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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Feb 27. 2019

당신의 나무를 잊지 말아요

처음 써보는 우화 (사진: UBC News)

어떤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7살이 되면 누구나 쏨니움이란 과일의 씨앗을 받게 된다.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부모가 있거나 혹은 없거나 상관없이 씨앗을 받는다. 그러나 그 씨앗을 받고 난 후 키우는 일은 오로지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의 부모나 스승, 지인들은 나무를 키우는 일에 대해 조언할 수 있지만, 직접 나무를 키우는 일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우니베르세와 노티오는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났다. 그 아이들이 7살 되던 해 똑같이 쏨니움 씨앗을 받았다. 


우니베르세와 노티오는 각자의 텃밭에 쏨니움 씨앗을 심었다. 우니베르세는 자기 집 앞마당에 있는 부모님의 쏨니움 나무 옆 빈자리에 씨앗을 심었는데 부모님의 쏨니움 나무는 그렇게 크게 자라지 않았다. 


마을에서 가장 큰 쏨니움 나무를 가진 사람은 언덕 위에 사는 문두스 아저씨였다. 우니베르세의 아버지가 키운 나무보다 2배는 더 커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멋진 나무를 가진 문두스 아저씨를 부러워했다. 문두스 아저씨는 마을 최고의 쏨니움 열매를 키워냈고, 그 열매들은 아저씨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두 아이가 씨앗을 심은 그날 밤 그들의 부모는 문두스의 나무처럼 훌륭한 나무를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두 아이가 쏨니움 씨앗을 받은 날, 노티오의 가족은 저녁 식사를 막 마친 테이블 위에 씨앗을 올려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쏨니움 씨앗을 처음 보고 신기해하는 노티오에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쏨니움 나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쏨니움 열매는 천상의 열매라 불릴 정도로 상상할 수 없는 맛을 가졌고 사람들마다 쏨니움 열매를 키우는 방식이 달라 그 맛이 모두 다를 뿐 아니라, 수확한 열매의 모양도 모두 다르다고 했다. 


특히 쏨니움의 열매 속에 들어있는 씨앗의 개수도 모두 달라서 몇 개의 씨앗이 들어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애써 쏨니움 열매를 수확해도 그 안에 씨앗이 들어있지 않다면 또 다른 나무를 키울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노티오는 부모님과 밤늦게까지 쏨니움 나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노티오는 그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어른을 찾아갔다. 그리고 잠시 숨을 들이쉬고 난 후 질문들을 쏟아냈다. 어떻게 하면 나무를 잘 키울 수 있는지, 얼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열매를 얻을 수 있는지, 그 쏨니움 열매는 어떤 맛을 내는지… 숨 쉴 틈도 없이 물어대는 노티오를 바라보던 마을의 지혜로운 어른은 노티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리고는 “항상 너의 쏨니움을 잊지 말아라”라는 한 마디만을 해 줄 뿐이었다.


노티오는 궁금했다. 어떤 사람의 쏨니움 나무는 굉장히 빨리 자라서 금방 탐스런 열매를 맺기도 했고, 어떤 쏨니움 나무는 어느 정도 자라다가 말라버려 단 한 번도 열매를 맺지 못했고, 어떤 것은 한 번 열매를 맺고 그 이후에 다시는 열매가 달리지 않기도 했으며, 어떤 나무는 열린 쏨니움 열매에서 나온 씨앗이 땅에 떨어져 더 큰 나무로 자라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같은 마을, 같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쏨니움 나무는 천차만별로 자라났다. 노티오는 자신의 쏨니움 나무가 마을에서 가장 멋진 나무로 자라기를 바랐다. 


시간이 지나 우니베르세가 심은 쏨니움 나무의 새싹이 돋아났다. 우니베르세의 가족들은 그 새싹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엄마는 하루에 몇 번 물을 줘야 할지 이야기했고, 아빠는 자신의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우니베르세의 나무만큼은 잘 키워야 한다고 아들을 닦달했다. 


마을 사람들도 우니베르세의 새싹을 보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문두스의 나무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훌륭하니 그 나무처럼 키워야 한다며 문두스에게 찾아가 그가 하루에 몇 번 물을 주는지, 여름이 되면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나무에 벌레가 생기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나 문두스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나무를 키우기에 우니베르세는 너무 어렸다. 새벽 일찍 일어나야 했고, 늦게까지 나무를 보살펴야 했다.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나무에만 매달려 있어야 했던 우니베르세는점점 지쳐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니베르세에게는 나무를 키우는 일 보다 즐거운 일이 생겨났다. 친구들과 개울가에 나가서 수영을 하고, 멀리 여행을 가기도 했으며,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무에 생긴 벌레를 잡는 것보다는 그늘에 앉아 낮잠을 자는 것이 더 좋았다. 


이윽고 우니베르세는 쏨니움 나무를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가끔 문두스의 집 앞을 지나갈 때 멋들어진 쏨니움 나무를 보며 감탄을 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나무가 잘 자라지 않다가 결국은 잎이 누렇게 지며 말라 가는 모습에 자신은 쏨니움 나무를 키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의 나무를 완전히 잊고 말았다. 


사진: Pixabay.com


노티오는 쏨니움 나무를 키우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문두스의 쏨니움 나무가 마을에서 가장 멋진 나무였지만 자신의 나무는 그것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멋진 나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무가 되기를 바랐다. 노티오는 시간이 날 때마다 쏨니움 나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무를 돌보는 일은 힘들었지만,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천상의 맛을 가진 쏨니움 열매를 상상하며 어려운 시간을 버텨 나갔다. 어린 시절 마을의 현자가 해준 조언대로 단 한 번도 쏨니움 나무를 잊은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노티오가 청년이 되었다. 쏨니움 나무도 노티오와 함께 자랐다. 봄이 되자 꽃이 피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마치 눈송이가 떨어지는 듯 멋진 광경을 연출했다. 노티오는 그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며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좀처럼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꽃이 진 자리에 자그마하게 몇 개의 열매가 맺힌 듯했지만 밤새 내린 비에 모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노티오는 안타까웠다. 떨어져 버린 작은 열매를 보며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열매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다 떨어져 버리고 나무가 메말라 보일 땐 혹시 다음 봄에 새 잎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비바람이 부는 밤엔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나무를 돌보러 나갔고, 더운 여름날엔 시원한 그늘의 휴식을 잠시 미루고 혹시 나무가 말라버리지는 않았는지 더욱 정성껏 돌보았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믿고 언제나 해왔던 것처럼 나무를 보살폈다. 


다시 봄이 되어 새싹이 나오자 노티오는 더욱 정성껏 나무를 키웠다. 꽃이 피고, 그 꽃잎 아래서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꽃이 떨어진 자리에 작은 열매가 맺히자 그 열매를 조금 더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드디어 어느 가을 노티오의 나무에 쏨니움 열매가 탐스럽게 열렸다. 비록 한 개의 열매였지만 노티오는 기뻤다. 그 열매의 맛은 할아버지의 말씀 그 이상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환희였다. 노티오는 그 열매의 씨앗을 다시 자신의 나무 옆에 심었다. 


올해는 한 개의 열매를 수확했지만 다음 해에는 더 많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심은 나무에서도 언젠가는 또 다른 열매가 맺힐 것이다. 노티오는매일 매일이 즐거웠다. 이제 쏨니움 나무를 키우는 일이 가장 즐겁고 쉬운 일이 되었다. 새로 심은 씨앗은 또 다른 모양의 나무로 키울 것이다. 노티오는 이제 자신이 상상하는 데로 나무를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내 노티오는 그 마을에서 가장 많은 쏨니움 나무를 가지게 되었고, 가장 나무를 잘 키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 씨앗을 받은 아이들이 찾아오는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혹시 눈치를 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쏨니움”란 라틴어로 꿈이란 말이다. 

“우니베르세”는 일반적, 보통이란 의미를 가진 말이고, 

“노티오”는 앎, 지혜란 의미이며, 

"문두스"는 세상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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