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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Sep 12. 2018

궤짝 안의 사과

작고 빛바랜 열매들에 대하여


이른 가을,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묵직한 사과들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면 추석을 앞둔 수확이 시작된다.



사과의 뒤꼭지까지 빨개지라고 과수원 바닥은 온통 번쩍이는 은박 카펫이 깔려있건만, 올 해는 유난한 날씨 덕인지 색이 덜 나왔단다. 속상함을 뒤로하고 열매들을 따 내리면 상온에서 열흘에서 보름까지 후숙을 시킨 뒤, 저장시설에 넣는다. 



이때 본격적인 차별이 시작된다. 한알 한 알 크기에 따라 계측하고, 흠집이 있는지를 가려내는 선별작업이 필수. 제사상 덕분에 명절엔 사과의 크기도 중요하다. 크고 좋은 사과들을 가리고 나면, 어딘가 새가 콕 쪼았거나, 좀 작거나, 상처 입은 열매들이 한아름 허드레 궤짝에 담긴다. 딱히 개수를 세어 넣는 법도 없이 한 상자 가득 담긴다.



충주에서 친척 중에 사과농사를 짓는 집이 있다면, 사과는 돈 주고 사 먹는 과일은 아니었다. 사시사철, 베란다 한 구석에는 나무궤짝 하나 가득 색이 바랜 사과가 있었다. 좋은 사과들은 다 팔려나가고 남은 것을 먹다 보니, 유독 기억 속의 사과란 빨갛기보다 얼룩 덜룩한 사과, 또는 어디 한 군데 찍히거나 살짝 멍든 자그마한 사과들 뿐이다. 원래 과일은 껍질에 생채기가 나면 그 향이 더 진해진다. 사람보다 후각이 좋은 새들이 쪼아 놓은 사과가 더 달기도 하다. 늘상 베란다에 나가면 그렇게 달큼한 사과와 매캐한 톱밥의 향기가 엉켜져 진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다. 밥만 먹고 나면 후식은 늘 그놈의 사과를 깎아 주셨고, 그래서 더 잘 안 먹었다. 하도 먹어서 질렸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제는 그만, 다른 귀한 '과일'을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사과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서울살이가 십 년을 넘어갈 즈음이었다. 어느 가을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면서 그 베란다의 향기가 그리웠다. 상처 입은 사과의 달달한 향기에 섞인 톱밥 냄새. 서울 홍대입구에서 나무 궤짝에 담긴 사과를 찾는 무모한 용기가 가득했던 밤, 처음으로 사과를 사기 위해 과일가게를 들렀다. 한 알에 붙어있는 가격을 보고 손이 떨려 차마 살 수가 없었다. 사과라는 과일이 이토록 값비싼 열매였을까. 그때부터 어느 시장이나 마트에 가도 사과 가격을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될 지경이었다. 그나마 재래시장 골목에서 저렴한 한 바구니의 사과를 들고 왔는데, 그 질리도록 진하던 향기가 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서야, 도시에서 옛날 같은 사과를 만나기란 아주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사과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어린 시절의 친척집 사과농원에서 가공용 사과를 몇 박스 받았다. 선물용 상자가 아닌 투박한 종이 상자 꽉 차게 들어 있는 상처 난 사과들 틈에서 익숙한 향기를 다시 발견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과는 그 자리에 있었다.



이맘때쯤 농원에서 사과를 박스로 받으면, 처음 일주일은 그냥 깎아 먹기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그렇게 주위와 함께 열심히 나눠 먹어도 대체로 박스 바닥에 남는 사과가 몇 개 굴러다니기 마련이다. 아깝게 남는 사과는 그대로 말리지 말고, 쉽게 잼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대체로, 우리가 이름은 알지만 맛의 실체가 없는 것이 사과잼이다. 베이커리의 애플파이 안에 들어있는 것만이 사과잼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토스트나 파이 등의 베이커리에도 잘 어울리지만, 연어 플레이트처럼 달콤한 요리에서도 달콤한 감칠맛을 낸다.

   



애플 잼 

Apple Jam  



사과 잼을 한 번만 끓여보면 알 수 있다. 생각보다 사과 향이 진하게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동안 사과향이 첨가된 제품들을 먹어 온 덕택에 사과만 끓인 담백한 맛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비극인 셈이다. 결국 사과잼은 끓이면서 약해지는 사과 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단맛보다 사과 맛이 더 나는 잼을 만들어 보자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했다. 수많은 실패와 고민 끝에 완성된 오리지널 레시피를 소개한다. 계피향을 더해 가을에 어울리는 맛으로 준비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먹자면 계핏가루를 빼고 끓여주면 된다.


재료(잼 5~600g 기준)

사과 3개

백설탕 – 사과 양의 1/2

레몬즙 약간 (사과 양의 3%)

계핏가루 약간


만드는 방법

1 사과 3개를 믹서에 갈아준다.

2 1과 분량의 설탕을 냄비에 넣고 센 불에서 끓인다.

3 한소끔 끓어오르면 레몬즙을 넣고, 중간 불로 줄여 저어가며 졸인다.

4 점성이 생기면 불을 끄고, 취향에 따라 계핏가루를 뿌려 섞는다.

5. 미리 소독해준 잼 병에 옮겨 담는다.

6 뚜껑을 닫은 뒤 거꾸로 뒤집어 병 속 공기를 빼준다.

7 냉장 보관하며 먹는다.(냉장보관 2주).



 



애플 연어 플레이트 

Apple Glazed Salmon Plate



사과는 고기 요리의 잡내를 잡아주고 풍미를 더해주는 대표적인 식재료다. 덕분에 육질이 부드러워지는 것은 기본. 특히 돼지고기나 연어같이 기름진 식재료를 요리할 때, 사과의 상큼 달콤한 향이 입맛을 돋워 주며, 기름진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준다. 조금 이국적인 사과 요리를 꿈꾼다면 달콤하고 고소한 애플 연어 플레이트를 추천한다. 생연어 필레에 단호박, 토마토와 적양파를 올리고, 사과 잼과 시럽을 연어 표면에 발라 오븐에 구워내는 간단하고 특별한 가을 요리다. 와인에 곁들여도, 가을철 파티의 메인 요리로도 손색이 없다.


재료(2인분 기준)

연어 필레 1토막

단호박 1/8쪽

적양파 1개

방울토마토 12개

생 로즈메리 1줄기

사과잼 8작은술

플레이트용 사과 소스

애플 시나몬 시럽 150g (없다면 메이플 시럽으로 대체 가능)

올리브 오일 60g

소금, 후추, 다진 마늘 1큰술씩

건 바질, 건 오레가노 1작은술씩


만드는 방법

1 플레이트용 사과 소스 재료를 모두 넣고 섞어서 맛이 들게 30분 이상 놓아둔다.

2 양파는 깍둑썰기, 단호박은 반달 모양으로 얇게 슬라이스, 연어는 한 입 크기로 자른다.

3 오븐 팬에 양파를 깔고, 그 위에 단호박을 올린다.

4 꼭지를 제거한 방울토마토를 겹치지 않게 올리고, 연어를 올린다.

5 연어 한 조각에 사과잼 1작은술을 펴 바르고, 그 위에 애플 소스를 1큰술씩 뿌린다.

6 남은 애플소스를 전체적으로 골고루 뿌리고 생 로즈메리 줄기를 올린다.

7 19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25~30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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