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주변> 17화
가만 보면 나는 매우 텅 빈 사람이다.
때로는 그 정도가 지나쳐 거울을 들여다봐도 알 수없을 지경이다. 거울은 물체의 빛을 반사한다는데 내가 보는 거울 속에는 온통 풍경뿐이다. 투명한 상태는 일상적이라 여러 곳에서 그 양상을 확인할 수 있지만 오늘은 글을 쓰는 만큼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지 싶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끄적거린 것으로 치면 꽤 오랫동안 끄적거려왔다.
그런데 여전히 글 쓰는 법을 잊곤 한다.
그런 날 내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어깨 아래부터의 팔과 멋대로 움직이다 휘어져버린 손가락 그리고 그때그때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쥐어드는 펜뿐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어깨 위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아서인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서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거울에 비치는 것이 없고 또 손은 펜을 쥐에서 더듬어 볼 수 없는 상황에 어깨 위의 유무를 모르니 손 끝이 적어가야 할 뭔가를 끄집어내는 일은 늘 낯설고 확률에 기대야 한다.
나는 글자의 조합을 옮기는 법만 알고 있는 자판으로, 자모를 모아 대충 어그러지지 않게 나열하는 것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써야 할 내용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오르막의 호흡이나 내리막의 리듬과 같이 쓰는 방식마저 깡그리 잊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글 쓰는 법을 익히기 위해 누군가 쓴 책을 꺼내 몇 장씩 읽곤 하는데 또 그러다 보면 문장이 박혀 빼도 박도 못하는 흉내쟁이가 되고 만다. 아마 나는 여러모로 근본도 심지도 없는 사람인가 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