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은...

- 2025년 8월 19일 화요일 -

by 최용수

♥ 다비드 포퍼(David Popper, 1843~1913)

<콘서트를 위한 폴로네이즈, Op.14/ Polonaise de Concert Op.14>


https://www.youtube.com/watch?v=MOHERXZzOt8


확실히 해 뜨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 그만큼 태양의 뜨거운 시간도 줄고 있을 텐데도, 여전히 아침 대기는 후덥지근하다. 뉴스에서는 유럽이 역대급의 폭염으로 고통받고 있다는데, 원인은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고, 그 빙하가 녹은 물이 바다의 염도 차이를 줄이고, 그것이 북대서양의 해류를 정체시키면서 대기 정체(열돔) 현상이 유럽에서 발생한 때문이란다.

고등학교 시절, 지구과학 선생님께서 지구가 항상성(일정한 기온과 대기의 순환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주의 기적'같은 일인데, 그 지구 항상성의 핵심 메커니즘이 해류의 순환이라는 걸 배웠던 기억이 났다. 모든 기후조건들이 기적같이 맞물려 지구는 수만 년 전 인류가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조화로운 지구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인류가 그 균형을 스스로 깨뜨리며 자멸의 길로 가고 있다니...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살아남기 위해선 조직의 생존이 걸린 과업에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두게 마련인데, 80여 억 명의 구성원들이 193개나 되는 '국가'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만을 추구하다 보니 정작 그들 모두의 터전인 지구의 위기는 외면하게 되는,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금의 유명무실한 UN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의 초국가연합이 필요한 게 아닐까? 수많은 차이들을 받아들이면서도 때로 서로 약간의 불편함과 피해를 감수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어쩌면 인류 진화의 정점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조직을 내 남은 생에 볼 수 있을까?

부모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식의 행복이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기 마련인데, 이런 엄청난 숙제를 하필 자식 세대에게 남겨주고 가야 하다니...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


아침마다 내가 음악일기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통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음악은 인류가 가진 그 어떤 문화적 자산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로 충만하다. 불협화음조차도 여러 배음(Overtones)들을 통해 오히려 그것이 풍부한 화성을 만드는 요소로 활용되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음악. 오늘도 모쪼록 음악이 주는 지혜와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오늘은 다비드 포퍼의 '콘서트를 위한 폴로네이즈'를 골랐다.




다비드 포퍼(David Popper)는 '첼로계의 사라사테', '첼로의 리스트'라 불리며 첼로 연주자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로 통하지만 의외로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첼리스트이자 작곡가다. 첼리스트로서 당대 최고의 비르투오소로서 명성을 얻은 포퍼였지만, 남긴 작품들이 첼리스트들을 위한 연주곡, 연습곡이 대부분이라 현대에 이르러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그가 남긴『첼로 연주의 고등학교(High School of Cello Playing), Op.73』은 전 세계 모든 첼리스트가 고급 테크닉을 익히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본으로, “첼로 연주자의 성인식(rite of passage)”이라 불릴 정도의 위상을 가진 작품으로 첼리스트들에게 다비드 포퍼는 피아노의 쇼팽과 같은 인물이다.


'첼로의 리스트', '첼로계의 사라사테' - 다비드 포퍼의 화려한 음악 인생


다비드 포퍼는 현재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그가 태어날 당시는 보헤미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포퍼의 아버지는 프라하 유대 공동체의 2개 주요 시나고그(Synagogue, 유대교의 회당)에서 칸토르(성가대 지휘자 및 선창자)로 재직했기 때문에 포퍼는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음악을 배울 수 있었다.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그 배움의 속도는 빨랐고 음에 대한 감각 또한 뛰어났다고 한다. 12살에 프라하 음악원 입학당시 포퍼는 바이올린으로 오디션을 보았는데, 당시 오디션을 담당했던 교수진은 그의 음악적 잠재력에 크게 놀라 그가 바이올린이 아니라 첼로 전공을 조건으로 음악원에 입학시켰고, 포퍼를 당시 첼로 교육자로 명성이 높았던 율리우스 골터만(Julius Goltermann, 1825~1876)으로부터 사사하게 하였다. 과연 포퍼는 첼로를 배운 지 불과 3년 만에 그의 엄청난 잠재력을 드러내게 된다. 1858년 당시 15세였던 포퍼는 당시 오페라단에서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그의 스승이 일정 문제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연주를 못하게 되자, 포퍼가 스승을 대신해 연주하게 되었는데, 서곡의 첫 부분이 두드러지는 솔로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관객들이 감동받아 연주를 중단해야 할 정도로 큰 박수를 보내는 바람에 지휘자는 젊은 예비 첼리스트 포퍼에게 일어나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슈테판 데아크의 전기에 나오는 이 일화는 반만 사실이거나 과장된 것이라 할지라도, 첼로를 배운 지 겨우 3년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일화가 전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포퍼의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다.)


1861년 프라하 음악원을 졸업하자마자 니더실레시아의 뢰벤베르크 궁정 악단에서 일하게 되는데, 포퍼는 여기서 베를리오즈, 바그너, 그리고 프란츠 리스트의 사위였던 한스 폰 뷜로(Hanso Freiherr von Bülow, 1830~1894)할 연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1863년 독일에서 열린 포퍼의 첫 연주회에서 뷜로는 포퍼의 연주에 크게 감명받아 그를 뢰벤베르크 궁정 악단의 첼로 수석으로 추천하여 첼로 수석으로 임명되게 하였으며, 1864년에는 한스 폰 뷜로 자신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에서 다비드 포퍼에게 로버트 폴크만의 첼로 협주곡을 초연하게 하는 등 포퍼의 연주를 사랑했다.

뢰벤베르크 궁의 호엔촐레른-헤칭겐 왕자가 세상을 떠나자 포퍼는 1867년 유럽음악의 중심 빈으로 갔다. 가자 마자 개최한 그의 데뷔 연주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곧바로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수석 첼리스트가 되었다. 1868년부터 1870년까지 헬메스베르거 4중주단의 단원으로도 활동하며 첼로 비르투오소로서의 명성을 쌓아갔으며, 1872년에는 리스트의 제자 피아니스트 소피 멘터와 결혼, 빈에서의 안착에도 성공하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를 보내게 된다.

1873년 포퍼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수석 첼리스트 자리를 사임하고 그의 아내 소피 멘터와 함께 유럽 전역으로 콘서트 투어를 떠났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공적인 연주여행도 성공적인 부부로서의 관계를 보장하지는 못했다. 1886년 포터와 멘터는 성격차이로 서로 결별한다.

하지만, 포퍼는 프란츠 리스트가 부다페스트 음악원에 새로 개설한 현악과에 교수직에 채용되면서 이후 부다페스트에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부다페스트에서 포퍼는 후베이 예뇌(Jenő Hubay, 1858~1937)와 함께 부다페스트 4중주단에 합류해 활동하게 된다.


다비드 포퍼는 엔드핀(첼로의 몸통을 바닥에 고정하는 핀)을 사용하지 않은 마지막 위대한 첼리스트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포퍼를 비롯한 19세기 중반까지도 대부분의 첼리스트들은 엔드핀 없이 첼로를 다리 사이에 껴서 연주하는 전통적인 자세를 따랐는데, 이는 그게 당시 연주법의 정석이었고, 엔드핀이 일상화되기 전의 첼로 교육과 연주 환경에서는 ‘직접 다리로 첼로를 고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엔드핀이 등장한 때는 18세기 중반으로 당시 유명한 첼리스트였던 아드리앙-프랑수아 세르베(Adrien-Francois Servais, 1807~1866)가 비만 등 신체적인 이유에서 엔드핀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보급되었는데, 공식적으로 보편화된 시기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여성 첼리스트가 늘면서 신체적 편의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포퍼는 첼로 소리에 대한 추구와 빈번한 무대활동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엔드핀 없이 연주했지만, 말년에는 그 또한 점차 엔드핀을 사용했다. 이는 신체적 편의뿐만 아니라 현대적 테크닉을 구사하는데도 엔드핀이 유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High School of Cello Playing(첼로 고등학교)' 연습곡집을 포함해 수많은 첼로 작품을 남긴 포퍼는 1913년 오스트리아 바덴에서 생을 마쳤다.


포퍼의 황금기에 작곡된 '콘서트를 위한 폴로네이즈'


이 곡은 포퍼가 결혼과 연주생활 모두에서 정점을 찍던 시기였던 1877년에 작곡되어 1878년 출판되었다. 폴로네이즈는 본래 폴란드 궁정의 화려함과 귀족적 기개를 상징하는 춤곡인데, 포퍼는 이 전통적 형식에 첼로의 찬란하고 귀족적인 미학을 결합시켰다. 헌정자는 네덜란드 국왕 빌헬름 3세, 당시 포퍼의 국제적 명성과 후원자들의 위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곡의 초연 시기와 무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포퍼는 이미 유럽 주요 도시에서 열광적 환호를 받던 첼로 스타로, 영국에서 그는 '첼로계의 사라사테'라 불렸고 조지 버나드 쇼는 "그의 연주는 현존하는 최고의 첼로"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현대에 와서도 이 곡은 첼리스트들의 유명 레퍼토리로 꼽히며, 화려한 기교와 깊은 선율미 모두를 갖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입시나 콩쿠르에서 자주 연주되고, 음반으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첼로와 피아노(혹은 오케스트라 반주)로 이루어진 단악장 곡으로, 시작 부분에서 피아노가 폴로네이즈의 리듬을 제시하면, 첼로가 주제 선율을 이어받으며 우아하면서도 힘 있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중간 부분부터는 첼로의 화려한 더블스톱, 빠른 아르페지오, 마지막 부분 첼리스트 기교의 백미라고 불리는 옥타브 패시지까지 첼로의 가장 어려운 '비르투오소'적 기교가 집중되어 표현된다. 낭만적이고 부드러운 멜로디에서 강렬하고 화려한 패시지까지, 첼로의 온갖 표정이 다 드러나는 첼로음악의 진수라고 할만하다.


■ 앞서 첼로와 피아노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첼로의 매력을 십분 느껴보았다면, 첼로 4 중주곡의 중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갈빈 첼로 4중주단의 연주로도 감상.

https://www.youtube.com/watch?v=vvIM-sDRUv0


■ '콘서트를 위한 폴로네이즈' 만큼 인기 있는 포퍼의 소품 '타란텔라'도 함께 감상해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n2A__saqyL0&list=RDn2A__saqyL0&start_radio=1



희망


- 김소월


날은 저물고 눈이 내려라

낯설은 물가로 내가 왔을 때.

산속의 올빼미 울고 울며

떨어진 잎들은 눈 아래로 깔려라.


아아 소쇄스러운 풍경이여

지혜의 눈물을 내가 얻을 때!

이제금 알기는 알았건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한갓 아름다운 눈얼림의

그림자뿐인 줄을.


이울어 향기 깊은 가을밤에

우무주러진 나무 그림자

바람과 비가 우는 낙엽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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