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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Dec 26. 2018

Cheese there

그들의 치즈

톰과 제리로 시작된 구멍 난 치즈의 로망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버터처럼 덩어리 진 치즈 가운데 생긴 동그란 공기방울들. 저렇게 생긴 치즈는 어떤 맛일까. 모양은 어떻게 잘라야 하지? 형태가 잡혀있는 걸 보면 딱딱할 것도 같은데 등등. 에멘탈이라는 이름을 배우기 전까지 막연히 스위스 치즈로 알려진 그 덩어리는 꽤 오랫동안 상상 속의 존재였다. 치즈만큼이나 마법의 요리로 인식되었던 퐁듀와 함께. 와인도 없이 처음 만난 퐁듀는 조금은 느끼했고 이십 대에게는 조금 어른스러운 쌉싸름한 맛이었다. 또띨라를 찍어먹던 체다 딥소스 정도를 상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운 느낌. 세상은 넓고, 치즈는 다양하다고 생각했던가. 혹은 본고장 스위스에서 다시 퐁듀에 도전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세웠을까.



치즈는 프랑스를 빼고 논하기 어렵다. 더블린의 슈퍼에서 냉장고 한 칸 가득한 치즈들을 발견했을 때도 좋아서 기절할 것 같았는데, 파리에서는 치즈 코너가 최소한 세 배는 되었다. 두부 같아 보이는 후레쉬 치즈들부터 각종 크림치즈, 지역별로 올라온 하얀 연성 치즈에 주황색 워시드 치즈, 전 유럽에서 나오는 산지별 반경성 치즈(Semi-hard cheese)들과 이탈리아산 파마산 같은 경성치즈까지. 심지어 치즈를 다시 절이는 가공품도 있다. 특히 파리의 본 마르쉐에 입성한 치즈들은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다 보니, 작품처럼 하나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다. 


킨포크 잡지의 영상작업을 하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The producers - Yan'영상을 본 이후로는 더 그랬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KfBKNWavDm4&feature=youtu.be>


프랑스 시골의 푸른 초원에서 양을 치는 것으로 시작한 영상은 (스포하자면), 치즈로 끝이 난다. 프랑스에서 만드는 모든 치즈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고 싶어질만큼, 과정 과정마다 일일이 담긴 손길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여행으로 파리에 머물렀던 기간 중 매일 했던 일 한 가지는 저녁마다 마트에 들러 종류별로 치즈를 사고, 매 끼니 다른 치즈를 음미했던 것이다. 수도 없이 감동적이었던 치즈들 가운데, 가장 사랑한 것은 Brie. 우유의 맛이 풍부한 까망베르와 유사하지만 좀 더 고소함이 진하고 짭짤한 편인 프랑스 치즈의 왕은 그 순간부터 인생의 테이블 속에 종종 함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하목장의 연성 치즈가 나오기까지, 매번 해외여행길(심지어 일본)의 구매품 1순위였던 브리는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하는 치즈 중에 하나로 꼽힌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두 요리를 잘할 것이라는 편견은 이탈리아 유학생과 하우스 쉐어를 하던 첫날부터 깨지고 말았다. 현지인의 파스타를 보여주겠다던 그녀는 테스코에서 싸구려 고르곤졸라 한토막과 파스타 딱 두 가지만 들고 부엌에 들어섰다. 처음 보는 숏파스타를 삶아내더니, 바로 팬에 파스타와 고르곤 졸라 치즈(한 덩어리를 전부) 넣고 비벼낸 뒤 접시에 담았다. 오 마이 갓. 간이 없어 밍밍한 파스타를 가득 덮은  치즈 속 푸른곰팡이는 막혀있던 콧구멍을 한 번에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그나마 초장 없는 홍어 소면에 가까울까.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에 대고 차마 뱉을 수 없어 삼켰다. 그리고 다시 포크를 들지 않았다.



푸른곰팡이의 트라우마가 그나마 치유된 것은 한국에 돌아와 고르곤 졸라 피자를 먹으면서부터. 조금씩 꿀에 찍으니 독특한 풍미가 있구나 정도다. 지금도 푸른곰팡이 치즈는 어딘지 모르게 두려운 구석이 있다.    



교과서에서 낙농업 국가로 배운 곳은 덴마크 이건만, 유독 우리나라 마트의 반경성 치즈 들은 네덜란드 제품이 많다. 빨간색 왁스의 베이비 벨로 유명한 에담이나 고다부터 좀 더 가벼운 느낌의 하바티, 고다의 프리미엄 버전인 빔스터, 그리고 훈제 치즈들 까지. 대체로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도 종류별로 만나 볼 수 있는 치즈들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에게는 치즈의 조상 같은 체더 역시 영국의 반경성 치즈가 미국으로 넘어가 공장 생산 제품(processed Cheese)으로 탈바꿈되면서 네모 치즈가 된 경우다. 반경성 치즈는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숙성기간을 통해 유지방이 응축되면서 치즈 고유의 고소한 맛과 풍미를 즐기기 좋은 특징을 지닌다. 형체가 고정이 어렵고, 숙성기간이 거의 없는 후레쉬 치즈를 지나 연성 치즈들부터는 휠이라는 원기둥 형태로 만들어 온도와 습도가 관리되는 창고에서 일정기간 숙성이 필요하다. 특히 이 반경성 치즈나 경성 치즈들은 오랜 기간 보관하기 좋고, 치즈 표면의 균들을 관리하기 좋도록 종류에 따라 각양각색의 휠 크기를 가지게 된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종류의 치즈가 들어오지만, 아직까지 휠 단위의 치즈를 들여놓고 잘라 파는 치즈 전문점은 들어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 때 SSG나 현대 압구정 본점에서 시도했으나 소비자층이 얇아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치즈가 발효식품인 만큼 치즈의 모양에 따라서도 맛의 깊이가 달라지는데, 슬라이스나 조각낸 제품만 먹다 보면 가끔 그 큰 휠에서 잘라내는 풍미가 그립기도 하다.


상해 주재원 시절, 외국인 마트 한 구석엔 정육점처럼 치즈 코너가 있고, 테이블 냉장고엔 잘라 팔다 남은 Brie나 반경성 치즈들의 휠(반지름만 2~30cm)이 60도 각도로 놓여 있곤 했다. 매번 자르는 각도에 따라 심장이 철렁, 가격이 천차만별 달라진다. 그 옆엔 자투리 치즈들을 모아 놓은 봉지가 있는데 운이 좋으면 7가지 다른 치즈들을 한 번에 맛볼 수도 있었다. 




Cheese Plate



와인을 즐기는 자리에는 치즈부터 챙기기 마련이다. 치즈 플레이트는 곁들이는 와인에 따라, 과일에 따라 혹은 곁들이는 음식에 따라 수 없이 다양한 방법이 있다. 화이트 와인에는 가볍고 부드러운 치즈에 달콤한 과일들을 곁들여 파스텔컬러의 플레이팅을 하고, 빈티지 와인에는 하몽이나 살라미 같은 생햄에 모짜렐라 치즈, 올리브, 견과류를 곁들인다. 모양새를 내고 싶을 땐, 치즈의 종류를 다양하게 갖춰주면 된다. 딱딱한 경성치즈 한 종류에 반경성 치즈, 하얀 연성 치즈를 섞어 내는 식이다.



예를 들면 파마산 치즈를 작은 덩어리째 올리고, 반경성 치즈로 무난한 고다나 에담 등을 곁들이고 연성 치즈인 카망베르나 후레쉬 치즈인 리코타 혹은 모짜렐라 등을 곁들이면 된다. 맛과 향, 질감이 겹치지 않도록 올리는 것이 포인트. 상온에서 치즈의 질감과 향을 즐길 수 있도록 서비스 하기 1시간 전에는 냉장고에서 미리 꺼내 두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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