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남쪽 여름

목표하지 않은 일 이루기

by 송인섭


내가 묵고 있는 곳에는 룸메이트 E가 있다. 이 친구는 20대의 독일인이며, 현재 직장은 Amazon. 나이에 비해 굉장히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호의를 잘 베푼다. 대화를 많이 해 본 적은 없지만, 가끔씩 시간이 맞으면 헬스장을 같이 가거나, 산책이나 등산을 했던 적이 있었다.

별 일 없이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나는 어김없이 집 밖으로 나서서 뛸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이케가 평소 직장에서 돌아오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수요일은 뛰는 날이란다. 그러더니 날 보더니 오늘도 나갈 거냐면서, 같이 뛸래?라고 물었다. 나는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오케이 라고 했고, 아이케는 좋다면서 매주 같이 뛰고 있는 친구가 오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 도착하면 같이 나가자고.

Y. 아이케의 친구이다. 역시나 20대 독일인, 현재는 대학원생이자 취준생이다. 뛰면서 알았지만 요즘 많은 곳들의 면접을 보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 전공이 메카닉 엔지니어링 쪽이라서 siemens 들어가길 원하는 눈치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만난 친구.

우리 셋은 7시쯤 집 밖을 나섰다. 다행히도 하루 전 러닝에 관한 Youtube 채널들을 통해 나름의 지식(?!)을 습득해 둬서 조금은 자신만만했는데.... 그런데 이 친구들은 모든 (자칭) 전문가들이 말한 스트레칭과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분명 중요하다고 했는데...

뭘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평소 생각도 안 해봤던 10km 달리기에 성공해 버렸다. 이 평화로운 포르츠하임의 enz 강(?!)을 따라 뛰기를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우린 쉬지 않고 달렸다. 여기서 더 놀라운 점 하나는.... 저 둘은.... 쉬지 않고 대화했다. 난 뒤에서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달렸는데, 어떻게 저렇게 이야기하면서 달릴 수가 있는지 달리는 내내 신기했다.

어쨌든 나는 목표하지 않은 일을 이루어 버렸다. 예상과 다르게 엄청 기쁘거나 성취감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한 달 동안 달려볼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 거리를 한 번에 달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Youtube에서 Q&A에 3달 뒤에 10km 마라톤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에... 다들 말리는 분위기여서 엄청 힘들 것이라고만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종종 일어난다. 음악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노력해도 뭔가 넘어서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고, 이런저런 다양한 일들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노력하고 목표로 세웠어도 이루지 못한 것들이 몇 천 개는 되지 않을까 싶다. 몇 만개일지도... 그런데 가끔은 그냥 해보니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진짜 자랑이 아니고 마지막 집이 보이는 구간에서 집 방향으로 안 가고 맞은편 강 건너편 쪽으로 계속 뛰어갔을 때에는 진짜 진짜 앞에 가는 두 친구가 엄청 미웠다.

이제 다시 다음 주에 10km를 뛰자고 나에게 제안한다면... 응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이루어져 버린 것을 노력으로 다시 할 생각을 하니... 다리가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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