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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유학생 May 10. 2020

인생의 반: 오빠를 향한 마음의 시작

서울 유학으로의 도전기

    문제는 그 감정이었다. 모든 것의 시작점은 바로 그 감정이라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인생의 끝일 거라 생각했던 16세 때, 나는 눈을 뜨고 말았고, 17세에 그 시작을 하고 말았다.



    SNS에서 올라왔던 "열여섯 때 좋아한 상대가 내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 이 얘기가 바로 내 얘기이다. 딱히 큰 관심 없었던 내가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무대 위에서 블링블링 거리는 반짝임과 파워풀한 보컬 능력, 댄스를 선보였던 그들에게 빠져버렸고. 아, 잘생긴 남자가 노래도 잘할 수 있구나, 그런데 음악적 능력도 오지구나.라는 생각에 크러쉬 당해버린 나는 그렇게 그들을 일상의 동기부여로 삼게 되어버렸다. 


    디지털 미디어가 없었던 그때 당시, M 채널의 음악 방송을 보려고 독서실에서 문제집을 폭풍처럼 풀고, 집으로 달려갔다. 식탁 위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그들을 보며 잠깐의 여유를 느꼈던 그 한 시간이 내게는 꿈만 같았다. 그런데 그런 사랑(?)의 시작이 내 삶의 반이 되어버렸다.  저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면 도대체 무슨 방법이 있을까? 마음만이 아닌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려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나는 '인 서울'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것이야 말로 내 시작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버렸다. 


인 서울: 내 인생의 반


    물론 고등학생 때야 '인 서울'의 꿈을 품고 대학을 가려는 지방러들이 많았겠지만, 사실 중학교는 드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그런 꿈을 16세 때 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나는 그 감정을 품어버렸고, 서울에 대한 환상은 커졌다. 서울에 가게 된다면, 공부를 하면서 흔히 덕후들이 뛰는 공방을 뛸 수 있을 것이며, 콘서트장에 자유롭게 갈 수 있을 것이며,, 운이 좋다면 내가 좋아하는 오빠를 우연히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순수한 생각에서 시작된 그 목표. 


    그렇게 인 서울의 꿈을 품었던 나는 본심을 숨긴 채, 단지 더 높은 성적을 이뤄내겠다는 목적으로 포장해 특목고 입시 준비를 선언했고, 그 꿈을 16세의 어느 겨울날에 성공해버렸다. 설렘과 두근거림과 함께 그때 당시 서울과 유사할 줄만 알았던 경기도를 향한 길은 꿈만 같았다. 


가평의 숲: 학생, 여긴 서울이 아니에요


    아, 그런데 이게 뭔가. 시작하면 순탄할 줄 알았던 인 서울의 삶이 상상 같지 않았다. 인생이란 게 이래서 힘들단 거였나. 내가 입학했던 특수목적 고등학교는 상상했던 대중문화를 쉽게 즐길 수 있는 도시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내가 아이돌 오빠만큼 사랑했던 치킨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위치의 기숙사였다. 예. 그렇다 서울특별시가 아닌 경기도 가평의 산골짜기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서울말의 향연과 0.1점 차이로 벌어지는 등급 싸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스스로만 해결해야 하는 상황. 학교는 대충 다니고, 하교 후에 엄마 몰래 공방이나 갈까 생각했던 나의 순수했던 꿈과 상상이 완벽히 깨져버리는 순간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17세의 봄날, 나는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경험했지만, 그 시작은 평범하지 않았고, 쉽지 않았다. 


    중학교 때도 겪지 않았던 내 마음의 사춘기, 고2병이 찾아오던 어느 가을날 밤엔 눈물에 젖어 잠들기도 했다. 몸이 아파 맹장을 부여잡고 힘들어하던 그때도 홀로 학교 근처 병원에 입원해 신체적 아픔 외에도 내면의 아픔과 외로움을 치유해야만 했다. 내가 꿈꾸던 서울은 어디였을까. 즐김을 위한 나의 서울이 어느 순간 내적 성장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서울 유학으로의 도전이, 시작은 그렇게 이어졌고 10년이 지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의 연차 브이로그: 지방리의 샌드위치 휴가

서울 유학: 시작이 반이다. 근데 아직도 멀었다.


    시작의 반: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반 이상 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끝마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말이에요. 과연 이 말의 정의는 사실일까? 물론 시작이 어렵겠지만, 실행력 좋은 내게 시작은 크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일단 실행하고 보는 타입이었기 때문. 

  

    하지만 서울 유학의 시작은 사실 쉽지 않긴 했다. 물리적으로 모든 걸 떼어놓아야 했고, 물질적으로도 더 많은 것을 지원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작이 반이었던 이 삶은 아직도 완전함을 향해서는 멀었다는 것이다. 상상했던 설렘보다는 어색함이, 편안함보다는 혼자라는 불안함이, 모든 걸 채운 행복함이 아닌 어딘가 조각 하나가 빠진듯한 공허함이 예고 없이 찾아왔던 서울 유학생활. 10년이 지난 28세의 지금도 여전히 찾아오는 그 감성에 아직도 나는 10년 경력의 유학생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가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삶을 시작했기에, 내 인생이 17세의 이전과 후로 나뉘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큼 내 삶에는 크나큰 성장이 이뤄졌고, 그랬기에 인생의 반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전히 어색한 이 서울 유학 생활의 시작이 아닌 남은 반을 또 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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