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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Jan 29. 2022

내내 외로운 먹구

추락하는 별에서 5화

어느 바닷가에 깡총거리는 강아지가 있었다. 강아지는 밥 먹을 때를 제외하면 늘 바닷가에서 앞발을 들어 올리며 폴짝거리곤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때때로 밥을 챙겨주는 할머니도 있었다. 등이 굽은 할머니는 오늘도 밥이 담긴 사기그릇을 들고 먹구가 있는 바닷가로 향했다.


"먹구야 밥 먹자."


보리밥과 콩나물을 섞어 뭉친 찬 밥 한 덩이. 사실 먹구는 콩나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먹구를 챙겨주는 이가 할머니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절대 투정하지 않았다. 먹구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먼저 꾸벅하고 인사한 뒤 밥을 먹는다. 입 사이로 삐져나오는 콩나물과 아래로 떨어지는 밥알도 열심히 주워 먹는 먹구를 두고 할머니는 괜히 미안하다.


"맛없지? 고기가 좀 들어가야 맛있을 건데 영 맛없는 것만 주네. 내일은 말려둔 생선을 좀 넣어줄 테니 오늘만 참고 먹니라."


밥을 다 먹은 먹구는 엎드려 꼬리를 흔든다.


"아이고 내 새끼 참 예의 바르기도 하지."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는 먹구와 함께 가만히 바다를 보던 할머니가 물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갈까?"


할머니의 말에 먹구는 뒷걸음질을 친다.


"아니야? 그럼 할미가 여기 있는 동안 너도 좀 쉬어."


먹구는 웅크리고 앉은 할머니의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힘이 잔뜩 들어갔던 다리에 긴장이 풀리고 배가 부르니 눈꺼풀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파도 소리가 점점 커지고 바닷가에 남겨둔 먹구의 발자국을 파도가 하나씩 삼킬 즈음 먹구는 잠에서 깼다.


"물이 들어오는구나. 배가 도착할 때가 되었네."


할머니는 엉덩이에 붙은 모래를 털며 일어섰다. 배가 들어오기 전에 부둣가에 가 앉아 있어야 했다. 몇 시간 동안 배를 타고 들어오는 동안 속이 허해진 손님들에게 전을 부쳐 주는 게 할머니의 일이었다. 물질을 할 수 없게 된 후로 시작했으니 족히 십 년이 넘은 일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손님이 좀 타고 있네요."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던 지게꾼이 말했다. 종종 전을 사 먹는 섬에서 하나뿐인 짐꾼이었다.

 

"그러게 나쁘지 않아."


하나 둘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들이 배에서 내려 어딘가로 향하는 동안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내리는 이가 하나 있었다. 금색 머리에 파랗고 두꺼운 도포를 입은 사내였다. 한 손에는 보석이 달린 작은 막대를 쥐고 있었는데 길이가 짧아 지팡이로는 쓸 수 없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조선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할머니가 대뜸 말을 건다.


"전 하나 드시우."


할머니의 걱정과 달리 손님은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답했다


"얼마입니까?"


할머니는 반죽이 줄줄 흐르는 나무 국자를 들어 보였다.


"그래 봐야 이게 얼마나 하겠소?"

"예. 하나 주세요."


손님은 두 손으로 길고 두꺼운 도포 자락을 걷으며 자리에 앉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오."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아무래도 다르게 생겼지요."


사내는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 인양 답했다. 별 의미 없는 느긋한 대화가 오가는 동안 고소한 냄새를 피우며 전이 익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전을 뒤집으며 물었다


"어째 여기까지 왔소?"

"이 섬에 볼 일이 있어서요. 여기 신기한 녀석이 있다고 하던데요."

"젊은이라고는 몇 되지도 않고 그나마 바다에 나가는 퉁퉁하고 시커먼 녀석들 뿐인데 신기할 게 뭐가 있을지..."

"바닷가에서 토끼처럼 깡총이는 강아지가 있다고 하던데요."

"아 먹구 말씀이시구먼 아는 강아지요? 몇 살 되지도 않아서 알 수가 없을 텐데. "


할머니는 금발의 사내가 먹구를 안다는 게 영 의아했다.


"아니요. 그나저나 할머니는  어떻게 아시나요."

"그건 내가 종종 밥을 챙겨주니 알지."

"오!"

남자는 할머니의 말에 활짝 웃으며 감탄했다.


"다행히 잘 찾아왔소. 전을 안 먹고 지나쳤다면 꽤 고생하셨을 거요. 섬에 개가 흔하지 않아서 못 알아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운이 좋게 만난 게 다행이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자는 아주 천천히 전을 집어 들었다. 젓가락 쓰는 법이 제법 손에 익어 보였다. 전을 음미하는 사내를 보며 할머니는 생전 자신이 부친 전을 이렇게 먹는 사람을 본 일이 없어 그 광경이 아주 조금 빛난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고 손수건을 꺼내 입을 닦고 있을 때 할머니는 먹구가 있을 바닷가를 알려주었다.


"저쪽 방향으로 가보시오."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그때는 새우를 좀 넣어드리리다."


남자는 충분히 사례를 한 뒤 먹구가 있다는 바닷가를 향해 걸어갔다. 나뭇가지인지 지팡이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을 허리춤에 꽂은 채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가 바닥가에 도착할 즈음, 먹구는 여전히 깡총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손을 흔들었지만 먹구는 한번 흘끔거릴 뿐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여!"


먹구가 다시 한번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남자는 먹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먹구가 다시 쳐다봤을 때 남자는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말했다.


"너는 왜 아는 척을 하지 않느냐?"


먹구는 그의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번 쳐다보고 거리를 두고 있을 뿐이었다.


"이리 와서 잠깐 이야기를 해봐라. 혹 아느냐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줄지?"


모래사장 위에 파란 도포를 깔고 앉은 남자의 곁으로 먹구가 다가가고 있었다. 실은 할머니에게서 나는 은은한 기름 냄새가 남자에게서도 풍기고 있어 경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이유가 더 컸다. 먹구는 그래도 알아들은 척을 해야 해서 "끼잉"하고 소리를 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너의 사연을 알 길이 없구나. 먼저 말을 할 수 있게 해야겠다."


남자가 박수를 몇 번 친 뒤 허공에 지팡이를 휘두르자 먹구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되었다. 말을 해보거라."

"어?"


먹구는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달라진 것에 조금 놀랐지만 애써 과장하지는 않았다.


"너는 뭘 하고 싶으냐?"

"걷고 싶습니다."

"너는 지금도 걸을 수 있는데?"

"두 발로 걷고 싶습니다."

"세상에 그런 걸 원하는 개가 없는데 너는 왜 그러지?"

"이유는 묻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제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게 한 것을 보니 왠지 두 발로 걷게 하는 것도 가능하실 것 같은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좋다. 어렵지 않은 일이야. 다만 그게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

"제가 정말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럼 앞으로 삼일 뒤에 너는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믿지 않아도 되지만 혹 믿더라도 그때까지 노력을 멈추지 말아라."

"지금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바로 할 수는 없는 일입니까."

"가능하지. 다만 너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 진정으로 원한다면 너는 삼일 뒤에 걸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먹구는 밥을 얻어먹을 때처럼 바닥에 엎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혹시 또 원하는 게 있느냐?"

"그건 바로 가능한 일입니까?"


먹구의 질문을 들은 남자가 크게 웃었다.


"성격도 참 급하구나."

"바로 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말을 할 수 없었으면 합니다."


남자는 조금 놀랐지만 금세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래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너의 사연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먹구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남자를 향해 크게 절을 했다.


삼일째 되는 날. 먹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펄쩍 뛰었을 때 먹구는 더 이상 네 다리로 서지 못하고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서 버렸다.


먹구는 사람이 없는 바닷가를 의연하게 걸어보았다. 먹구가 지나온 자리마다 두 개의 발자국만이 가지런히 찍혀 있었다. 뒤를 돌아 자신의 발자국을 본 먹구는 자리에 앉아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왔을 때 아주 힘겹게 네 발로 기어가 밥을 받아먹었다. 평소와 달리 낑낑거리며 다가오는 먹구를 본 할머니는 먹구의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아이고 우리 먹구 많이 힘들었구나. 안 그래도 오늘은 고기반찬이다. 맛있게 먹니라."


먹구는 꼬리를 흔들고 평소처럼 꾸벅 인사를 한 뒤 열심히 밥을 먹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할머니의 곁에서 잠들었다. 한 숨 자고 일어난 먹구의 곁에 할머니는 떠나고 없었지만 먹구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먹구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등 뒤로는 침엽수들이 있었고 나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바다에 빛이 너울 친다. 먹구는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백사장을 횡단해 파도의 끄트머리로, 포말을 지나 얕은 물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담담하게 걷는다. 점점 물이 차오른다. 드디어 먹구는 가라앉을 수 있게 되었다. 먹구는 이제 할아버지가 있는 곳까지 충분히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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