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중독에 대하여

선택하지 않는 삶, 일종의 불안일 수 있다.

by 채영

사람들 중에는 늘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관계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일보다 더 맞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선택보다 더 완벽한 선택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선택 앞에서도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고, 조금만 마음이 불편해져도 아직 열려 있는 다른 가능성들을 떠올리며 머릿속에서 계속 다른 삶을 시뮬레이션한다.


겉으로 보면 선택지가 많아서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료실에서 오래 사람을 보다 보면 그 안에는 조금 다른 장면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에게 가능성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지금 느끼는 불안을 잠시 밀어두기 위해 붙잡고 있는 하나의 심리적 장치가 된다.


지금 이 관계가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더 지나면 좋아질 수도 있겠지’라는 가능성을 붙잡고 있으면, 당장 관계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언젠가 더 맞는 일이 나타나겠지’라고 생각하면, 지금의 삶을 정리하거나 방향을 다시 선택해야 하는 불편한 순간을 미룰 수 있다. 가능성은 그렇게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준다. 아직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도 없고, 아직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도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성은 달콤하다. 현실의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어딘가 부족하지만, 가능성의 세계 안에서는 언제든지 더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더 다정할 수 있고,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은 언제나 더 흥미롭고 의미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가능성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묘한 일이 생긴다. 삶이 계속 준비 상태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실제의 삶은 언제나 불완전한 선택 속에서 시작되는데, 우리는 그 불완전함을 견디기보다 머릿속에서 더 나은 장면을 계속 만들어내며 현실의 시작을 뒤로 미루게 된다.


그래서 가능성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종종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느낀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지쳐 있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마음은 이미 수없이 많은 삶을 머릿속에서 살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을 가면 어떨지, 저 사람을 만나면 어떨지, 다른 선택을 하면 더 행복해질지 계속 계산하고 비교하면서, 현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상상 속의 삶에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것은 가능성을 더 많이 발견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느 순간 그 가능성들 중 일부를 조용히 내려놓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과 관계를 시작해보고, 완벽하지 않은 길을 선택해보고, 완벽하지 않은 나로 살아보기로 하는 것.


가능성은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삶은 가능성 속에서가 아니라, 결국 우리가 선택해 버린 자리에서 조금씩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