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14일 -
♡ 안익태 (Ahn Eak-tai, 1906~1965)
< 한국 환상곡/ Symphonic Fantasy Korea >
■ https://youtu.be/v8SrxqTQyQw?si=Z4Ccqlyppoei6DY_(연주는 41초 정도부터 시작된다)
내일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주말과 공휴일은 브런치스토리를 발간하지 않아서 오늘은 조금 느즈막히 이 글을 쓰고 있다.
'광복(光復)'은 '光(빛 광)', '復(회복할 복)'자가 합쳐진 단어로 '빛을 되찾는다' 즉 "옛 국가의 영예와 주권을 다시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원을 찾아보니 중국 원나라 말기, 원조(元朝)가 쇠망해가고 있을 때 원조의 후손들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제국의 번영을 되살린다는 뜻으로 원나라 역사서인 『원사(元史)』에 '광복조종지업(光復祖宗之業)'이라 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사(元史)』이후 '국권을 잃었거나, 멸망한 왕조의 후예가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노력'을 표현할 때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근대 이후 쇠락한 옛 '왕조(王朝)'의 영광을 다시 찾는다는 의미보다는 빼앗긴 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는 의미로 확장되어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과 같이 독립운동단체 등에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광복(光復)'은 '구속이나 억압, 부담 등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해방(解放)'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힘과 주체적 노력으로 치욕적 식민 통치(암흑)에서 벗어났다는 민족의 자존심과 영예 회복의 의미가 좀 더 크게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날을 기념하여 사용하고 있는 '광복절(光復節)'이란 명칭은 1945년이 아니라 1949년에 정해졌다. 해방 직후에는 그냥 '8·15', '해방기념일', '독립기념일' 등으로 불리다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된 이후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국회에서 처음 제안된 명칭은 ‘독립기념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독립에 대한 우리의 자주적 노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광복절’로 결정되었다.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공포되면서 비로소 8월 15일을 ‘광복절’로 부르게 되었단다.
오늘은 광복절을 앞두고 어떤 곡을 선곡할까 정말 고민이 많았다. 마지막까지 독립과 해방의 의미를 담은 유명한 클래식 작품으로 바꿀까 망설였는데 결국 '한국 환상곡'을 소개하게 된 이유는 세상의 어떤 진실도 다 선(善)한 얼굴만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애국가(愛國歌)의 원곡으로 알려져 있는 '한국 환상곡'은 2006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에 중심에 섰던 작품이다. 그 시작은 독일에서 음악학을 공부하던 유학생 송병욱씨가 독일의 한 기록원에서 발견한 '1942년 베를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연주회' 기록 영상이었다. 그는 이를 한 모임에서 발표하였고, 이 발표 내용은 곧바로 한국에도 알려졌다.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애국가 작곡자의 친일·친나치 부역”이라며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쟁점화하였고, 국내 언론들이 앞다퉈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안익태를 공식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하여 역사적 책임 규명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후 2010년대 이해영 교수 등 한국 음악사·근대사 연구자들에 의해 나치 독일 시절 안익태의 구체적 활동과 기록을 추가로 발굴되면서 안익태는 존경받는 애국가의 작곡자에서 한순간에 친일 반역자가 되었다. 이에 따라 예술계, 교육계, 그리고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현행 애국가의 국가적 상징성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국가(國歌)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아리랑” 등 기존 민요를 국가로 채택하자는 논의에서부터, 애국가 가사와 선율을 일부 수정하자는 제안 등이 학계와 시민단체, 일부 정치권에서 활발히 제기되었다.
애국가 교체라는 초유에 사태에 대해 국민들의 여론은 들끓었고, 결국 이에 대한 여론조사가 이뤄졌다. 여론조사결과 현행 애국가는 60년 넘게 문화적 관습으로 받아들여왔고, 대내외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애국가를 바꿀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결국 국회에서 국가(國歌)의 법제화나 공식 교체 논의도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그동안 별 생각없이 듣고 부르던 '애국가(愛國歌)'에 대해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현재의 '애국가(愛國歌)'는 공식적인 법률이나 규칙을 통해 국가(國歌)로써 지정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부터 국민의례 등에서 '국가'로 연주되며 관습적으로 대한민국 국가로 인정받아 왔다. 그렇게 애국가는 수 십년 동안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걸고 진행된 수많은 국내외 공식 행사에서 국가적 정체성의 상징으로,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대회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감정적 원천으로써 기능해왔던 것이다.
여론조사 이후 ‘애국가 논란’은 역사와 예술의 관계, 예술의 사회적 통합과 기억의 문제,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 문제 등으로 논점이 넓어지고 고민은 더 깊어져가고 있다.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은 분명히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며 공적 문화유산의 창작자에 대한 비판적 검증은 사회적 성숙의 징표라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창작자의 윤리적 책임을 물을 기회조차 없이 애국가는 이미 수십 년간 국민 통합과 기억의 상징으로 기능해왔다는 점에서 애국가를 창작자의 윤리적 문제와 등치시켜 그 존재적 가치를 무위화하기는 어렵게되었다는 점이다.
수많은 평론가들은 예술 작품의 심미적 가치와 작가의 도덕성을 등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는 역사성을 얻은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애국가를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애국가를 둘러싼 논란과 사실들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면서 이 문제를 더욱 깊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집단기억 속에 남아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반추하여 경계와 반성의 계기로 삼게 만드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애국가 교체 논란이 이어지고 있을 무렵 '아리랑 환타지'란 곡이 국내에 소개되어 큰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이 곡은 1976년 북한의 현대음악 작곡가 최성환이 작곡한 곡이다. 2008년 로린 마첼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을 방문해 연주하면서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 곡이다. 국내 방송사에서도 이 연주실황을 방송으로 소개하기도 했는데, 당시는 2007년 대한민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4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던 때였다. 한국전쟁이후 처음 군사분계선을 넘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은 전 세계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전세계는 소비에트(구 수련)의 붕괴 이후에도 여전히 한반도를 옥죄고 있는 냉전구도가 이번에는 정말 깨질 수 있을지 주목했다. 미국과 북한은 북미 핵협상(특히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면서 어느 때보다 남북의 통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던 무렵이었다.
당시 '아리랑'은 남과 북이 만약 통일이 된다면 두 나라의 기존 국가를 대체할 가장 유력한 '통일 한국의 국가(國歌)'의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다.(실제 2019년 무렵 아리랑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입힌 녹음도 시범적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 참고로 2008년 로린 마첼의 뉴욕 필 하모익 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 당시 연주된 '아리랑 환상곡'을 들어보길 권한다. 아쉽게도 이 곡을 작곡한 북한의 작곡가 최성환은 1981년 45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 https://youtu.be/ApPgwJdahDU?si=VUINomM2ND16hXRs (연주는 27초부터)
이 감동적인 연주회 이후 다시 17년이 지났다. 그사이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그리고 이재명 정부까지 무려 5번의 정권교체가 있었고, 이 새로운 애국가('아리랑' 선율의 국가)에 대한 기대는 복잡한 국제정세 와 더불어 해묵은 이념 논쟁으로 우리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예술 작품의 가장 큰 미덕(美德)은 기존 세계의 한계(限界)를 넘어 인간의 사유와 감각의 지평(地平)을 넓혀주는 것이다. 익숙한 듯 보이는데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그 속에 깜짝 놀란 반전을 담고 있는, 무심하게 보여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는데 우연히 보거나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을 주는 작품. 오래도록 보고 듣는데도 내 감각과 의식이 성장하는 만큼 그 경계도 계속 확장되어 도무지 그 경계의 끝을 알기 힘든 작품. 아예 처음 본 순간부터 내가 감각하고 지각하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결의 존재감으로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들...
바흐의 헨델의 바로크 음악과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고전주의 음악들은 내가 어떤 감정 상태에서 듣더라도 조금 듣고 있으면 내 마음에 평온을 안겨주는데, 그 똑같은 경험을 잭슨 폴락의 추상화에서도 느껴보았고, 우리 정통국악의 '수제천(壽齊天)'을 들을 때도 느껴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건 아마도 오랜시간 동안 시공을 초월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훌륭한 예술작품들은, 찰나의 순간도 머물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의 감각과 지각을 붙잡아, 감각과 지각 너머의(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는) 우주의 리듬과 질서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기 시작할 때 누군가가 그랬다. 임윤찬의 음악은 예술자체에 대한 존중을 담고 있다고. 작곡자와 연주자가 악보 안에 담긴 예술의 본질 그자체로 소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작곡가 안익태는 잠시 잊고 그가 '한국 환상곡'에 담으려고 했던 이야기들에 주목해보자는 의미에서 한국전쟁이후 개정된 '한국 환상곡'의 구성과 내용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이 긴 글을 끝내고자 한다.
* 이 작품은 1936년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직접 작곡한 애국가의 멜로디에 교향곡 기법을 더해 완성하였다. 1938년 더블린에서 안익태 지휘로 초연되었는데, 28분으로 개정된 최신판은 6·25 한국전쟁과 미군정 이후의 상황이 내용에 포함되어있다. 모두 4개의 부로 구성되어있다.
제 1부
: 웅대한 관현악의 울림이 국운의 서막을 알린다. 고조선의 기상을 상기시키며, 전통 민요와 타령조가 어우러진다.(도라지 타령) 평화와 순박함, 농부들의 춤사위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제 2부
: 시작부터 일제의 침략을 거칠게 묘사하다 이후 일제 강점 하의 질곡과 슬픔이 낮고 엄침한 선율로 묘사된다. 투쟁과 진혼, 민족의 한이 음악 속에 스며든다.
제 3부
: 광복의 환희를 표현하는 부분다. 애국가 합창이 네 절에 걸쳐 장대하게 울리고, 각 절마다 다른 조와 분위기로 감격을 더욱 고조시킨다.
제 4부
: 한반도를 다시 찾아 온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의 비애가 펼쳐진다. 음악은 전통 아악의 정취와 함께, 온 민족이 염원하는 새로운 평화를 노래가 울려퍼진다.
코다
: 대합창으로 '만세'가 울려펴지며 ‘애국가’의 주제가 밝고 힘찬 분위기게 울려퍼지며 마무리된다.
■ 유튜브에서 한국 전쟁이후를 다루고 있는 편곡 버전을 겨우 찾았는데, 2014년 김홍재의 지휘와 울산 필하모닉의 연주로 감상해보자.
- https://youtu.be/ttigjnTo97Y?si=akqmETrz4rRe0XkK
♥ 대한광복 60주년에
- 임영석
나는 대한 독립이라 말하지 않겠다
그냥 대한광복이라 말하겠다
친일행위자가 버젓하게 사는 나라에
부끄럽게 대한독립을 어찌 외치겠는가
독립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독립은 부끄러움을 반성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대한광복이라 말 하겠다
광복은 이 땅의 평화다
꽃봉우리에 바람이 들어야
꽃향기가 퍼지 듯
광복을 했을 뿐이다
아직도 우리는
과거를 독립시키지 못했다
親日, 親러, 親美者가 없이
大韓 愛國者가 사는 나라
大韓獨立을 이루어야 한다
월남 이상재 선생과도 같이
단채 신채호 선생과도 같이
의사 안중근과도 같이
열사 유관순과도 같이
대한독립을 외쳐야 한다
그 정신만이 광복에서 독립으로
대한독립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