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 이 죽일 놈의 사랑
어렸을 때의 일이에요. 나는 우리가 살던 집 앞뜰에서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할머니 손은 왜 이렇게 쪼글쪼글해요?”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네 손은 작고 보들보들하구나.”
“할머니는 왜 할아버지랑 결혼했어요?”
“일본이 젊은 여자들을 끌고 간단 소식을 들었어. 결혼하면 괜찮을 줄 알고 했단다.”
“그럼, 사랑하지도 않는데 결혼을 한 거예요?”
“그때는 다 그랬지.”
“사랑하지도 않는데 아이도 낳고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을 했지. 그랬는데도 둘을 잃었어.”
“저는 엄마가 죽으면 따라 죽을 거예요.”
“세상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단다.”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될까요?”
“알 수 있는 건 알고 모르는 건 여전히 모르겠지.”
“할머니도 모르는 게 있어요?”
“음, 내가 언제 죽을지… 내가 얼른 가야 네 엄마가 고생이 덜 할 텐데...”
“엄마는 힘이 엄청 세서 괜찮아요.”
“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약했어. 잔병치레를 많이 했지.”
“할머니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엄마가 어린아이 같아요.”
“나이를 먹어도 자식은 항상 아이 같지.”
“할머니, 사랑이 뭐예요?”
“나도 잘 모른단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진 않았단다.”
[사랑 사랑 사랑]
맥 바넷 글, 카슨 엘리스 그림, 김지은 옮김, 웅진주니어
어릴 때 엄마와 아빠는 많이 다투셨어요. 고성이 오가고 물건이 오가고 이혼 이야기가 오갔죠. 그땐 너무 무서워서 아빠가 집에 들어오시면 침대 밑에 들어가 숨었어요. 나중엔 그마저도 지겨워지더라고요. 어느 날은 왜 싸우는지 잠자코 듣게 됐어요. 그렇게 매일 열심히 싸우는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였지만 문제는 결국 '사랑' 때문이라는 걸 알았어요. 술을 마시고 울부짖는 이유가 '나를 더 알아달라. 나를 인정해달라.'는 외침으로 들렸어요. 안타까웠어요. 비어있는 마음의 곳간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사랑한다는 말로 해결될 수 있을까요? 그때부터였어요. 사랑이 뭘까 하는 질문을 세상에 던진 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어쩔 땐 사랑이 가득 차서 흘러넘칠 때가 있어요. 그럼 엄마, 아빠를 모두 이해한 것 같아 우월감까지 들다가, 어느 땐 살아있는 게 벌 받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몇 달 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알고 계셨을까요? 100년 가까이 사셨으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배신당하고 그럼에도 사셨으니 답을 알지 않으셨을까요? 마지막에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위독하시단 이야기를 듣고 찾아뵙질 못했어요. 제가 코로나에 걸렸었거든요.
직접 듣진 못했지만 그분의 삶이 말해주는 걸 그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생전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한 번도 직접적으로 애정 표현을 한 적은 없었지만... 나눴던 많은 이야기가 제 기억 속에 남아있어요. 누군가를 안다는 것, 이해하는 것, 그래서 행복하길 바란다는 것.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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