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20일 수요일 -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 중 1번 프렐류드 다장조 BWV 846 외/ The Well-Tempered Clavier, Book 1: Preludes in C major BWV 846 and other works>
■ https://www.youtube.com/watch?v=iWoI8vmE8bI
혼돈스러운 세상의 소식이 이어폰을 타고 귓속을 통과해 내 의식 속에서 재구성된다. 이어폰을 빼버리니 조그만 스마트 폰 화면에는 이어폰 속 목소리의 주인공 같았던 뉴스 프로그램 앵커의 몸짓과 얼굴표정이 뉴스의 배경이미지에 묻혀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
산책길에 스마트폰으로 살펴보다 멈춘 뉴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에 관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유럽의 정상들이 모여 한국전쟁보다도 길었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회담이 시작되었지만, 그 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돈바스' 지역을 포함해 현재까지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영토를 포기하면 휴전(또는 평화협정 체결?)하겠다는 푸틴의 요구를 전제로 한 이번 협상이 과연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성공할 수 있을까? 그동안 유럽에게 우크라이나 문제를 떠넘기듯이 발언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과의 정상회담 이후 갑자기 입장을 바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을 약속하겠다고 하는데 유럽 정상들은 여전히 큰 신뢰를 주지 않는 분위기다.
관련해서 이런저런 기사들을 살펴보다 보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전 우크라이나가 '유럽과 러시아의 에너지 혈관'이라고 불리는 드루즈바 송유관을 폭격했고, 이에 이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를 공급받아 온 헝가리와 슬로바키아가 크게 반발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그동안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해 유럽 전체가 공고한 반 러시아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이들에겐 약간 당황스러울 수 있는 기사였다.
드루즈바 송유관은 구 소련 시절부터 동유럽과 중앙유럽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공급해 온 중요한 에너지 인프라로 유럽연합(EU)이 대러 제재를 강화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같은 국가들은 이 송유관에 의존하며 경제와 산업을 유지해 왔다. 이번 러-우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우크라이나로서는 러시아의 전쟁자금의 원천인 러시아산 원유의 수출을 막기 위해 당연히 이 시설을 공격하고 싶어 했지만, 쉽게 행동에 나서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미국과 러시아 정상들이 휴전을 협의하기 위한 정상회담에 맞춰 우크라이나가 드루즈바 송유관 시설을 폭격했다는 사실은 이번 전쟁이 단순히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을 무기로 한 경제 전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드루즈바 송유관 시설이 완전히 파괴된다면 이 전쟁의 수혜자는 단기적으로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미 자국의 LNG 및 석유를 유럽 시장에 공급하기 위한 기반을 정비해 왔으며, 이번 송유관 마비는 그 수요를 확대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에너지 영향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에너지 산업을 통해 유럽에 대한 지정학적·경제적 입지를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더 싸울 여력도 의지도 없어 보이는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휴전 협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 중단 여부보다, 전후 유럽의 에너지 질서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더 깊이 얽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래서 이번 우크라이나의 드루즈바 송유관 시설에 대한 공격은 휴전 협상에 그리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협상에 복잡성을 더하는 신호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속보성의 짧은 뉴스는 대부분 사건을 둘러싼 구조적 진실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시청자들에게 사건의 구조와 더불어 이해관계자들의 셈법까지 꼼꼼하게 따지면서 보여 줄 미디어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런데, 정작 국내 미디어 기업들은 재정압박이란 명목하에 우리나라가 유심히 살펴야 할 중요한 국제뉴스마저 점점 취재예산을 줄여가며 외신에 의존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우리는 더 많은 감각적 미디어에 의존하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로그 시대보다 감각세계 너머 세상의 진실에 대해서는 더 어두워진 세상에 살게 되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만, 그 덕분에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갇혀 매일 비슷한 내용만 재탕 삼탕 반복(조회수로 수익을 내는 유튜브나 SNS 미디어들의 특성상)해서 보게 되는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 때문일까? 사람들은 단순하고 선명하게 들리는 선동(煽動)적인 주장에 더 쉽게 경도(傾倒)되고,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유튜버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점점 더 극(劇)적이고 극단(極端)화 되어간다.
이런 미디어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감각적 미디어로부터 벗어나는 일, 잠시 미디어 사용을 멈추는 일이다. 아니면 오늘 아침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듣고 있는 바흐의 평균율처럼 단순하지만 결코 복잡 미묘한 감각세계를 놓치지 않는 음악을 들으면 된다.
수천 년(수만 년) 동안 다듬어 온 옛 선조들의 탁월한 가르침처럼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나를 흥분시키고 자극하는 감각으로부터 벗어나 감각 너머의 세상에서 지금의 나를 떠올려(이를 '메타인지'라고 하던데) 보자. 놀랍게도 지금 내가 벌이고 있는 일과 감정들이 객관화되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존재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내게 주어진 과제들도 더 명확해 보인다.
벌써 한 주의 이틀을 급하게 보내고 실질적인 한 주의 중심인 수요일, 오늘은 좀 더 차분하게 감각 세계 너머의 나를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 그 시작을 알리는 이 곡(앞서 링크에 나온 짧은 프렐류드)은 다장조의 단조로운 음정들로 구성되었지만, 연속되는 화음들이 만들어내는 화성의 파동이 마치 빗방울이 웅덩이에 닿아 퍼지는 자연스러움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은 모두 24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장조, 다단조, 올림 다장조, 올림 다단조 같이 반음계별로 나단조까지 모두 24개의 조들의 푸가와 프렐류드(전주곡)가 그것이다.
바흐는 클라비어 소품곡집을 여럿 남겼는데, 1722~1725년 사이에 두 권으로 펴낸, 바흐의 두 번째 아내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소곡집'뿐만 아니라 총 4권으로 구성된 '클라비어 연습곡집'(6편의 파르티타가 수록된 제1권, 이탈리아 협주곡과 프랑스 서곡 등이 포함된 2권, 그리고 오르간을 위한 코랄 연주곡과 네 편의 듀엣 곡이 수록된 3권, 마지막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4권)까지 가족들과 제자들을 위한 교재용으로 주로 작곡하였다.
바흐 자신이 직접 쓴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서문에서, "학습을 열심히 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쓸모 있도록, 또한 이미 이 학습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하여"라고 썼듯이 그의 소곡집들은 교육용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피아노의 거장 리스트의 제자이자 당대 지휘자로도 명성이 높았던 한스 폰 뷜로(Hans Guido von Bülow, 1830~1894)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가 '피아노의 신약성서'라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제1, 2권'은 '피아노의 구약성서'라며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바흐가 조성음악의 음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줌으로써 이후 서양음악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 쓰인 평균율을 이해하려면 먼저 서양의 12음계를 만든 피타고라스의 순정률을 이해해야 한다. 피타고라스의 순정률(피타고라스 음률)의 원리는, 음의 진동수 비율이 단순한 정수(2:1, 3:2, 4:3 등) 일 때 가장 아름답고 조화롭게 들린다는 수학적 발견에서 출발한다.
현의 길이를 절반으로 나눠 울리면 그 소리는 원래 음보다 한 옥타브 더 높아진다. 예를 들어, ‘도’(C)를 기준으로 현을 반으로 줄이면 위의 ‘도’(C)가 난다. 그런데 현의 길이를 3:2 비율로 나누게 되면, 원래 소리보다 조금 더 높은음(한 옥타브보다는 낮은)이 나는데, 이것을 ‘완전 5도’라고 부른다. 즉 ‘도’(C)에서 완전 5도(현의 길이를 3:2로 나누면) 위 음은 ‘솔’(G)이 된다. 그런데, 3:2 비율의 도-솔 두 음은 함께 소리를 내면 그 화음이 아주 깨끗하고 맑게 들린다.
피타고라스는 12 음계를 만드는 데 ‘완전 5도 간격 쌓기’를 이용했다. 즉, 기준음(예: 도, C)에서 완전 5도 위 음(솔, G)을 찾고, 여기서 다시 완전 5도 위(레, D), 또 완전 5도 위(라, A) 식으로 5도를 12번 반복해 새로운 음을 만들어 12개의 음을 한 옥타브 안에 다시 맞춰(높은 미를 한 옥타브 낮춰 넣는 식으로) 우리가 오늘날 쓰는 12 반음의 음계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각 음은 자연스러운 정수비(3:2)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화음이 맑게 들리지만, 완전 5도를 12번 쌓게 되면 시작음(도)과 끝음(한 옥타브 위 도)가 정확히 같지 않고 미세하게 어긋나는 ‘피타고라스 콤마’가 생겨난다.
이런 피타고라스의 5도 쌓기 방식의 서양 12 음계(크로매틱 스케일)는 한 조성(예를 들어 다장조, 사장조)에서 충분히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르네상스 이후 여러 조성을 함께 쓰는 복잡한 음악으로 만들어지면서 불협화음 같은 소리가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순정률로 조율하면 조를 바꿀 때마다(전조 시마다) 새롭게 조율을 해야만 자연스럽게 울리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순정률로는 다양한 조성과 복잡한 음악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평균율이다.
평균율은 한 옥타브를 12개의 균등한 반음으로 나누는 음계 체계를 말한다. 이렇게 평균율로 악기를 조율하게 되면 비록 순정률로 조율한 맑은 화음은 일부 희생하더라도 복잡한 조성의 곡들도 추가적인 조율 없이 빠르게 연주할 수 있어서 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바흐가 평균율을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니고, 17세기 초부터 여러 유럽 음악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조금씩 발전했으며, 바흐가 활동할 당시 평균율은 이미 이론적으로 제안되어 있었고 실제 조율법으로도 실험되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나 지역별로 악기별로 각종 조율법(평균율, 중간온음률, 웰 템퍼먼트 등)이 병존하면서 통일된 평균율이 필요했다.
그리고 바로 이 무렵 바흐는 이전에는 한두 개의 조에서만 연주할 수 있었던 건반악기(하프시코드)를 이용해 24개의 모든 장·단조(각각의 12조) 곡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통해 실제 음악으로 구현하며 평균율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증명하고 확장시켰다. 바흐의 위대한 점은 그렇게 만든 평균율을 활용한 음악의 예술적 아름다움 또한 너무 뛰어났다는 것이다. 바흐 덕분에 현대의 우리들은 '모든 조를 활용하여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이를 통해 확장된 '음악적 표현의 다양성'을 얻게 된 것이다.
특히 바흐의 '평균율'이 놀라운 점은 건반악기를 위한 교재용으로 만들어져 특정한 멜로디 없이 분산화음만 빠르게 하강하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화성의 진행 자체가 아름다운 파동을 만들어내며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진정한 예술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단순해 보이는 곳에 우리 감각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도록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곡이 대중적으로 좀 더 익숙하게 된 계기는 샤를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1818~1893)가 이 곡을 반주삼아 멜로디와 가사를 얹어 '아베 마리아'로 발표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원전의 아름다움은 그 변용과 변주마저도 새로운 아름다움과 창조의 원천이 된다.
■ 우크라이나 출신의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의 연주로 프렐류드와 24곡의 푸가 전곡을 감상해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3EnosoXeTWI&t=178s
■ 샤를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1818~1893)가 이 곡을 반주삼아 멜로디와 가사를 얹어 만든 '아베 마리아'를 조수미의 목소리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E-1v3_YmVnw
♡ 호박꽃
- 고은
그동안 시인 33년 동안
나는 아름다움을 규정해 왔다
그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이것은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반역이다라고 규정해 왔다
몇 개의 미학에 열중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미학 속에 있지 않았다
불을 끄지 않은 채
나는 잠들었다
아 내 지난날에 대한 공포여
나는 오늘부터
결코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규정하다니
규정하다니
아름다움을 어떻게 규정한단 말인가
긴 장마 때문에
호박넝쿨에 호박꽃이 피지 않았다
장마 뒤
너무나 늦게 호박꽃이 피어
그 안에 벌이 들어가 떨고 있고
그 밖에서 내가 떨고 있었다
아 삶으로 가득 찬 호박꽃이여 아름다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