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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Dec 11. 2022

14.다이애나가 되지 못한 앤(Anne Shirley)

[전나무가 되고 싶은 사과나무]를 읽고

글을 잘 쓰기 위한 100일간의 챌린지
'그림책에서 첫 문장을 빌려오다'
오늘은 [전나무가 되고 싶은 사과나무]를 읽고 떠오르는 기억의 한 페이지를 정리해 볼게요. 

[전나무가 되고 싶은 사과나무]

쥘리에트 바르바네그르 그림, 조아니데가니에 글, 노란돼지 




전나무로 가득한 숲이 있었어요. 전나무들은 모두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다렸지요. 
어느 해 가을날, 엘리스라는 아이가 전나무 숲에 다녀갔어요. 그날 이후, 사과나무 한 그루가 외로이 자라났어요.
...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자 전나무들이 하나둘 숲을 떠났어요. 사과나무는 자유롭게 날아가는 전나무들을 부러운 듯 쳐다보았어요.




초등학교 때 [빨강 머리 앤]에 나오는 다이애나 같은 친구가 있었다. 하얗고 마르고 부끄러운 듯 조용하게 웃는 아이. 주름 하나 없는 원피스에 고급진 원단에서 흐르는 자연스러운 윤기가 제 것인 양 잘 어울렸던 아이.


반에서 인기투표했을 때 그 친구가 1등이면 나는 2등, 내가 1등 할 땐 걔가 2등 하곤 했었는데 그 친구가 인기가 많은 건 예뻐 서고 나는 성격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나는 늘 다이애나를 꿈꿨으나 지나치게 건강하고 활발한 탓에 절대 조용히 웃을 수가 없었다. 여리여리 병약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싶었는데, 그러기엔 정의감이 앞섰다. 불의를 보면 참았어야지, 울면서 도와달라고 했어야지, 왜 나서서 싸웠니. 체육시간엔 지는 게 싫어서 남자애들도 이기려고 온갖 애를 썼는데... 왜 그랬을까?


아무튼 사과나무는 전나무가 되고 싶었다면, 나는 다이애나가 되고 싶은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이었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다이애나 친구랑은 서로 다른 성향임에도 친하게 잘 지냈는데,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의 엄마가 ‘너희 엄마 대학 어디 나왔니?’ 물어본 다음부터는 거리를 두게 됐다. 우리 엄마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럼 같이 놀면 안 될 거 같았다. 어쩔 수 없지. 과거로 돌아가서 엄마 대학을 보내줄 수도 없고,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애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나는 나대로 살 수밖에. 


처음에 [전나무가 되고 싶은 사과나무] 책을 읽었을 땐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갔다. 전나무는 크리스마스 때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기 위해 ‘잘려’ 나가는데, 그게 왜 부러울까?


"사과나무야 너는 ‘살아있어’. 빨간 열매도 열려. 그 지역에 너 같은 존재는 단 하나야. 얼마나 유니크하니?"


하다가… 다이애나를 꿈꿨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여리여리, 낭창낭창, 수줍, 부끄, 배시시, 어머, 어떡해 난 몰라하고 싶은 앤(Anne Shirley) 씀.



100일이 지나면 과거가 다 털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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