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남쪽 여름

한 달의 시간, 불안함과 두려움에 관하여

by 송인섭

몇 년간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여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독일의 여름은 항상 베를린에서 보냈었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독일의 남쪽, Pforzheim(포르츠하임)이라는 곳에서 8월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덥고 습했던 7월의 서울을 시간을 뒤로하고, 이곳으로 오니 공기 중에 한 겹의 물로 된 막이 사라진 느낌이다. 오히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게 느껴져 외투를 입고 나가야 할 정도이다.

그리고 보니 이 도시에 처음 방문한 게 딱 1년 전쯤이다. 베를린에서 차를 빌려서 8시간 넘게 달려온 이곳의 첫인상은 '작은 도시'였다. 도시의 중앙부에 주로 있는 ibis 호텔, 그 근처에 있는 우뚝 솟은 교회의 시계탑, 그리고 그 옆을 흐르는 작은 천까지... 노을과 함께 보았던 풍경은 왠지 이 도시의 대부분을 벌써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하룻밤만 묵고 떠났던 이곳에 다시 돌아와 이제는 한 달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매년 여름, 이렇게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독일로 떠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부럽다' '좋겠다'

나도 물론 감사해하며 지낸다. 내가 살아가면서 매년 유럽의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불안함' '두려움'

독일에 오게 될 때마다 반가움과 기분 좋음으로 시작하는 나의 감정은 항상 2,3일 안에 저 감정들을 불러낸다. 이유는 꽤 명확한데, 머무는 기간 동안 수입이 전혀 없으며, 일도 없으며, 어찌 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제한적인 이 상황이 당장 나의 머릿속과 마음속에 재빠르게 자리 잡는다. 거기에 '관성'이라는 이름의 현상은 많은 일을 해오다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온 하루라는 사이동안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에게 무슨 일이든 더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과 느낌을 자꾸 심어준다. 이게 생각보다도 더 오래 몸속에 남아서 조급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두가 타고 움직이고 있던 버스에서 나만 덩그러니 차 밑에 구멍으로 빠져버려 길 한복판에 앉아있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지난 몇 년간의 반복된 여름의 시간과 경험은 나에게 약간의 지혜를 선물했는데, 강제로 또는 의지로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이 감정과 상태를 조금은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랄까. 이곳에 온 지 4일 차인데, 나는 둘째 날부터 매일 동네를 조금 벗어나면 나타나는 숲 속을 걷는다. 뛰기도 한다. 그렇게 1시간 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내 맘속에 불안함과 두려움은 거짓말처럼 존재하질 않는다. 오히려 휴대폰을 붙잡고 화면을 키는 순간 눈앞에 떠있는 알람표시와 어플 속의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볼 때 나의 불안함은 높아진다. 그렇게 나는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그리고 눈앞에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도 모르는 그 숲길을 걷는 것으로 내 두려움을 대신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제 숲길을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두려움을 인정하자. 불안함을 받아들이자. 한 달간의 시간 불안과 두려움을 인정해 보자. 그렇게 나는 또 나만의 시간을 갖고 이 여름을 보내보자.

뜨거운 여름일수록 지나고 나면 항상 기억에 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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