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주변> 29화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옆 테이블에도 사람이 있다.
몇 년을 한 일인데 조금은 낯선 게 우습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그렇다.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로스팅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장되며 주요 거래처들의 영업시간이 줄어들어 커피 로스터인 나도 덩달아 일을 쉴 수밖에 없었다. 로스팅을 하다가 향을 맡는데 갑자기 미소가 나는 게, 내가 생각보다 커피 볶는 일을 좋아했구나 싶었다.
커피는 처음 지인의 권유로 마시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 술도 잘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나에게 커피는 가장 반짝이는 친구다. 큰일이 없으면 노년까지 따라다니려 한다.
전에는 그저 마시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로스팅을 할 수 있게 되고 내 마음에 드는 커피를 내가 직접 완성시켜 마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가만 보면 꽤 축복 같은 일이다. 싱글 오리진도 에스프레소도 다 볶기 때문에 드립, 머신, 콜드 브루를 가리지 않고 원하는 커피를 기분에 따라 마실 수 있다.
생전 로또 한번 제대로 안되고 경품추천 한번 안되어 불운한가 싶다가도 이런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운이 좋은 것도 같다.
아무튼 지금은 내 취향이 아닌 음악이 흐르는 단골 카페에서 내가 볶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리고 카페에는 손님들이 있다. 오랜만에 느끼는 충분히 행복한 순간이다.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는데 기분이 좋아서 괜히 주절거려본다.
상수동의 '이리카페'나 망원동의 '암튼' 한남동의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가면 높은 확률로 제가 볶은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