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18일 월요일 -
♡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1678~1741)
< '글로리아' D장조 RV 589 / 'Gloria' in D major, RV 589>
■ https://www.youtube.com/watch?v=1O3D6igrW9A
'기억'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발전시켜 온 가장 강력한 능력 중 하나일 것이다. 맹수에 쫓겨 위험했던 상황이나 먹잇감을 얻지 못해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때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면 유사한 상황에서 더 높은 확률로 생존에 유리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류는 말과 문자를 통해 '기억'을 후세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내었고 그 덕분에 인류는 오늘날 찬란한 과학기술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기억이 모두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을 물려받을 후대가 끊겨버리거나 말과 문자에 기록되지 못해 사라진 문명이나 이야기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결국 개인의 기억이든 집단의 기억이든 '기억'은 누군가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라도 '살아남아야만' 그 의미를 가진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다. 다행히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받았던 36년 식민지 시절의 비참한 기억보다 자주독립에 대한 선조들의 뜨거운 열망과 신념, 그리고 처절했던 투쟁의 기억이 더 강고하게 살아남아 오늘 더 자랑스럽게 광복 8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상을 집약한 이 한 문장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지금껏 건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한 세대의 고통스러운 역사로는 다 헤아릴 수도 없는, 수 천년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지켜낸 영광스러운 민족의 역사를 결코 우리는 잊지 않았다는 것. 기억은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부단히 윤색되고 더러 왜곡되기도 하지만, 그 기억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잊지 않았던 위대한 선조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를 기억할 후세들이 결코 오늘의 영광만이 아니라 그 영광 뒤에 가려진 고통과 인고의 역사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진실된 역사를 남겨야 할 책임을 느끼게 되는 아침이다.
광복절 80주년은 지났지만, 오늘은 비발디의 『글로리아 D장조』를 들으며 또다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글로리아 D장조』 RV 589는 그가 작곡한 두 개의 글로리아 중 오늘날 가장 널리 연주되는 작품이다. 같은 D장조의 RV 588의 글로리아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연주빈도와 명성에서는 RV 589가 압도적이다. 이 곡은 비발디가 약 1716년 무렵 베네치아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 음악원에서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글로리아 D장조』 RV 589는 가톨릭 미사 통상문 중 ‘영광송(Gloria in excelsis Deo)’을 가사로 한 ‘미사 콘체르탄테(missa concertante)’ 형식의 종교합창곡이다. 12개의 악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밝고 희망찬 합창(1악장)곡과 엄숙하고 대조적인 ‘Et in terra pax’(땅위의 평화, 2악장) 등 각 악장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소프라노·알토 독창, 이중창, 합창, 오케스트라(바이올린·비올라·오보에·트럼펫 등)의 다양한 조합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며, 통주저음(continuo)과 오르간이 성악 파트를 풍성하게 채운다. 각 부분의 명쾌한 대비, 상징적 화음, 활기찬 리드미컬한 모티프 등은 바로크 종교음악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첫 도입부의 “Gloria in excelsis Deo(하늘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는 경쾌한 옥타브 도약, 반복되는 열정적인 합창, 트럼펫과 오보에의 드라마틱한 색채가 특징적이다. 이후의 악장들은 장례의식 같은 장엄함, 날렵하고 서정적인 소프라노-알토 이중창, 짤막한 푸가와 힘찬 합창, 목가적인 아리아,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힘차고 대위법적인 푸가로 마무리된다. 종교적 문맥과 함께 인간적 환희, 겸손, 연민, 감사, 찬양의 정서가 다채롭게 녹아 있다.
비발디가 이 곡을 쓴 시기는 1713년부터 1733년까지 20년 넘게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서 일하던 변화의 한가운데다. 피에타는 여성 고아를 위한 고아원이자, 베네치아 음악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음악 교육기관이었다. 비발디는 바이올린 교사로 시작해 실질적인 음악 감독, 작곡가로 활동하며, 학교 소녀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유럽 최고로 이끌었다.
피에타 음악회의 명성은 당대 베네치아 뿐 아니라 유럽 귀족과 여행가들 사이에서 높았고, 정기 연주회는 큰 인기를 끌었다. 피에타 출신 합창단과 악단은 해외 순회공연도 다녀왔으며, 음악적 명성은 파리 오페라극장에 견줄 만큼 극찬을 받았다. 외국의 왕족들도 피에타를 방문해 음악회를 감상하고, 비발디에게 작품 헌정을 요청했다. 이러한 특수한 환경에서, 비발디는 여성 독창과 합창, 화려한 기악적 편성과 대담한 기법적 실험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비발디는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 근무 초기엔 바이올린 교사였으나 곧 ‘합주 교사’로 승진하여, 합주단·합창단의 지휘와 작곡 전반을 책임졌다. 피에타의 음악적 토양은 그에게 이상적인 실험실이었다. 그의 곡 중 여성 합창과 독창이 많은 이유 또한 피에타의 소녀 연주자, 가수들을 위한 맞춤이었다. 또한 악기별로 걸출한 학생들이 있었기에, 기술적으로도 난이도 높은 합주곡과 솔로가 가능했다. 이러한 환경이 『글로리아』와 그 밖의 종교합창곡, 협주곡의 다양성과 수준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피에타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외국인에게 베네치아의 주요 관람 거리로 꼽힐 만큼 명성이 높았는데, 이 때문에 이 학교 출신의 소녀 연주자들은 관객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피에타 음악학교 자체는 원래 여성 고아들을 위해 설립된 학교였지만, 명성이 높아지자 이탈리아 각지 귀족과 부유층이 자기 딸을 입학시키려 줄을 설 정도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비발디의 음악은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J.S. 바흐는 비발디의 협주곡과 성악곡들을 오르간, 하프시코드 용으로 직접 편곡하여 연주하고 분석했다. 바흐는 비발디로부터 주제의 간결함, 화성의 투명함, 리토르넬로(재귀) 형식, 다채로운 리듬감 등 당대 이탈리아 음악의 특징을 흡수하여 자신의 음악 양식을 발전시켰다. 바흐 편곡(예: BWV 593 등) 덕분에 비발디의 작품들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는 비발디 음악의 대중적 확장, 그 이후 수세기에 걸친 재조명을 견인한 중요한 문화사적 지점이다.
비발디는 곡을 외국(주로 암스테르담) 출판사에 적극적으로 출간하고, 귀족 및 왕족에게 작품을 헌정하는 등 전략적으로 음악을 유럽 각지에 퍼뜨렸다. 그의 작품집은 당시 출판망과 공연문화를 통해 넓게 유통되었으며, 그 영향력은 동시대와 후대에 직접적으로 전해졌다.
■ 비발디 『글로리아 D장조』 RV 589는 바로크 음악사에서, 그리고 전후 유럽 종교음악, 기악음악의 진화사에서 꼭 살펴보아야 할 명곡으로 합창, 합주, 독창, 악기 편성, 형식 배치 등에서 개성적이고 실험적이면서도, 인간의 감정과 종교적 경건함, 극적 환희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앞서 RV 589를 들어보았다면, 같은 '글로리아'란 제목의 RV 588도 함께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xpZUSAIQyLo
♥ 꽃
- 이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쪽「쓴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자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라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約束)이며!
한 바다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