곡은 1973년 클래식 플루티스트 장-피에르 랑팔(Jean-Pierre Rampal)을 위해 그에 대한 존경을 담아 볼링이 작곡한 작품이다. 당시 유럽과 미국 음악계는 장르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며, 크로스오버와 퓨전 사조가 두드러지던 시기였는데, 재즈는 이미 대중적 장르로 자리 잡았고, 클래식 음악계도 새로운 청중 유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때였다. 볼링은 평소 다양한 음악을 흡수해 왔기에,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클래식과 재즈의 결합이라는 실험을 자연스럽게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볼링은 스스로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락(Rock)이나 바로크 음악을 했을 것”이라 말할 만큼 다양한 스타일에 개방적이었고, 동료와 청중들에게도 열린 자세로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이 곡을 쓸 당시 볼링은 이미 프랑스 재즈계의 중심인물이자 빅밴드 리더로서 단순히 실험적이거나 이론에 치우친 음악보다는 음악을 즐기는 그 자체의 진지함과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생각은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장 피에르 랑팔과의 만남을 통해《플루트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이라는 명곡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된다.
두 사람의 인연은 TV 프로그램에서 볼링이 작곡한 “Sonata for Two Pianists”를 듣게 된 랑팔이 클래식 플루트와 재즈 피아노의 대화를 시도해보고 싶다며 볼링에게 연락해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니스 국립 여름음악 아카데미에서 함께 강의하며 음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가까워지게 된다. 서로의 예술세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진심 어린 우정은 마침내 1973년 명작 《플루트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Trio)》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었다. 랑팔은 볼링의 재즈적 감각을 신뢰하며 클래식 연주자 특유의 섬세함을 보여주었고, 볼링은 랑팔이 ‘재즈 게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다.
이 곡은 1975년 공식으로 발매되는데, 발매되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국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무려 530주(약 10년) 동안 머무른 대기록을 세웠고, 앨범은 각국에서 히트하며 클래식과 재즈 양쪽 청중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평단에서도 “장르 경계를 허문 혁신”, “새로운 스타일의 가능성” 이라며 격찬했고, 이후 볼링과 랑팔은 카네기홀 등 세계 무대에 초청되어 공연하며 그 인기를 입증했다.
앞서 소개한 첫 번째 곡 'Baroque and Blue'는 바로크적 우아함과 재즈의 자유로운 스윙이 절묘하게 섞인 크로스오버적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인데, 고전적인 A-B-A 형식을 따라 주선율(플루트)이 바로크풍(주로 G장조)으로 시작한 뒤 블루스의 감성을 살짝 가미해 전개되다 중간에 단조로 전조 했다가 마지막에 원래 조로 돌아온다. 플루트의 고전적 아름다움과 재즈 피아노·베이스·드럼의 리드미컬한 연주가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두 장르의 색채가 한 곡에서 아름다운 공존을 보여준다.
이 곡을 포함하여 이 모음곡은 모두 7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번째 곡과 함께 두 번째 곡 'Sentimentale(감성적인)'과 다섯 번째 곡 'Irlandaise(아일랜드 여인)'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 '1번 바로크와 재즈(Baroque and Blue)' 는 KBS 클래식 FM 프로그램의 타이틀로 쓰이기도 해서 우리에겐 많이 익숙한 곡이다. 전체 곡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 Baroque and Blue(바로크와 재즈)
2.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 Sentimentale(감성적인)
3.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 Javanaise(자바 사람)
4.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 Fugace(덧없는)
5.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 Irlandaise(아일랜드 여인)
6.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 Versatile(다재다능한)
7.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 Voce(목소리)
■ 가장 유명하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Irlandaise(아일랜드 여인)'을 플루티스트 최나경의 연주로 먼저 들어보고
- https://www.youtube.com/watch?v=VDeR0TA8gZ4
■ 그다음으로는 역시 TV 광고에 자주 쓰여 익숙한 Sentimentale(감성적인)'을 장 피에르 랑팔의 실황연주로 들어보고,
- https://www.youtube.com/watch?v=1acIStlA1sQ
■ 마지막으로 1975년 발매된 공식 음반 버전으로 전 곡을 감상해 보자(곡별 진행시간은 채널 아래 더보기에서) - https://www.youtube.com/watch?v=cq74JQ1Q9uw
♡ 한여름의 입추
- 정연복
찜통더위
여전히 한창인데
도둑같이
찾아온 입추(立秋).
여름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까스로 마련되는
가을의 거점.
여름의 끝
아직 저만치 있어도
가을 또한
첫발을 내디뎠으니.
익을 대로 푹
익어버린 한여름 속에
머잖아 아기같이
가을은 생겨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